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23살 대학생, 여권케이스 팔아 5억 번 비결.jpg

조회수 2019. 7. 19. 13:47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돈 잘 버는 90년생들의 이야기.

디지털 네이티브 z세대.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 시대의 판도를 휘어잡고 있을까? 여기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 등 각종 SNS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직접 디자인 한 제품으로 억대 매출을 올린 한 남자(박종원/23)가 있다. 그를 통해 유연하고 기발한 Z세대의 이색 도전기를 들어보자. 


Q. 23살에 5억, 젊은 나이에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기분이 어떤가?


솔직히 남들은 내가 돈 많이 번 줄 안다. 돈 빌려 달라는 전화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실상 그렇지도 않다. 5억 판매해도 나에게 떨어지는 돈은 몇천만 원 정도이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다.  나도 큰 돈 벌었다는 마음에 처음으로 어머니 명품백을 사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셨다. 얼마나 좋으셨는지 목욕탕 갈 때도 들고 가신다고 한다. 진작에 하나 사드릴 걸 그랬다..

Q. 갑자기 왜 제품 판매를 시작하게 됐나? 


처음부터 뭔가를 팔려고 한 것은 아니다. 원래는 여행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여행 정보를 정리해서 올리고, 사진 보정하는 필터도 만들어서 올렸다. 그러다가 게시물 하나가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어서 자고 일어나니 팔로워 1만 명, 댓글이 1만 개 넘고 그랬다. 갑자기 내가 만든 것들을 좋아해 주는 팬들이 순식간에 늘었다.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다 보니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만들게 된게 여권 케이스다. 전공이 디자인이니 꼭 콘텐츠일 필요는 없지 싶었다. 그때는 경복궁 여권 케이스를 만들고 이것저것 만들었는데, 얼마나 팔릴지 몰라서 100개 한정수량으로 판매 했었다. 


운이 좋게도 100개씩은 다 잘 팔렸다. 통장에 잔고가 떨어져서 몇천원 남으면 피시방 가서 디자인 작업하고 제품 팔고 그 일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다가 여행을 좋아하던 제조업 하는 지인이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여권 디자인을 바탕으로 여권 케이스 펀딩을 해보자고 제안해줬다. 그렇게 대규모 펀딩을 계획하게 된 거다. 


Q. 그래서 만든 것이 세종 여권 케이스인가?


맞다. 이 제품은 세종대왕의 곤룡포에서 디자인을 따왔다. 당시 평창올림픽도 하고, 타이밍이 잘 맞아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제품을 올리자마자 3시간 만에 1천만 원을 달성했다. 아주 많이 팔려도 2~3천만 원 정도 달성할 것 같다고 했는데, 새로 고침 할 때마다 100만 원 단 위로 돈이 올라갔다. 


한 달 동안 진행한 펀딩을 1억 1천 매출을 올렸다. 약 2천 개 정도가 판매된 거다. 그 숫자를 보면서도 이게 내가 한 일이 맞나? 또 다른 박종원이 한 것은 아닐까? 믿지 못하고 의심했다. 현실감이 떨어졌던 것 같다. 


Q. 도대체 왜 여권케이스가 그렇게 잘 팔린건가?


단순하게 휴대폰 케이스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떻게 보면 휴대폰 케이스보다 더 특별 할 수도 있다. 특별한 날에만 쓰니까. 핸드폰은 매일 가지고 다니지 않나? 여권은 여행이라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만 쓰는 거다. 그러다 보니 더욱더 케이스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있다. 


또 첫 제품이다 보니 이것저것 재미있는 이벤트도 진행했었다. 사람들한테 공항에 숨겨 놓을 테니 알아서 찾아보라고 화분 뒤에 숨겨놓고, 수도 뒤에도 숨겨 놓고, 알아서 찾아가는 이벤트였다. 케이스를 보물찾기 하듯 재미있어 하며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을 보고는 내가 다 뿌듯했다. 여행의 설렘에 우리가 1g 정도 보탬이 된 것 같았다. 


Q. 여권 케이스로 올린 수입이 총 5억인가?


지금까지 판매한 제품으로 올린 수입은 6억이다. 세종 여권케이스는 총 3회에 걸쳐 5억 펀딩을 달성했다. 첫 펀딩 때 1억 1천 매출을 올렸고, 2차 펀딩 때는 색도 추가하고 패키지도 추가하고, cs나 다양한 부분에서 디벨롭을 많이 시켰다. 그러다 보니 올리자마자 1시간 만에 3천만 원을 달성하고, 하루 만에 7천600만 원어치를 팔았다. 마무리 할 때쯤 2억 원어치를 팔 수 있게 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 번 산 사람이 또 사기도 했다는 것. 이쁘니까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 후에 3차 펀딩도 진행했는데 이때는 블랙 에디션을 추가했다. 신기하게 블랙 에디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블랙&화이트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여권케이스에 고급스러움이 가미된게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실제로도 블랙 에디션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묵직한 느낌이 든다. 


올해는 하플리라는 생활 한복을 만드는 브랜드와 콜라보 했다. 이번에는 여권 케이스 말고 호랑이가 새겨진 점퍼를 만들었다. 이것도 하플리 대표님께서 남성 쪽 제품 만들려고 준비하시다가 우연히 연락이 닿아서 함께하게 된거다. 이때도 1억원 어치 펀딩을 달성했다. 사실 옷은 취향 따라가다 보니 어떻게 될까 궁금했는데 생각 그 이상으로 잘 팔렸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만드는 제품마다 1억 흥행 보증 수표냐’며 놀리고는 했다. 


