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야구] "누군가 KBO 우완투수의 미래를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김성진을 보게 하라"

조회수 2020. 7. 24. 09: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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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베이스볼 코리아 선정 최고의 대학선수 TOP 10

직구 최고구속 151km, 슬라이더와 커터 사용도 자유자재로

“투수가 하고 싶어 1년을 쉬었어요”

[KUSF=조다슬 기자] 이달 21일 KBO (총재 정운찬)는 2021년 KBO 리그 신인 드래프트 일정을 발표했다.  다음달 24일 연고에 따른 1차 지명 회의, 9월 21일 2차 지명 회의를 시행한다. 


1년에 한 번뿐인 KBO 리그 신인 드래프트는 아마추어 야구선수들에게 ‘결전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대학선수들의 경우 더 그렇다. 고졸 선수들은 드래프트 지명에 실패하면 대학으로 진학하여 반등을 꿈꾸지만, 대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명에 실패하면 당장 야구 유니폼을 벗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렇기에 대학야구 선수들에게 신인 드래프트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 부담감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는 것만을 꿈꾸며 묵묵히 훈련을 이어나가는 선수가 있다. 대학야구를 대표하는 우완투수, 계명대의 김성진이다.


기자는 대학야구선수권 경기가 끝난 후, 비대면 인터뷰를 통해 계명대학교 김성진 선수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지난날의 야구 인생을 돌아보며, 드래프트를 앞둔 심정을 들어보았다.

(김성진이 비장한 표정으로 투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KUBF)

우연히 사촌 형의 야구 시합을 보러 간 10살 꼬마아이는 집으로 돌아가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며 부모님께 말씀드린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아이의 부모 역시 힘든 운동선수의 길을 반대했다. 그러나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의 고집은 말릴 수 없었다. 그라운드에서 뛰어다니는 사촌 형이 멋있다는 이유로 야구를 시작했던 순수한 꼬마아이는, 2020년 현재 대학야구를 대표하는 우완투수 ‘김성진’이 되었다. 스물네 살 야구선수 김성진이 궁금하다면, 이 인터뷰를 주목해보자.

◇ 김성진을 빛나게 한 ‘결단력’

김성진은 대구 율하초-포항 제철중을 거쳐 울산공고에 진학했다. 설렘을 안고 입학한 울산공고 1학년 시절, 그는 곧바로 큰 결심을 하게 된다. 투수로 포지션을 전향하겠다는 것이다. 줄곧 내야수만 해오던 그가 ‘투수’를 꿈꾸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저는 야구가 너무 좋았어요. 투수는 경기 내내 공을 만질 수 있잖아요. 공을 조금이라도 더 만지고 싶어서 투수가 되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나 당시 김성진의 체격은 170cm에 60kg으로 투수를 하기에는 메리트가 없었다. 투수의 꿈을 접을 수 없었던 그는, 야구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1년을 쉬겠다는 큰 결정을 내린다. 야구는 잠시 내려놓고 고향 대구로 향했다.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식사와 수면의 질을 높이고, 온전히 체격을 키우는 데만 집중했다. 그 결과, 1년 뒤에는 179CM에 67KG까지 체격을 키웠다.

1년 후 다시 울산으로 돌아온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 고심 끝에 팀을 옮긴다. 기회를 더 많이 받으며 발전할 수 있는 팀을 원했고, ‘부산정보고’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줬다. 야심차게 팀을 옮겼으나, 전학 규정 때문에 2학년 때는 시합에 거의 출전할 수 없었다. 공식 경기에서는 3.2이닝의 투구가 전부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합에 출전한 3학년 시절에는 49.1이닝 동안 732개의 투구수를 기록하며 부산정보고 마운드의 한 축이 되었다. 투수로서 첫 시즌이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으나, 흔들리지 않고 차분히 경험을 쌓아나갔다.

“팀을 옮기면서 걱정이 많았는데 김백만 감독님과 코치님이 저를 위해 정말 애써주셨어요. 웨이트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셨죠. 하루 2-3번에 걸쳐 웨이트장을 갔던 것 같아요. 한 번을 안 쉬고 그렇게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열심히 하니 조금씩 실력이 늘더라고요. 운동이 너무 좋았어요” 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부산정보고의 코칭스태프가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었다며 웃음지었다.

◇ 독기를 품은 김성진

다사다난했던 고등학교 4년을 마치고, 그는 계명대로 진학했다. ‘투수’로서의 열정은 대학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욕심에 코칭스태프가 투수 출신으로 이뤄져 있는 계명대를 택했다.

대학 진학 이후 첫 시즌, 새내기 신분으로서 치렀던 마지막 시합은 그를 독하게 만들었다.

“1학년 마지막 리그 경기였어요. 제가 마무리 투수로 나왔는데 중앙대 K선수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았어요. 그 경기는 아직도 잊지 못 해요. 끝나고 나서도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운동을 더 독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는 끔찍했던 그때를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 훈련 시간을 늘렸다. 부족한 점을 생각하기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하라는 코칭스태프의 조언에 본인의 주무기인 ‘직구’를 더 확실히 다듬기로 했다. 직구만큼은 그 누구도 받아치지 못하게 하자는 마음으로 구속을 늘리기 위한 훈련을 이어나갔다. 하루에 6-8끼니씩 식사를 하며 음식섭취량을 늘렸고, 훈련이 끝나고는 곧바로 웨이트장으로 향했다. 그 결과 체중이 12KG 가량 늘었고 공의 힘도 키워졌다.

