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Voice] 말의 무게

조회수 2019. 12. 12.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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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는 큰 책임감이 따른다. 책임의 무게는 말을 뱉은 사람의 인지도와 명성에 따라 더욱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미디어에 모습을 비추는 사람일수록 언행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최고의 인기 프로 스포츠로서 팬들의 뜨거운 사랑과 많은 매체에 노출을 받는 프로야구는 이러한 점에 전혀 개의치 않은 처사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막을 내린 한국시리즈에서 나왔던 키움 히어로즈 송성문의 막말과 선수 감싸기에 급급해 논지를 흐렸던 KBO의 행동, 흥행이 중요한 그들에게 책임감은 필요치 않아 보였다.


에디터 최윤식 사진 키움 히어로즈

#한국시리즈를 망친 막말


최고의 가을야구가 될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갖춘 한국시리즈였다.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으로 1위를 달성한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지난해 플레이오프 복수를 성공하고 올라온 키움의 맞대결. 누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든 프로야구 역사에 기억될만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1차전에서 극적인 끝내기로 두산이 기선제압에 성공하며 예측이 들어맞는 듯했다.


하지만 다음날 짜릿한 승부의 여운을 망치는 영상이 포털 사이트에 공개됐다. ‘더그아웃 슈퍼 인싸’라는 제목의 영상 속에 등장한 송성문은 경기 내내 더그아웃에서 큰 소리로 동료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그는 팀의 사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좋은 이미지의 선수로 보였다. 그러나 응원과 함께 상대 팀 선수를 노골적으로 비방하는 말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는 이형범에게 “팔꿈치 인대 나갔다”, 김재호와 박세혁에게는 “오늘 끝나고 햄스트링 수술! 2년 재활”, “1500만 원짜리 최신식 자동문”이라는 말로 조롱했다. 이로 인해 두산팬들이 오롯이 누려야 할 승리의 기쁨은 하루도 안 돼 분노로 바뀌었다.

송성문의 이 같은 행동은 과거에도 있었다. 두산 김재환에게 비아냥대는 말을 해 한 차례 사과한 적이 있다. 또한 한화 이글스와의 정규 시즌 경기에서 병살타로 물러난 최재훈을 향해 고릴라 흉내를 내며 도발하는 것을 후배인 이정후가 막는 장면이 사진으로 찍힌 바 있다. 한 번은 실수라 쳐도 두 번은 습관이다. 그를 향한 분노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다.


#잘못된 후속 조치


팬들을 더 분개하게 만든 것은 잘못된 후속 조치다. 사태가 벌어지자 KBO는 송성문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영상을 올린 외주 업체로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한국프로야구위원회는 “외주 업체가 협의 없이 영상을 올렸으며 무단으로 영상을 유포해 법적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논지는 그게 아니다. 막말 파문을 일으킨 송성문의 확실한 사과와 상식 이하의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한 징계가 필요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지금은 징계를 놓고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논란이 불거지고 3일이 지난 10월 25일, KBO가 내린 징계는 엄중 경고에 불과했다. 동업자 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발언과 과거의 전적이 있음에도 경고뿐이라니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송성문이 취한 자세도 결코 좋지 못했다. 일파만파 퍼진 영상은 당연히 두산 선수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저격성 발언의 피해자이자 야수조 맏형인 김재호는 팀보다 개인 문제라 콕 집으며 직접 찾아와 진정성 있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중요한 경기 중인 만큼 선수와 팬 모두 논란보다 가장 큰 행사인 한국시리즈에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송성문은 2차전을 앞두고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물론 미디어에 대응하는 것이 프로 선수의 기본이라지만 피해 팀에서 원하는 행동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키움이다. 송성문에게 어떤 자체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 키움은 최근 KBO에서 가장 많은 주목과 논란을 동시에 받고 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젊은 선수들의 활약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나오는 시너지로 KBO의 미래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배출하며 5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비롯해 프로야구의 이미지를 갉아먹는 사건을 여러 차례 일으켰고, 그럴 때마다 강력한 징계는커녕 미지근한 처사로 일관하며 문제의식이 결여됐음을 보여줬다. 키움은 명심해야 한다. 당장의 난관을 해결하기 급급해 멀리 내다보지 못 하는 행동이 계속되면 팬들은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비슷한 시기에 메이저리그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뉴욕 양키스를 꺾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더그아웃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휴스턴의 브래드 타우브먼 부단장이 기자들을 향해 ‘오수나를 데려올 수 있어서 기쁘다’라는 말과 함께 욕설을 내지른 것. 로베르토 오수나는 가정폭력 혐의로 지난해 75경기 출장 정지를 받은 선수다. 이 사건은 일파만파 퍼졌고 휴스턴은 처음에 이 사실을 부인했으나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잘못을 인정하고 타우브먼 부단장을 해고했다.