Q. 펀딩이라는 게 제품을 올리기만 하면 잘 팔리는건가.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계속 SNS 활동을 해왔으니까 내가 어떤 디자인을 하는지 알고, 그런 디자인을 좋아해 주는 코어 팬층이 확실히 존재했다. 그리고 항상 내가 이런 걸 만드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리 디자인 샘플을 올려서 사람들의 반응도 지켜봤다. 또 주변에 여행 관련해서 팔로워가 많은 친구들이 도와준 것도 한몫했다. 정말 고맙게도 친구들이 제품이 나오니까 홍보해주고 싶다고 연락 오고, 또 알아서 찍어서 올려주고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또 계속해서 제품을 디벨롭시키면서 기대감을 상승시킨 것도 도움이 되었다. 1차 때 부족했던 것은 2차 때 보완하고, 또 3차 때는 블랙 에디션 추가한 것 뿐 아니라 홍보동영상도 만들었다. 제품이 그냥 사진으로 존재하는 것과 멋스러운 영상이 곁들여지는 건은 전혀 다른 분위기와 상징성을 만들어낸다. 여러 가지 요소들을 디테일하게 변화를 주고, 또 많은 변수들과 상황적 요소들도 고려했다. 

Q. 펀딩 성공을 위해 무엇을 고려해야 하나?


사실 펀딩을 하던 쇼핑몰을 하던 매한가지인 것 같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 첫번째는 디자인이다. 한번에, 첫눈에 보자마자 디자인이 이뻐야 한다. 가지고 싶은 마음이 제품 본연에서 두드러져야 한다. 두번째는 스토리텔링, 사람들에게 이 제품이 필요한 이유를 스토리로 전달해야 한다. 이 제품을 왜 사야 하며, 이 제품을 가졌을 때 어떤 느낌인지. 그리고 세번째 나의 경우 한국적인 미를 살린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가장 한국적인 것 그러면서 세련미를 놓지 않는 것. 


사실 나는 전통과 현대 사이에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전통은 너무 전통만 고집하고, 현대는 너무 현대만 고집하는 느낌이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현대적인 전통을 잘 이끌어내는 것 같다. 20대가 사랑하는 전통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또 그런 것들을 이끌어내기 위해 레퍼런스도 찾아보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결국 이 세 박자가 맞아서 브랜딩이 완성된 것 같다. 


그 외에 타이밍과 마케팅도 정말 중요하다. 세종 여권 케이스의 경우 어떤 이슈가 있을 때 펀딩을 진행하면 좋을지 시기적인 요소도 고려했다. 그래서 여권 디자인이 바뀐다는 이슈가 나올 때를 노렸다. 또 마케팅 같은 경우도 국가대표와 여행 유튜버, 두 파트에서의 홍보를 생각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떠올렸던 이유는 이 여권케이스가 한국을 대표하는 여권 케이스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고, 여행 크리에이터를 통해서는 ‘여행 갈 때 필수품’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다. 테트리스 한 판을 깨는 기분이었다. 테트리스라는 게 여러 각도에서 맞아 떨어져야 깰 수 있는 건데, 펀딩을 통해 실사판 테트리스를 하는 느낌이었다.


Q. 젊은 나이에 성공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면? 


사실 나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스펙도 없고 학벌도 없고 금수저도 아니다. 그런데 가진 게 없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도전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만들고, 세상을 향해 던지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인 케이스다.


박막례 할머니의 자서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가 70년을 살아보니까 내 장단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알아서 찾아와. 그러니까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내가 가진 장단이 자진모리 장단이든 굿거리 장단이든 그걸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내가 도전하는 일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이걸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어떡하지? 안 팔리면 어떡하지? ‘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너무 남들의 반응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 


또 밖에서 뭘 찾으려는 막연한 기대감도 버리는 게 좋다. 나는 여행을 자주 다녔지만 여행에서 뭘 찾지는 못했다. 뉴욕이든 런던이든 가서 뭔가를 담기 위해서는 내 안의 공간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 내 공간이 뉴욕을 담을 만큼 넓어야 하는데 와인 정도로 좁으면 결국 뭔가를 주워 담아도 넘쳐흐르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떠날 거면 우선 자신의 수준과 크기를 높인 후 떠나라. 


자신의 크기를 넓히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직접 만들어보는 것. 결국 판매든 펀딩이든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캐치하고, 그걸 이끌어 낼 수 있는 뛰어난 전략을 짤 수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는 마케터의 마인드를 탑재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필수 요소가 아닐까 싶다. 


Q. 궁극적으로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그냥 죽을 때쯤 이런 말 듣고 싶다. ‘와! 쟤는 끝까지 크리에이티브하다가 죽었네’ 벌써부터 죽음을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나에 대해서 이렇게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가장 한국적인 디자이너 박종원 이런 타이틀이 탐났는데 이제는 그런 것 다 필요 없다. 그냥 저렇게 자기 길 가는 사람. 그 안에 크리에이티브라는 길 하나만 미친 듯이 파다가 가는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다. 


‘팔릴 걸 파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걸 팔라’는 Z세대. 지금까지 손님이 왕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왔던 우리들의 사고는 이미 낡고 부진하지는 않은가? 디지털 시대에 이미 그들만의 판을 짜 신명나게 작두 타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Z세대의 민첩함과 유연함에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님을 실감한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