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영화인가, 게임인가? 요즘 다시 뜨는 FMV 게임

조회수 2020. 2. 19. 08: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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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V, 게임 시장의 변화를 줄 수 있을까?

마음에 안 드는 드라마나 영화 내용을 내가 바꿀 수 있다면? 이런 상상을 한 번쯤 해보았던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 상상을 약간 충족해주는 게임 장르가 있다. 실사 FMV 게임이 바로 그것이다. FMV는 '풀 모션 비디오'의 약자로, 미리 녹화하여 완전히 움직이는(Full Motion) 영상을 말한다. 게임에서는 주로 실사 동영상이나 미리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인게임 비디오로 활용한 경우를 일컫는다. FMV 게임 역시 CG가 포함되기도 하지만, 사람의 형상 자체를 CG로 만드는 게임과는 다소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본 기사에서는 실사 영상에 게임을 더한 작품 위주로 소개하며 FMV가 3D CG 게임과 어떻게 다른 감성을 보여주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한다.

▲TV를 시청하다가 내가 직접 내용을 바꿀 수 있다면?

용량 크고 기술 없었다, CG보다 편한 실사 촬영

CG 기술이 처음부터 현재 판매되는 3D 게임 그래픽 수준이었다면 실사 촬영된 FMV 게임은 나올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실사 FMV 게임이 처음 등장한 배경은 CD-ROM의 등장과 아직 부족한 3D 기술 때문이다. 플로피 디스크가 대중화되었던 시기에는 텍스트와 도트 그래픽을 활용한 도스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이마저도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용량은 고작 1.5MB를 넘지 못하는 수준이기에, 게임 파일을 백업하려면 플로피 디스크를 몇 장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당연히 게임에 영상을 넣는다는 건 발상조차 사치였던 시절이다.

▲CD롬의 탄생, 저장 공간 크기의 변화로 생겨난 FMV 붐

이러한 게임 제작 환경은 바야흐로 CD의 시대가 열리며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상용화된 CD는 플로피 디스크와 차원이 다른 저장 공간을 제공했다. 이제 8비트를 넘어선 영상을 게임에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저장 공간에 비해 3D 그래픽 기술은 아직 쫓아가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색한 CG 기술로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확장된 용량을 활용한 실사 FMV 게임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실사 FMV 게임으로 도트 그래픽으로 표현하지 못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공포 게임이 실사 FMV에 어울리는 장르로 취급받았다. 조잡한 CG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공포’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가브리엘 나이트 시리즈, 렐름스 오브 더 헌팅 등 다양한 호러 어드벤쳐 게임을 실사로 즐기는 게이머가 늘어났다.

▲연출로 호평받은 FMV 게임, 7번째 손님

이 시기에 탄생한 공포 어드벤쳐 게임은 지금과 비교해도 높은 수위를 보여준다. 악령을 소재로 한 판타즈마고리아 시리즈는 폭력성과 선정성이 상당했으며 하베스터는 90년대 게임 광고까지는 발행되었지만 잔인한 장면의 수위가 매우 높아 국내 정식 발매가 취소되었다. 한 편으론 너무 주목받기 위해 자극적인 게임만 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영상 화질이 좋지 않아 별로 새로운 감흥을 못 일으키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시기의 실사 FMV 게임이 전부 자극적이거나 조잡한 영상으로 이루어진 게임인 건 아니다. 미스터리 어드벤쳐 게임 ‘7번째 손님’은 평범한 퍼즐이 게임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당대에는 수준 높은 CG와 실사의 결합, 자극성보다 긴장감을 더하는 연출로 호평을 받으며 200만 장 이상을 판매했다. 하지만 그저 CG 기술의 한계로 우후죽순 양산된 실사 FMV 게임에 한계가 찾아왔고, 3D 그래픽이 발달하며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CG와는 다르다, 최근의 실사 FMV 게임

이제 CG가 실사와 거의 유사한 수준까지 발전한 만큼, 더 이상 실사 FMV 게임의 가치는 없는 걸까? 적어도 몇몇 게임 개발자에겐 그렇지 않았다. 2010년대에도 좋은 성과를 거둔 FMV 게임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인터랙티브 추리게임인 'Her Story'이다. Her Story는 경찰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나'라는 인물의 진술 영상을 토대로 사건을 추리하는 게임이다. 추리의 난이도가 상당하여, 게이머에게 실제 옛날 경찰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는 것 같은 그래픽으로 제작되었다. 인물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하기에 프로파일러 연습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프로파일러가 되어 추리한다는 것이 게임의 중요 소재인 만큼, CG보다 실제 사람의 말투와 표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기에 실사 FMV가 적절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 프로파일러가 되어보는 게임, Her Story

2016년에 개발한 FMV 인디 게임 'The Bunker'는 핵전쟁 이후 벙커 안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를 다룬다. 게이머는 벙커의 마지막 생존자인 존이 무사히 벙커를 탐색하고 억제된 기억을 되찾도록 도와야 한다. 이 게임 역시 실사 FMV로 제작되어 우수한 연기자와 호빗, 왕좌의 게임 등에 출연한 유명 배우와 실제 정부 소속 퇴역 핵 벙커에서 촬영하여 사실성을 더했다. 그 덕분인지 2016 SHD Awards에서 Horror Game of the Year를 수상하고 게임 시상식인 TIGA에서도 가장 창의적인 게임, 최고의 음향, 올해의 게임 후보에 올랐다.