이번 사건과 흡사한 선례는 2017년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발생했다. 2년 전에도 가해자는 휴스턴이었다. LA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율리에스키 구리엘은 선발투수로 등판한 다르빗슈 유를 향해 동양인 비하 제스처를 취했고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구리엘은 이에 대해 사과했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사과와 별개로 다음 시즌 5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것을 송성문 사건에 대입해보자. 물론 출장 정지로는 팬들의 분은 쉽게 안 풀릴 것이다. 하지만 엄중 경고라는 이름만 그럴싸한 조치보다 직접적인 패널티를 부여해 재발을 막는 것이 합당하다. 오랜 역사와 시장의 차이로 실력의 수준 차이는 날 수 있다. 하지만 논란을 일으킨 선수에 대한 조치까지 수준 차이가 날 필요는 없다.


#자멸하는 KBO


확실한 잘못이 보임에도 옹호하는 자들 역시 존재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딱 하나, ‘전통’이다. 송성문이 벤치에서 보여준 트래시 토크를 야구 은어로 ‘야지’ 혹은 ‘벤치 자키’라고 하는데, 더그아웃에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상대를 도발하는 것은 아마야구 때부터 흔히 해온 일이니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다. 즉 ‘선수들만의 세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팀이 이길 수만 있다면 상대를 조롱하고 저주하는 행위가 옳다고 볼 수 있는가. 단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한다면 이 행위는 전통이 아닌 뿌리 뽑아야 하는 악습이 아니겠는가. 또한 선수들만의 세계라고 단정 짓는 것은 팬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직업이 무엇인지 망각한 발언이다. 팬들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야구를 원하는 것이지 그들만의 리그를 볼 필요는 없다.


800만 관중이 무너졌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스포츠라는 명성에도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미디어에서 이에 관련해 의견을 내고 있지만 답은 하나다. 한국프로야구위원회와 선수들의 의식개선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요구되는 기본은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지닌 말과 행동이다.


프로 스포츠의 존재 여부는 팬이다. 그럼에도 KBO는 산으로 가고 있다. 본질을 전혀 모른다. 겉모습이 화려하다고 해서 사건사고가 매년 일어나는 프로야구를 아름답게 포장할 순 없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외치는 의식개선. 공들여 쌓은 금자탑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이제는 실천해야 한다.


***

이번 글을 기획하며 에디터가 가장 많이 생각한 단어는 기본이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말과 행동에 대한 교훈을 쉽게 접한다. 가훈도 그렇고 학교의 급훈, 사회에서도 항상 말과 행동거지에 대한 중요성을 듣는다. 그만큼 중요하지만 빈번히 범할 수 있는 실수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 번은 실수로 용서가 되지만 두 번을 돌이키기란 힘들다. 그렇기에 강한 어조로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미디어가 여럿 생겨나고 이에 따른 노출 경로도 다양해진 요즘이다. 이는 공인으로서 필연적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직업을 떠나 한 명의 야구팬으로서 우리가 사랑하는 스포츠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 더 많은 이에게 감동을 전파하길 바라며 이 글을 남겨본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104호(1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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