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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Voice] 수뇌부 야구

조회수 2020. 12. 11.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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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그런데 강물의 사정을 모르는 사공이 노를 저으면 배가 어떻게 될까. 예상치 못한 바윗돌에 긁혀 군데군데 물이 새거나, 어쩌면 산으로도 가기 전에 뒤집힐지 모른다. 프런트와 현장은 각각 존재한다. 프런트가 단순히 데이터만을 놓고 현장 지시를 내려서도 안 되지만, 현장도 데이터 분석 없이는 절대 경기 운영을 할 수 없는 시대다. 즉, 프런트 야구 혹은 현장 야구 나눌 것 없이 그 둘 모두가 공존하는 것이 KBO리그의 현재다. 그렇지만 수면 아래의 사정과 상관없이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줘, 결과적으로 월권을 낳게 만드는 사공이 있어 이것이 표면적으로는 ‘프런트 야구’의 폐해로 인식된다. 지난 10월 키움 히어로즈의 손혁 감독 자진사퇴는 프런트 야구가 아닌 ‘오너십 야구’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에디터 황유빈 사진 한국야구위원회(KBO)

 


#진실은 저 너머에


지난 10월 8일 키움의 손혁 감독이 돌연 자진사퇴를 발표했다. 성적 부진으로 인한 사퇴라고 밝혔지만, 당시 키움은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데다가 2위인 KT 위즈와는 한 경기 차이로 순위 싸움에 한창이었기 때문에 쉽게 수긍하기 힘든 이유였다. 게다가 정규시즌이 12경기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최근 몇 경기의 부진으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점은 더더욱 석연치 않았다. 지난해 팀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까지 이끌었던 장정석 전 감독의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았을 때도 의문스러운 데가 있었으나, 손 감독이 부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데자뷔처럼 일이 반복된 것이다.


더불어 손 감독이 물러난 자리에 김창현 퀄리티컨트롤(QC, Quality Control)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나서게 되면서 의혹은 증폭됐다. 수석 코치와 기존의 코치진들을 제친 김창현 퀄리티 컨트롤은 프로선수 출신도 아닌 데다가, 현장 경험이 1년에 불과한 전력분석원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키움은 자진사퇴를 한다는 손 감독에게 잔여 연봉 2억 원을 지급한다고까지 밝혀 키움의 감독 교체는 사실상 손 감독의 자진사퇴가 아닌 경질이라는 것이 기정사실로 됐다.


이러한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허민 키움 이사회 의장이다. 경기 개입과 횡령·배임 혐의로 물러난 이장석 전 대표의 일례를 바탕으로 부조리를 바로잡고자 ‘경영 감시자’로 영입된 그가 똑같은 사안으로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허 의장은 선임 후 자신의 최측근 인사를 대표이사 자리에 앉히는가 하면, 두 번이나 벌어진 문제에서처럼 한 구단의 감독을 오로지 자신의 입맛대로 갈아치우며 이른바 ‘구단주 놀이’를 자행했다.


이 같은 허 의장의 행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그가 이전에 저질렀던 만행들도 다시금 주목받았다. 작년 1월에는 자신의 구단 이사회 의장 취임식에 1군 간판선수들을 동원하는 것으로 모자라, 함께 캐치볼을 하고 구위를 평가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는 연습 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해 2이닝을 던졌으며, 6월에는 퓨처스 리그 선수들을 상대로 라이브 피칭을 했던 것이 드러나 허 의장이 구단을 자신의 놀이터로 생각하며 사유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처럼 ‘기행’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허 의장의 행보를 차치하더라도, 과연 구단 밖의 인물이 시기와 방법 그 어느 것도 고려하지 않은 채 구단 운영에 마구잡이식으로 관여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며 이것을 프런트 야구의 일부로 보는 것이 맞는 것일까?


