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본사에서 가장 오래 일한 한국인 '박정준'

조회수 2020. 7. 15. 18: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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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아마존에서 일하며 몸소 깨달은 사실

- 아마존은 평균 근무 기간이 짧다고 들었다.


외부적으로 알려진 평균 근속 기간은 1년이다. 나는 다니다 보니 12년을 채운 케이스고. 이 정도면 아마 아마존 내에서도 상위 2%로 포함되는 것 같다.

- 다들 짧게 근무하는 이유가 뭔가. 


회사안에 날고기는 실력자가 너무 많다. 일 잘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최고의 대우를 해주며 데려 왔으니 하루하루 피 튀기는 전쟁터 같다. 서로가 견제하며 일해야 하고. 그렇다고 누가 괴롭힌다던가 하는 일은 전혀 없다. 그냥 스스로 뒤쳐지고 있다는게 명확하고 투명하게 드러나는 시스템에서 일할 뿐. 승진도 마찬가지. 오래 다닌다고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3개월 일한 사람이 더 잘하면 그 사람이 승진하는 그런 구조다.

- 그런 정글 같은 곳에서 12년간 버티며 무엇을 배웠나?


아마존은 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회사다. 이게 아마존의 가장 큰 저력이다. 회사가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제품 가짓수를 늘리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노트북도 팔고 책도 팔고 생필품도 판다. 하다못해 아이스크림까지 판다. 한 곳에서 많이 파니까 고객 입장에서는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다. 아마존에서 모든 걸 구매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고객 경험이 좋아지면 로그인을 좀 더 쉽게 한다던가, 주문이 더 빨리 잘 되게 한다던가, 페이지 로딩 속도를 높이고 추천을 더 잘하는 등 고객 경험을 높이는데 집중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방문자 수가 늘어난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다른 데서 물건을 팔 필요가 없어진다. 나도 퇴사 후 물건을 팔고 있지만 아마존에서의 판매 비중이 월등히 높다.


판매자가 늘어나면 다시 제품 가짓수가 늘어나고 고객 경험이 늘어나고 이렇게 하나의 원이 완성된다. 이런 선순환이 이뤄져 성장이 발생하면 아마존은 그 돈을 가지고 비용 구조를 더 낮춘다. 더 낮은 가격에 더 저렴하게 제품을 팔 수 있도록 한다. 매출이 쭉쭉 올라가도 절대 이윤으로 만들지 않고 선순환이 더 잘 이루어지도록 밑거름으로 활용한다.


그러면 또 고객 경험이 좋아지고 방문자 수가 늘어나고 계속 성장이 발생하고. 이렇게 완성된 사이클을 아마존 성장 모델인 ‘플라이 휠’이라고 부른다. 작년 12월 기준으로 아마존에 등록된 상품 가짓수는 6억 개, 월 방문자 수는 30억, 판매자 수는 500만 명에 이른다. 이 숫자를 그 어느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성장은 절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마존에서 몸소 실감했다.

또 엄청난 절약정신을 지닌 회사다. 이는 내부에서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도어데스크라고 많이 알려진 이야기인데 초창기에 사원이 다섯 명도 안 될 때 책상을 사러 갔다가 세일하는 문짝을 사서 각목을 잘라 책상을 만드니까 훨씬 싸고 좋은 책상이 완성됐다는 이야기다. 그 정신을 기리고자 사원부터 회장까지 문으로 된 책상을 쓰거나, 분기별로 도어데스크 상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단순 에피소드일 뿐이다.


절약정신의 시작은 낭비를 줄이고 시간을 줄여서 효율성으로 높이는 것, 이게 혁신과 맞물린다고 개념에서 출발한다. 짠돌이 정신과 혁신 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물건을 놓고 봤을 때 어떻게 하면 더 절약하거나 낭비를 줄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혁신이 일어난다는 개념인 것이다.


절약정신을 중시하다 보니 시스템을 고안할 때도 최대한 생산성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을 찾게 된다. 낭비라는 것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를 들면 어떤 일을 처리하는데 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면 몇 달 뒤에는 해당 업무는 자동화할 수 있도록 바꿔버린다. 이런 것들이 전부다 어떻게 하면 절약할까 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 그런 아마존도 말아먹은 사업이 있지 않나.


아무리 플라이 휠이 있고 리더십 원칙이 있어도 망할 건 망하더라. 알렉사, AWS*, 킨들 이런 거는 다 잘 안됐다. 그런데 왜 망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명확하다. 다 남 따라 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에서 남 상관 안 하고 고객만 생각하며 했던 것들은 정말 잘 됐는데, 이 분야가 잘 되니까 우리도 해볼까 싶어서 따라 시작한 사업이 다 망한 거다.


그런데 망해도 상관없다. 실패해도 되는 문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존 2인자가 없는 독점적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도 있지만 어찌 됐건 실패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실패를 목표로 해야 혁신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넘어져도 괜찮다고 믿어야 성장하기 때문이다. 계속 다른 사업을 시도하고 10개 중에 하나가 성공하면 그게 기반이 돼서 다음 사업에 실패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반이 되고, 이런 구조의 사이클이 계속 만들어지는 거다.


*인터뷰 시점에는 AWS의 수익성이 좋지 않았습니다.

- 계속해서 시도하고 성장하려면 직원들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아마존의 논리는 이렇다. ‘발생하는 이윤은 비용구조를 낮추는데 쓰고, 너희 직원들에게는 주식을 주겠다’ 솔직히 기업 가치가 올라서 주식이 계속 오르니 이 논리를 반박을 못하겠다. 외부에는 스톡옵션이 짜다고 소문이 도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마존의 스톡옵션 방식은 전 연도에 100을 줬으니 올해도 100을 주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기본 연봉에다가 주식을 합쳤을 때 최종적으로 이 사람이 받는 금액대가 정해져 있고, 올해가 내년보다 주가가 두 배가 올랐다면 100주는 대신에 50만 주는 거다. 그래서 계속 짜지는 느낌이 들지만 어떨 때는 주식이 한해 연봉보다 높을 때도 있다.

- 계속해서 주식은 오를 텐데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아마존에서 값진 경험을 많이 했다. 회사가 25년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성장했으니 일이 줄어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회사가 세계 1위 기업이 됐다고 내가 1위가 된 건 아니니까. 위로 더 올라가기 위해서는 언어나 문화를 완전히 주도할 수 있을 정도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중간에 퇴사를 고민하다가 차라리 내부적으로 다른 경험을 해보자고 해서 부서를 이동해 8개 부서에서 5~6개의 직종을 경험한 뒤 나왔다.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느 날 아마존 회장의 졸업 연설 영상을 본 게 계기가 됐다. 자기가 나중에 노인이 됐을 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후회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지금 회사를 나와서 창업을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 나와서 아마존을 창업했다고. 


사원들에게는 열심히 일 하라고 하고서 후배들한테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하라니. 무슨 말을 따라야 하는지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는데 결국 독립을 생각하니까 그 모순도 사라졌다.


지금은 퇴사 후 매트 사업을 하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매트 사업을 할지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변화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직장을 나가는 것도 옮기는 것도 나에게는 선택이었다. 


식물의 성장은 운 좋게 환경을 잘 만나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그 환경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면 빨리 다른 결정을 해서 새로운 변화를 본인이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내 커리어나 회사나 직업에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할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말이다.

글 이은지 (프리랜서)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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