이 노력 끝에 맞이했던 작년 시즌(2019)은 자신의 가치를 확실히 증명해냈다.

2018년 3.73이었던 방어율을 1년 새 1.22까지 끌어 내렸다. 제100회 전국체전 강릉영동대와의 경기에서는 9.2이닝 동안 140개가 넘는 공으로 완투하며 팀의 마운드를 굳건히 지켰다. 3실점을 하는 동안 9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구속은 150을 가뿐히 넘겼다. 비록 경기에서는 패했으나 자신의 이름 석자를 마운드에 당당히 새기는 데 충분했다.

실력을 이끌어낸 것에는 그의 야구 열정도 한몫했다. 여가시간에는 일본의 아마추어 야구 영상을 보며 투구폼을 분석했다. “일본의 야구리그는 정말 체계적으로 잘 되어있어요. 아마추어 리그의 수준도 높고 선수들의 부상 빈도도 적어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라며 끊임없이 배워나가려는 모습을 보인 김성진이다. 그러면서, “이 시국에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라고 덧붙이며 웃음을 보였다.

◇ "저는 '무대포' 투수입니다"


그는 직구 평균 구속이 144km, 최고 구속은 151km에 달하며 커터와 슬라이더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타자에게 타이밍을 빼앗고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커브와 서클체인지업 등의 구종을 익히는 훈련도 등한시하지 않고 있다.

투수로서의 김성진은 일명 ‘무대포 스타일’이라고 스스로를 평한다. ‘공이 마음대로 안 들어가면 어때, 다음 공은 제대로 넣으면 되지’ 라고 생각하며 늘 자신있게 경기에 임한다고 말한다. 이런 배짱을 갖기까지 계명대 코칭스태프들의 ‘멘탈 트레이닝’은 큰 몫을 차지했다. 특히 서영준 코치의 경우 훈련 외적인 시간에도 스스럼없이 지내며 야구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선후배 같은 관계가 되어주었다. 그렇기에 김성진은 더욱이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만의 야구를 보여줄 수 있었다.

보완해야할 점으로는 ‘하드웨어’를 꼽았다. 대학리그에서는 손꼽히는 실력을 가진 투수지만, 프로에 입단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선 체격을 키워야 한다.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도 퍼포먼스 또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며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진은 계명대 입학 이후부터 줄곧 시합에 출전하며 공식 경기에서만 446개(2017년), 619개(2018년), 477개(2019년)의 투구수를 기록하며 계명대 마운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증명했다. 투구수가 많아지는 만큼 부상의 걱정이 있을 법도 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

“제가 묵묵히 공을 던질 수 있었던 이유는 쉬는 동안 트레이닝을 잘해서 저의 한계치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마운드에서는 아무런 걱정 없이 공만 열심히 던져요. 마운드에서 내려오면 그 이후부터는 잘 쉬어주죠. 대학리그 경기 시스템에 맞춰서 쉴 수 있는 시간을 잘 조절해요. 체계적으로 관리하기에 회복도 충분히 할 수 있었어요” 라고 말하며, 꾸준히 공을 던지는 비결에 ‘사우나’도 한몫한다며 웃었다. 본인에게 맞는 휴식 방법을 찾고 자기관리에 힘쓰는 김성진에게서 프로의 모습이 느껴졌다.

앞으로의 야구 목표를 물으니, 꿈의 구속인 155km 달성 후 임팩트 있는 마무리 투수, 혹은 완투승을 할 수 있는 선발 투수가 되고 싶다고 야무지게 답했다. 선수 생활을 끝마친 뒤에는 현장, 혹은 트레이닝 센터에서 투수를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싶다 덧붙였다.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운동법으로 정답에 가까운 자료를 만들고, 선수를 체계적으로 돕는 게 그의 향후 목표다.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는,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기 위해 그는 매일매일 배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 KBO 신인 드래프트는 내게 ‘썸’ 같은 것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신인 드래프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4년 전 드래프트에서 씁쓸함을 맛보고 대학에 진학했던 김성진이기에, 올해 ‘재수생’ 신분으로 도전하는 신인 드래프트에는 간절함이 더욱 크다.

“드래프트는 하나의 점수라고 생각해요. 대학시절 동안 제가 경기에 나와 공을 던졌던 과정들은 모두 과제이고요. 과제가 모여 점수가 되잖아요. 그동안 열심히 과제를 해왔다면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을까요?” 라고 당차게 말한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가득했다. 부담을 갖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한 법이었다.

드래프트와 흡사, ‘썸’ 같은 관계냐 묻는 기자의 말에 “그 썸이 꼭 성사되었으면 좋겠네요” 라고 재치있게 답했다. 그러고선, 좋은 결과를 위해선 남아있는 경기에 최선을 다하겠다 덧붙였다.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평정심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김성진의 SNS 프로필 하단에는 ‘勤者必成' (근자필성) 이라는 사자성어가 크게 적혀있다.

부지런한 사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그에게 ‘근자필성’이 갖는 의미는 크다. 지금껏 이 네 글자는 그가 야구를 열심히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늘 목표로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이번 신인 드래프트에도 자신있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다.

그의 이름 ‘성진’은 ‘참된 별’이 되라는 의미를 가졌다.

그의 이름처럼, 그가 KBO리그에서 가장 반짝이는 ‘찐’ 별이 될 때까지 야구선수 김성진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KBO 우완투수의 미래를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김성진’을 보게 하자. 분명 정답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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