#프런트 야구의 실제


국내에서 프런트 야구라는 말이 쓰여온 배경을 고려해보면, 프런트 야구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점철돼 표면적 의미 그 이상의 의미를 띄게 된 단어다. 그것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현장 야구로, 결국 프런트 야구라는 단어에는 프런트가 현장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장의 결정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의도가 다분히 배어있는 것이다.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데이터 야구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변수와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경기 운영과는 동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 야구를 살펴봤을 때 데이터 분석에만 마냥 의존하는 팀이 어디 있으며, 그렇다고 감독의 감으로만 경기를 진행하는 팀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프런트 야구와 현장 야구, 두 단어가 함의하는 바는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본디 프런트 야구는 미국 메이저리그(ML)의 구단 운영 방식을 의미한다. 구단주-사장-단장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구조의 프런트가 중심이 돼 운영을 주도하는 것이다. 프런트 야구에서의 핵심은 단장, ‘제너럴 매니저(GM, General Manager)’다. 단장이 구단을 전반적으로 관리 감독하며, 감독은 필드 매니저(Field Manager)로서 현장에서 내려야 하는 결단을 책임지는 역할로 구분돼 있다. 다시 말해, GM은 오너가 책정한 금액을 최대한 활용해 선수를 영입하고, 감독은 GM이 구성한 전력으로 팀의 우승을 이끄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도 알력이 존재해 수뇌부의 권력이 크게 영향을 미쳤던 사례도 존재하나, 위와 같이 오너와 GM, 감독의 역할이 기본적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굳이 프런트 야구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없으며, 우리나라와 같이 부정적인 뉘앙스 속에서 프런트 야구라고 표현하는 일도 드물다.


최근 KBO리그도 이와 비슷한 변화를 보이는데, 예전과 비교해 선수 출신 단장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단장의 역할이 메이저리그의 GM의 성격과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GM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단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이 GM의 책임까지 겸하는 것이 다반사였고, 과거 김성근 감독과 같이 사령탑이 전권을 장악하는 일도 가능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키움, NC 다이노스, 삼성 라이온즈의 단장을 제외한 7개 구단의 단장 모두가 선수 출신이고, 자연스레 힘의 균형 또한 분산됐다. 즉, 현시점에서는 KBO리그 또한 프런트 야구가 아닌 구단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며 더는 프런트 야구와 현장 야구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의 경질 혹은 교체 문제를 여전히 프런트 야구의 탓으로 보는 것이 맞는가? 프런트에 의해 감독이 옷을 벗고 물러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맥락과 상관없이, 옳지 않은 방식으로 한 구단의 감독을 부품 교체하듯이 갈아 치우는 윗선의 태도다. 본질을 따지자면 프런트 야구가 아닌, 오너십 야구의 폐해라는 것이다. 키움의 운영방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프런트 야구, 전력분석팀을 앞세운 데이터 야구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프런트 야구를 명목으로 수뇌부가 현장까지 침범해 갑질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키움이 표방하는 것이 프런트 야구였다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온전히 감독에게만 독박 씌우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앞서 얘기했듯이 프런트와 현장은 각각 존재하고, 각자의 역할 또한 명확하다. 어느 하나의 존재를 부정한다거나, 역할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도 아니다. 그 가운데 가장 필요한 것은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프런트의 역할은 감독의 경기 운영이 원활할 수 있도록 선수 자원을 지원하면서 현장의 결정 권한을 존중하는 것, 딱 거기까지다. 더 나아가 이번 키움의 사례처럼 세부적인 작전을 지시하는 등 현장 개입을 시도하면 월권행위가 된다.


올해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준 NC만 보더라도 프런트와 현장 간의 적절한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단순히 프런트 야구라는 방식이 문제였다면, NC가 창단 9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데에 프런트 야구와 데이터 야구가 끼친 영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동욱 NC 감독 또한 이와 관련해 “프런트와 현장이 한 방향을 바라본 게 비결이다. 팀이 이겨야 감독도 구단도 존재할 수 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본 게 우리 팀을 강팀으로 이끌었다”라고 얘기했다.


2020시즌 키움의 감독과 코치진, 그리고 선수들이 힘겹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팀 안팎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에서도 정규리그 상위권을 달려왔기 때문에 팬들은 더욱 통탄할 노릇이다. 이 감독의 말처럼 팀의 우승이 선행돼야 감독도 구단도 존재할 수 있다. 야구인들이 야구를 하는 데 있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것보다 우선인 것은 없다. 야구인도 아닌 자들의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의해 야구인들이 모욕을 겪는 불상사가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0년 116호(1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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