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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Voice]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구단, 무죄추정 원칙의 남용?

조회수 2020. 4. 6. 11: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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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출범 40년이 다 되어감에도 매년 똑같은 사고를 치는 선수, 그리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 마냥 선수를 감싸는 구단. 좋게 이야기하자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 선수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프로 스포츠 리그’라는 특수한 커뮤니티 내에서는 조금 다르게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에디터 최홍서 사진 삼성 라이온즈


#2020년에도 불투명한 클린 베이스볼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프로야구계는 온갖 사건이 벌어졌다. 올해야말로 클린 베이스볼을 실현하겠다던 정운찬 총재의 말이 무색하게 KBO는 폭행 사건과 함께 때로 물든 2020년대를 맞이했다.


LG 트윈스의 투수 배재준이 음주 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연말에 여자친구와 다투던 도중 이를 말리려던 시민을 폭행한 것이었다. 싸움을 중재하려던 제3자를 폭행한 것도 황당한데 여자친구에게도 폭력을 행사한 게 밝혀져 여론의 공분을 샀다. 1월 초에는 송재익 전 NC 다이노스 2군 수비 코치가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폭행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됐으며 1월 말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최충연이 음주운전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036%로 면허 정지 수준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팬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다.


#형법상으로는 선수 보호가 맞지만…


한편 LG 구단은 가해 선수를 최대한 보호하는 모습을 보여 무수한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1월 초 프로야구 선수가 폭행 혐의로 입건됐다는 최초 보도가 이뤄졌던 날부터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기사에 적혀있는 프로필을 통해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월 말 KBO에서 배재준에 대한 최종 징계를 내릴 때까지 언론에서는 차마 그를 ‘배재준’이라 부르지 못하고 ‘A 투수’, ‘B 투수’라고 지칭했다. 한 달가량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니 팬들 사이에서는 ‘어째서 가해 선수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이냐’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러한 불만을 느끼게 된 데에는 지난해의 류제국 사건, 그리고 재작년의 박동원, 조상우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류제국은 자신과 5년간 만나왔던 내연녀가 SNS를 통해 폭로전을 벌임으로써 불륜과 불법 도박 등의 사생활적인 내용부터 선수들을 비난했다는 이야기까지 수많은 논란이 퍼져나갔다. 이로 인해 하루가 멀다고 프로야구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가 들썩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류제국에 대한 일체의 보도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선발투수로서 세 경기를 더 뛰었고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는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 언론에서 그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은퇴 이후의 일이었다. 한편 키움 히어로즈 박동원과 조상우는 곧바로 실명이 공개됐으며 KBO에서도 시간을 끌지 않고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경기 출장 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려 한 시즌을 그대로 날리게 됐다. 이후 두 선수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박동원과 조상우에게 곧바로 자격정지 처분을 내린 것이 비정상적이고, 구단과 KBO에서 ‘형사 처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라며 선수를 최대한 감싸는 모습이 정상적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4항에서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고 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현행법상으로 체포 및 구속된 사람이라도 확정적으로 형을 선고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인정하고 이에 맞게 대우해야 한다.


하지만 팬의 입장에서는 구설에 오른 선수가 멀쩡히 경기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예시가 바로 2015년 말 해외 원정도박 사건에 연루됐던 안지만과 윤성환이 이듬해에 아무런 징계 없이 1군 경기에 출전했던 사례일 것이다. 법으로 따졌을 때 두 선수는 일단 무죄인 것으로 봐야 하며 따라서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팬들은 그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즌을 준비하는 행위 자체를 이상하게 봤다.


#프로야구만의 특수성 고려해야


2015년 원정도박 사건은 비단 프로야구계뿐만이 아니라 학계에서도 주목할 정도의 이슈였다. 한국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학회에서는 ‘프로 스포츠 선수 징계 시 무죄추정 원칙 적용에 관한 비판적 논고’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할 정도였다. 해당 논문의 공동 저자였던 정태린 체육학 박사, 마윤성 당시 연세대학교 박사과정생, 그리고 손석정 남서울대학교 스포츠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삼성 라이온즈가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어 윤성환과 안지만의 징계를 기피한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프로 야구단 소속의 전문 운동선수가 해외에서 도박에 참여한 행위에 대해 이미 그 징계권 사용의 근거와 의무를 충분히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도박죄는 일시 오락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제외될 수 있으나 참여 수준이 우리나라 법원에서 인정하는 오락의 수준, 즉 초등학생의 용돈 수준으로 그쳤을 것으로 보기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이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증거도 확보된 이상, 징계권의 사용에 있어서 더 이상의 근거는 필요치 않다고 판단되는 바이다.”


실제로 KBO 규약 제14장 제151조 3항에 의하면, KBO는 선수, 감독, 코치 등의 리그 구성원이 경기 외적인 행위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 실격처분, 직무정지, 참가활동정지 등의 징계를 내릴 수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성폭행 혐의가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음에도 중징계를 받았던 것이 바로 2018년의 박동원과 조상우다. 두 선수가 별다른 문제 없이 잔여 경기에 정상 출전했다면, 2015년의 안지만과 윤성환을 뛰어넘는 파문이 일었을 것이다.


#KBO만의 특수성 고려한다면 모두 평등하게 적용돼야


앞서 언급한 사례 외에도 무죄추정 원칙이 이상할 정도로 철저히 지켜졌던 다른 사건들이 더 있다. 위 논문에서도 원정도박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KT 위즈 장성우의 사생활 폭로 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한 사건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징계를 미루고 있고, 반대로 또 다른 사건에 대해서는 법원 선고가 나기도 전 미리 징계를 결정했다”라고 지적한다. 하나의 기준을 놓고 처벌의 수준을 다르게 적용해 평등성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일은 2020년 현재까지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법원의 판결 선고 이전부터 “물의를 일으킨 선수”라는 낙인이 찍힌 채 중징계를 받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존재한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사실은 똑같은데, 어째서 이와 같은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한 언론사의 보도에서 ‘모 구단 관계자’라는 사람의 입을 빌려 전한 바에 따르면 “KBO의 징계 기준이 ‘언론으로 사건 보도가 알려졌는지 아닌지’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전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리그 구성원에게 징계를 내린다’라는 규약이, 반대로 말하자면 ‘사회적인 파장이 없었을 경우에는 징계의 수위 또한 약해진다’라고 해석되는 것이다.


***

정말 꾸준히 사건·사고가 터지며 팬들의 신뢰를 잃고 있는 KBO리그다. 무죄추정의 원칙, 말은 좋다. 하지만 팀 전력에 도움이 된다면 임의탈퇴 처리한 선수도 1년 만에 복귀시키는 리그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운운하며 선수를 감싸는 것이 정말 온전한 의도인가? 팬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이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감싸주는 것처럼 보이며 이에 따라 리그의 질이 더 떨어지게 느껴진다는 것이 문제다. 더 이상 보여주기식 징계 그리고 우리 식구 감싸기는 안 된다. 온건한 방식의 선수단 일탈 방지책이 먹히지 않는다면, 모두의 뇌리에 강렬히 남을 확실한 사례를 만들어야만 하지 않을까.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0년 108호(4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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