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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안에 온천물을..기발한 아이템으로 '중졸 신화'

조회수 2020. 9. 23. 11: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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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크라우드펀딩 큰손, 한국 아이돌에 관심 보이는 까닭
일본 크라우드펀딩 67% 점유하는
‘캠프파이어’ 이에이리 카즈마 대표
고교 시절 왕따 아픔 딛고 사업 성공
‘인터넷 민주화’ 꿈꾸며 정치 입문도

이에이리 카즈마(40·家入一真)는 일본 스타트업 업계에서 입지전적 인물이다. 1978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시절 왕따 때문에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대인관계를 기피하다가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대학은 결국 못 갔다. 이 중졸 청년은 22세 창업에 뛰어들었다. 직구사이트 기업 ‘페파보(paperboy)’를 창업한 것이다. 이후 딱 8년만에 일본 자스닥(JASDAQ)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그의 나이 서른. 자스닥 상장 최연소 기록이다.


2011년엔 일본 최초 크라우드펀딩 기업인 ‘캠프파이어(CAMPFIRE)’를 설립했다. 점유율 67%(프로젝트 건수 기준)로 일본 크라우드펀딩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 회원수 38만, 월 방문자 100만명, 월간 페이지뷰(PV) 450만명을 유지하고 있다. jobsN이 지난 20일 이에이리 대표를 만났다.


일본 최대 크라우드펀딩 업체…“한국 아이돌 사진집 관심”


캠프파이어는 21일 한국 사업을 시작한다. 아시아권 유통플랫폼 업체 코코아와 협업한다. 캠프파이어는 코코아와 협업을 통해 한국 우수 중소기업 제품을 일본에 소개할 계획이다. 

출처: 캠프파이어 제공
이에이리 대표.

사업 모델은 구입형 크라우드펀딩과 역직구를 접목시킨 방식이다. 예컨대 A사가 한류 스타를 내세운 화장품을 출시했다고 가정하면, 이를 일본 캠프파이어 홈페이지에 올려둔다. 이를 보고 소액을 낸 소비자들이 리워드(답례품) 형식으로 물건을 받는다. 캠프파이어는 모인 금액의 17%를 플랫폼사용료(수수료)로 받는다.


그동안 캠프파이어는 1만1000건의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했다. 거래액은 7년간 총 45억엔(약 450억원), 투자 참여 인원은 누적 44만명이다. 크라우드펀딩의 범위는 다양하다. 때로는 로켓이 매물로 나오기도 한다. 로켓 발사를 하는데, 1000만엔(1억원)을 내면 로켓 발사버튼을 직접 누를 수 있다고 한다. 소액을 낸 사람들에겐 기념품 등을 받았다. 1000만엔을 내고 버튼을 누른 사람이 나왔다.


유원지를 온천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도 있었다. 지난 2017년 7월 일본 벳부시와 함께한 이벤트다. 당초 벳부시장이 온천 홍보동영상을 올리며 "100만 클릭이 넘으면 유원지를 온천으로 바꾸겠다"고 공약했는데 3일만에 100만 클릭을 넘겼다. 벳부시는 3일간 유원지를 온천으로 바꿔버렸다. 롤러코스터에 온천물을 담고 회전목마에 온천탕을 설치했다. 설치비용은 캠프파이어를 통해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았다. 목표치였던 1억엔(10억원)이 단숨에 모였다. 벳부시는 반응이 좋자 매년 유원지 온천화 작업을 하기로 했다. 

캠프파이어는 한류스타를 이용한 굿즈(기념품)와 화장품 같은 중소기업 제품들을 일본에 소개할 계획이다. 이에이리 대표는 “캠프파이어는 일본에서 연예인들의 사진집 등 기념품 판매에 강점이 있다”면서 “예를 들어 일본 진출을 모색하는 한국 아이돌이 테스트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반려동물 분야에서는 일본 상품을 한국으로 가져올 생각이라고 했다. “일본은 일찌감치 고령사회에 들어가 고양이 용품 등 관련 시장이 발달했습니다. 한국에 소개할 수 있는 좋은 제품이 많습니다.” 그 예시로 이에이리 대표는 고양이가 안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샤워가 되는 부스, 고양이 집 내 청결과 환경을 조절해 주는 센서 등을 들었다. 일본 내 반려동물 용품 시장만 3조엔(30조원) 규모라고 한다.


‘인터넷당’ 창당하고 도쿄도지사 출마도

이에이리 대표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는 2014년 2월 열린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신생정당 ‘인터넷당’을 세우고 ‘인터넷 선거’를 꿈꾸며 도전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의 의견을 인터넷을 통해 의견을 내고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이리 대표는 "일본은 인터넷을 통한 선거 유세가 한국 등에 비해 몇 년 늦을 정도로 정치분야에서 보수적이었다"면서 "그만큼 젊은이들의 불만도 많아 이를 표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출마 당시 이에이리 대표는 35세로 후보 중 최연소였다. 하지만 트위터를 통해 유권자에게 정책 제안만 4만건을 받았을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출처: 유튜브 캡처
2014년 도쿄도지사 출마 당시 이에이리 대표.

이에이리 대표는 도지사 선거 후보 등록 공탁금(300만엔)도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았다. 목표액을 넘어서는 744만엔(7480만원)이 모였다. 철저히 인터넷 기반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공약도 트위터로 모집했다. 하지만 그의 돌풍은 미완으로 그쳤다. 그는 8만8936표를 얻어 5위로 낙선했다. 후보자가 16명이나 나온 상황에서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당선까지는 부족했다.


이에이리 대표는 “정치에서 무언가를 바꾸려면 시간과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며 “보다 빨리 사회적 룰을 바꾸기 위해 민간분야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이후 대외적인 정치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 복귀 계획을 묻자 “아직 정치를 포기하지는 않았다”고만 답했다.


또 그는 ‘인터넷 민주화’라는 개념을 꺼냈다. “인터넷을 이용해 사회적 허들을 낮추는 민주화를 하고 싶다. 크라우드펀딩도 단돈 몇만 엔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도전 자체로도 의의가 있고 사회적 파급력도 있다. 정계에 입문한 것도 정치에 신물을 느끼는 젊은이들의 의견을 어떻게든 정책에 반영해보려는 민주화의 과정이다.” 크라우드펀딩이 창업의 허들을 없애는 민간활동이라면, 인터넷당 활동은 민의(民意)의 허들을 없애는 정치활동이라는 설명이다.


“난 중졸에 왕따였다. 스스로 나만의 아이템 찾아라”

불우한 10대 시절을 보낸 이에이리 대표에게 성공 비결을 물었다. 이에이리 대표는 “내가 성공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아직 나는 더 성공할 여지가 많은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조언도 했다.  

출처: 아마존 재팬 캡처
이에이리 대표의 저서 '이런 나도 사장이 되었다'의 표지.

“어릴 때 왕따 한두번 당할 수도 있는 것이고, 열등감이 아예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나 어느 정도는 겪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어떻게 이겨내고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을 결정하는 요소겠죠.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해, 스스로만의 인생을 살았으면 해요.”


그는 10여권의 책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대표작은 2007년 출간한 ‘이런 나도 사장이 되었다(こんな僕でも社長になれた)’라는 책이다.


글 jobsN 이현택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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