전직 스튜어디스가 일년에 2억씩 버는 비결은?

조회수 2020. 9. 18. 13: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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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인기 마술사→강연 스타로 연수입 2억 "다시 태어나면 마술사 안해"

승무원에서 마술사, 그리고 이제는 인기 강사. 끊임없는 변신하고 도전하는 인생을 사는 오은영(44)씨의 간단한 이력이다.


오씨는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5년가량 근무한 뒤 마술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두번째 여성 마술사였습니다. 최초의 여성 마술사는 정은선 선생님입니다.”  

출처: 본인 제공
오은영씨 프로필 사진

작년부터는 본업인 마술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면서 미술과 마술을 결합한 강연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공연과 행사, 강연료 등으로 벌어들이는 연수입은 2억원에 달한다.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에서 마술을 가르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꿈이 없었던 20대, 몸에 맞는 옷을 찾다  

그녀는 한국외대에서 사학을 전공했다. 어릴 적부터 꼭 되고 싶은 직업은 없었다는 오씨는 “장래희망을 적을 때마다 왜 하고픈게 없는지 스스로도 궁금했다”고 했다. 인기 직업 중 하나인 승무원도 꼭 되고 싶었던 직업은 아니었다. 우연히 신문에 난 아시아나항공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출처: 본인 제공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시절 오은영씨

승무원 생활에 나름대로 만족했지만 뭔가 아쉬웠다. “여행도 많이 다닐 수 있는 좋은 직업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주로 근무하다보니 ‘지상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점점 커졌어요. 인생을 길게 보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접한 마술은 신세계였다. 한 선배가 성냥갑을 갖고 마술을 보여줬는데, 거기에 푹 빠진 것이다. “신기해서 물개박수를 쳤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직업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죠.” 서점에 가서 마술 관련책을 뒤졌고, 마술학원도 다녔다. 그렇게 마술에 빠진지 두달 만에 회사에 사표를 냈다. 2000년 2월이었다.


“당시 여자 마술사는 딱 한분밖에 안 계셨어요. 남자까지 포함해도 20명 정도였죠. 대중화 전이었어요. 이런 상황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장은 승무원보다 수입이 적더라도 ‘여자 2호 마술사’가 되면 작은 역사라도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희귀한 직업을 선택하느냐’는 주변의 만류는 오히려 오씨에게 용기를 심어줬다. 오씨는 “남들이 안하는 일이면 오히려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상식과는 다른 역발상이었다.  

맨땅에 헤딩…수입 절반 이상 재투자  

‘가슴 뛰는 일’을 하겠다며 뛰어든 마술계는 녹록지 않았다. 마술사 정은선씨로부터 기초를 배운 그녀는 전세계를 돌며 유명 마술사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았다. 승무원 시절 차곡차곡 모았던 수천만원을 교육비와 마술 도구 구입에 털어넣었다. 개중엔 수백만원에 달하는 도구도 있었다. 당시엔 수입 제품이 대부분이었던 마술도구를 구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다. “중국 유럽 미국 등 가리지 않고 배울 곳이 있다면 찾아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이은결씨에게 배운 적도 있어요.” 수업료는 비쌌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기술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오씨는 마술카페를 열어 대중과도 만나기 시작했다.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무료로 마술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방송에도 종종 출연했다. 2002년엔 한일 월드컵 홍보 마술사로 선정돼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름을 알렸고, 이듬해 홍콩세계마술대회에서 입상했다. 환경단체로부터 홍보대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여자 마술사라는 희소성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꽃마술, 의상 마술, 밸리댄스 마술, 일루젼 마술(사람을 공중에 띄우고, 인체를 분리(절단)하고, 대형 동물을 출현시키거나 없애는 등의 마술을 통칭) 등 기존엔 국내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만의 마술 세계를 구축했다.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려고 노력했어요. 똑같이 하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출처: 본인 제공
일루전 마술을 하고 있는 오은영씨

다른 분야와 접목을 하는 마술을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가령 EBS ‘매직 잉글리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마술과 영어를 결합한 적이 있고, 한복을 마술에 활용한 적도 있다. 화수분 같이 떠오르는 아이디어, 그리고 실천은 끊임없는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입문 3년쯤부터 수입이 발생하기 시작한 오씨는 수입의 절반 이상을 재투자했다.


“10년 넘도록 수업료를 내고 마술을 배우고, 도구를 사는데 돈을 썼어요. 벌면서 계속 투자를 한 거죠. 재미없다는 말이 가장 듣기 싫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오히려 더 열심히, 색다른 걸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마술 개발을 개발에 길게는 1년 넘게 투자한 적도 있다.  

그림 읽어주는 마술사로 인생 3막을 열다

쉴틈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오씨는 지난해부터 미술과 마술을 결합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마술을 이용해 유명한 그림을 설명하는 식의 강의다. “어느날 스스로를 돌아봤어요. 언제까지 공연을 왕성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한 거예요. 그러다 나이가 들어도 가능한 강연에 눈을 뜬거죠.” 매달 5~10회 정도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 대학 등에서 강연에 나선다.  

출처: 본인 제공
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 오은영씨의 모습

오씨는 원래 미술에 크게 관심은 없었다. 그러나 유명 미술해설가였던 윤운중씨의 강의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따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미술이 재미있다는 걸 처음알았어요.” 그림을 이용해 마술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림을 설명해주고 마술도 하는 강의를 해봤더니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림 읽어주는 마술사’가 된 계기였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오씨는 조만간 아예 대학원 미술 전공 과정을 다니며 전문성을 키워나갈 생각이다. “깊이와 신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순수하게 미술만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과 마술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에 매력을 느낍니다.”


틈틈이 마술을 보여주며 강연을 하다보니 더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서로 보완하는 것 같아요. 미술, 마술 하나만 보면 따분하다는 사람이 제법 있을 수 있지만 그림도 보여주고 마술도 보여주니 다들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가슴뛰는 일 찾으세요” 

오씨에게 ‘지금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마술사를 할 것이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17년 전과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에요. 마술사 수가 수십배로 늘었고,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취미로는 할 수 있겠지만 직업으로 삼진 않을 거예요. 17년 전 선택은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분야 최고로 꼽히는 이은결·최현우씨도 지금 바닥부터 시작한다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한국 마술 수준은 세계에 내놔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세계 마술 올림픽(FISM)에서 한국인 수상자가 꾸준히 나온다. 오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에게도 마술사를 시키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출처: 오은영씨 페이스북
강연과 마술 공연, 개인 공부를 통해 만난 사람도 다양하다. 맨 왼쪽은 조국 서울대 로스쿨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 가운데는 걸그룹 '다이아', 오른쪽은 김연아 선수와 함께 촬영한 사진

그녀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남들이 꺼리는 분야에 오히려 기회가 있다”며 “그 분야가 적성에 맞는다면 과감히 뛰어들라”고 했다. “저는 항상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게 좋았고, 결과적으로 항상 성공했어요. 남들이 아니라고 해도 ‘내 꿈이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 분야로 쭉 달려가세요. 기회가 열려있는 20대에 가슴이 뛰는, 평생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글 jobsN 오유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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