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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로 2천억을 만든 남자, 미미박스 하형석

조회수 2021. 2. 26. 16: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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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박스(memebox)라는 기업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현재까지 2천억 원 이상의 누적 투자를 받으며 놀라운 사업적 성과를 이뤄낸 이 뷰티 플랫폼 뒤에는 놀라운 추진력을 갖춘 하형석 대표가 있었습니다. 


미미박스의 창업자이자 대표 이사인 그는 K-뷰티를 세계로 알리며 미미박스를 머니박스로 만든 장본인인데요. 오늘은 하형석 대표를 만나 그의 인생과 사업에 관해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어 봅니다.

Q. 경력이 특이합니다. 83년생, 꽤 젊은 나이인데 창업 전엔 뭘하셨나요?

A. 경희대 환경공학과에 진학했다가 군대에 다녀온 후 중퇴를 했어요. 제가 군대로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다녀왔는데, 그때 만난 미군 친구들을 보러 미국에 놀러갔다가 여기서 살려면 뭘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패션 분야를 택해서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들어갔어요. 


파슨스에 다니던 당시 톰포드 브랜드가 론칭되었는데, 그 회사에 16번째 직원으로 입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때 등록금 낼 돈도 없고 해서 또 학교를 중퇴하고 톰포드에 입사했습니다. 그러다 금융 위기 때 해고를 당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죠.

Q. 그럼 미미박스 창업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A. 국내에 돌아와 한창 방황을 하다가 창업할 기회가 생겼는데, 한국이 잘하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창업하기 전엔 초창기의 티몬에서 일했기 때문에 커머스와 뷰티를 접목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800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90일만에 뭔가를 만들어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업의 지속 여부를 결정할 데드라인을 3개월 정한 거죠. 그리고 사업을 시작한 지 71일만에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바로 첫 사업 모델이 ‘미미박스’라는 이름이었고, 16,500원에 화장품 박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였습니다. 그리고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죠.

Q. ‘미미박스’하면 ’2000억 투자'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데요. 어떻게 이런 대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었나요?

A. 800만 원으로 시작했던 사업이 3개월만에 매출 1억 5천을 찍었어요. 저는 한국 여성 고객들이 대단했던 것 같아요. 화장품에 대한 그 욕구, 열망 덕분이었죠. 1년차에 매출 8억, 2년차에 30~40억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2년 정도는 저희 돈으로만 운영을 했어요. 투자를 받고 싶었지만 이력도 좋지 않았고, 당시에는 화장품을 산업이라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거든요. 그러던 중 한국 엔젤 투자자분들이 조금 투자해주셨는데, 제일 큰 계기는 미국의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라는 투자자가 저희에게 투자 의향을 밝힌 것이었습니다. 


미미박스가 와이 콤비네이터로부터 투자를 받은 최초의 한국 기업이었어요. 그때부터 갑자기 천문학적 단위의 투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누적으로 2천억이 넘는 투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Q. 미미박스는 사업을 외국에서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현재는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A. 시간이 지나면서 고객 데이터가 모이기 시작해 고객들에 대해 더 잘 알아가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는 잘 팔리는 상품만 만들어보자고 해서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박스에 남의 화장품이 아닌 저희 브랜드를 넣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6개 정도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미국, 중국, 대만 등 지역과 고객에 맞게 해외 위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90%가 해외 사업입니다.

Q. 해외에서 K-Beauty가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더라고요.

A. 현재 저희 사업의 가장 큰 지역은 미국인데요. 실리콘밸리의 투자를 받고 나니 이제는 실리콘밸리보다 삼성과 LG 같은 국내 대기업의 책들을 많이 읽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어떻게 컸지?’, ‘당시에 제조를 어떻게 세계화시켰지?’ 같은 의문이 들었거든요. 보니까 과거 대기업들이 가장 먼저 진출한 게 미국이었는데, 뷰티 산업만 미국에 많이 진출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따라해보자 했죠. 한국이 가진 K-Beauty의 역량을 외국에 소개하는 게 저희 일입니다.

Q. 현재 주력 사업은 무엇인가요?

A. 브랜드 사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의 제일 큰 화장품 유통사 세포라(Sephora)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그들을 위한 K-뷰티 제품을 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주에는 비건 화장품 ‘옫지(OTZI)’라고 ‘우리’라는 한글에서 착안한 브랜드를 출시했습니다. 미국 시장을 타켓으로 하는데, 무궁화 원료 등을 넣습니다. 또 한글 ‘가자’에서 착안한 ‘KAJA’라는 브랜드는 미국 18~24세 고객 선호도 1위에 오르기도 했어요.

Q. 사업 확장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 전 지금만 해도 굉장히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800만 원으로 여기까지 온 건 믿을 수 없는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미미박스가 2000억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저는 매일 ‘오늘을 열심히 살자’고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는 특히 코로나 시대에는 변화가 심해 하루하루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Q. 미미박스 구독 서비스를 다시 시작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젠 구독 시장이 훨씬 더 친숙해졌으니 성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A. K-뷰티의 세계화라는 미션만 갖고 달리다 보니, 많은 분들이 미미박스를 그리워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그래서 2021년 1월부터 다시 미미박스를 시작했습니다. 


서비스가 중지되었기 때문에 거의 새로 창업하는 느낌으로 준비를 했어요. 미미박스는 첫 출시 당시의 니즈보다 지금 더 커졌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형석 대표와 대화를 나누어 보니, 하 대표의 성공 비결을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남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고 가장 좋아하는 길을 고민하고, 불안함을 안고 자신의 꿈에 투자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긍정적이고 무모한 도전 정신입니다. 창업 초기에 하 대표가 쥐고 있던 그 800만 원에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수많은 박스를 포장할 수 있는 용기, 굶을 수 있는 투지가 담겨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해요. 


세 번째는, 해외로 진출한 넓은 시야입니다. 한국에서 끝났을 수도 있었을 미미박스를 해외 시장에 데려간 것이 성공 비결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많은 사람들이 ‘남들이 이미 사업할 것을 다 했기 때문에 할 게 없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지켜보면 매번 계속 새로운 것들이 나오죠. 훌륭한 사람들이 이렇게 새로울 것 없을 것 같은 세상으로부터 매번 새로운 사업과 무한한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던 하형석 대표와의 인터뷰, 이 알찬 대화를 통해 많은 분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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