▲일부러 못 만든 게임, Press X to Not Die

현실성과 몰입을 더하기 위한 실사 FMV 게임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FMV 장르를 선택한 게임들이 있다. ‘테슬라 이펙트 : 텍스 머피 어드벤쳐’는 텍스 머피 시리즈의 16년 만에 나온 후속작이다. 원래 텍스 머피 시리즈는 실사 FMV로 만들어졌으나, 지금의 CG 수준을 감안하면 CG로 후속작이 나와도 무방했을 것이다. 하지만 2014년까지도 실사 FMV로 만들어져 기존 게이머의 향수를 자극했다. 인디 게임에서도 실사 FMV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인디 게임 'Press X to Not Die'는 FMV를 활용한 풍자 인디 게임이다. 조작법, 스토리, 연기력, 촬영, 편집 모든 것을 '일부러' 망쳐서 제작했다. 실사로 만든 게임이기에 유머와 풍자가 더 극대화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이런 영화는 없었다 이건 영화인가, 게임인가?

“이건 영화가 아니다.”, “이건 문학이 아니다.” 등 많은 창작물이 장르 논쟁을 거쳐 왔다. 최근에는 마틴 스콜세지가 “마블 히어로 영화는 영화(Cinema)라기보다는 테마파크에 가깝다”라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음악에 대해서도 “이런 건 ‘락’이라고 할 수 없다”, “이건 ‘재즈’가 아니다” 이런 말은 해당 장르에 조금만 관심 있어도 귀에 못 박히게 듣게 된다. 그렇다면 단순한 놀이의 한 종류이자, 때론 종합 예술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게임’은 어떨까? ‘게임’이야말로 이러한 ‘정의 논란’에 자주 휘말리곤 한다. 비주얼 노벨은 소설인지 게임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학습 도구나 정보 전달을 게임처럼 만들어 게임과 교육, 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얘기도 있다. 최근에는 TV쇼인지 게임인지 애매한 작품이 탄생했다. 넷플릭스의 ‘밴더스내치’, ‘당신과 자연의 대결’과 같은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가 바로 그러하다.

▲자유 의지와 게임의 경계, 블랙미러 - 밴더스내치

밴더스내치는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인터랙티브 무비로 영화로, 블랙미러 시리즈에 속한다. 밴더스내치에서 시청자는 주인공의 선택을 결정할 수 있다.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주인공은 자신이 조종 당하고 있다 생각하거나, 편안한 일상을 누리기도 한다. 인간 자유 의지에 대한 질문과 기술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다룬 블랙미러 시리즈다운 작품이다. 총 엔딩의 수는 10~12가지이며 2019년 에미상을 수상했다. 넷플릭스는 인터랙티브 무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밴더스내치뿐 아니라 코미디, 로맨스 등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2배로 확대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 관객 참여 영화, Late Shift

집에서 혼자 보는 인터랙티브 무비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영화의 줄거리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세계 최초 관객 참여 영화인 Late Shift는 관객이 앱을 설치해 선택지를 누르면 다수결로 내용이 바뀐다. 180가지 이상의 분기가 존재하며 엔딩은 총 7개이다. 때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방향으로 영화가 흘러가긴 하지만, 관객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한 영화이다. Late Shift는 FMV 인터랙티브 무비 형식 그대로 게임이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게임, 게임에서 영화로. 그야말로 게임과 영화, 게임과 TV의 장르가 모호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곧 발매 예정 FMV 게임, CG 시대 못 따라가도 새로운 수요 만들까

영화, 드라마 할 것 없이 그야말로 'CG의 시대'다. 히어로 영화가 얼마나 그린 스크린(화면 합성을 위해 사용되는 녹색 스크린) 천지인지 알면서도 몰입하여 감상하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에선 실사를 방불케 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게임 속 CG 수준도 상당히 발전하여, 인터넷에선 진짜 사람 같은 게임 캐릭터 캡처를 올린 뒤 '전부 다 CG임 ㄷㄷ' 같은 문장을 덧붙이며 모두를 놀라게 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기술적 수준에서나 인식적으로나 CG로 빚어낸 환상은 모두에게 익숙하다.

▲CG는 영화, 게임 모든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CG가 완벽하게 극복 못한 지점이 있다. 바로 ‘불쾌한 골짜기’로부터의 탈피다. 불쾌한 골짜기는 일본의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제시한 이론으로, 인간과 유사하지만 완전히 똑같지 않을 때 불쾌감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넘어설 정도의 CG 기술은 실제 촬영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도 한다. 최근 제작되는 고사양 CG 게임은 인간의 털 끝 하나까지도 완벽히 표현하여 불쾌한 골짜기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 그래픽에선 사람과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여전히 존재한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 표현을 담아내기 위해선 실사 촬영이 가장 적합한 선택일 수도 있다.

▲2019년 게임스컴에서 발표된 실사 FMV 스릴러 ‘에리카’

2019년에도 실사 FMV 인터랙티브 게임이 발표되었다. 아버지 죽음에 감춰진 비밀을 추적하는 '에리카'와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19금 스릴러 게임 'She Sees Red'가 이다. 에리카는 반전이 강렬한 스토리보다는 선택에 따라 어떻게 내용이 변하고 연출되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She Sees Red'는 엔딩은 4개뿐이지만 짧고 굵은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 게이머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실사 FMV인 것만으로 만족시킬 수 없기에 유치하고 자극적이기만 한 게임성으로는 승부하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PC, 콘솔 게임이 CG로 만들어진 요즘, 예전처럼 실사 FMV가 주류 시장을 이루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법이라는 말처럼, 실사 FMV를 원하는 목소리가 조금 더 커질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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