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테잎, BTS 래퍼 라인의 또 다른 자아

조회수 2020. 6. 14.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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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랩라의 기록

슈가의 'Agust D', RM의 'RM'과 'mono.', 제이홉의 'Hope World'까지. 차곡차곡 쌓아 올린 BTS 래퍼 라인의 믹스테잎들.

 

Agust D, 날것의 에너지

Agust D의 첫 믹스테잎 〈Agust D〉은 BTS의 그 어떤 앨범보다 진솔하고 날것의 에너지가 살아있는 작품이다. 이 앨범이 독특한 것은 음악이 장르나 사운드보다는 태도 그 자체로서 어필한다는 것이다. 힙합에 기반을 둔 앨범이지만 랩의 디테일한 테크닉이나 음악적인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다분히 거칠고 절절한 마음 속 날것의 감정들만이 전해진다. 이 앨범은 자전적이다. 대구에서 태어난, 음악에 꿈을 품은 한 소년이 연습생이 되어 이제 막 성공을 열매를 수확한 아이돌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중에서 마지막(‘The Last’)은 슈가의 커리어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드라마틱한 분위기나 비트 같은 음악적 디테일보다는 곡이 품은 날것의 에너지와 진솔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갉아먹은 자기혐오와 우울함의 감정을 숨김없이 털어놓지만, 그것에 맞서는 방식은 자조적인 동시에 희망적이다. 그는 그 안의 우울에 잡아 먹히기 보다는 그것을 승리의 자부심으로 맞바꾸는 방식을 택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안의 모든 울분과 분노를 가장 거친 방식으로 쏟아내며 혼란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한 페이지를 그렇게 마무리 짓는 것이다.


mono., 이토록 지적인 모순

BTS의 리더인 RM은 〈RM〉과 〈mono.〉 두 장의 믹스테잎을 통해 증명받고 싶은 래퍼에서 고독하고 지적인, 동시에 이중적인 자아를 탐구하는 뮤지션으로 계속 진보해 나가고 있다. 첫번째 솔로작인 〈RM〉은 ‘Rap God’과 ‘농담’ 등 순도 높은 힙합 트랙들로 상징되는 작품. 특히 자신의 능력과 기술을 후회없이 쏟아내고 증명하겠다는, 다분히 경쟁적이고 도발적인 면모를 품은 어린 래퍼의 패기가 절절하게 흐른다. 의심과 조롱을 맞선 아이돌 래퍼의 분노, 동시에 아이돌이라는 길을 택한 스스로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깊은 곳의 자기혐오라는 모순된 정서를 공격적이며 때로는 지적인 방식으로 녹여낸다. 〈mono.〉는 믹스테잎이 아닌 플레이리스트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래퍼로서의 정체성을 넘어 한 명의 뮤지션으로서 진화하고 싶은 의지를 내비치는 수작이다. 어느 곳에도 완벽하지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서의 정서가 쓸쓸하게 떠도는 ‘tokyo’와 ‘seoul’의 대비에서 드러나듯, 이 음반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바로 인간의 이중성(duality)이다. 록 성향의 ‘badbye’와 ‘지나가’에서도 잘 드러나듯, 이 앨범은 뮤지션으로서의 다재다능함을 전시하면서 동시에 서정성이 극대화된 곡들을 통해 RM이 가진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재능의 층위들을 비로소 드러내기 시작한 중요한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forever rain’으로, 예술가에게 외로움은 슬픔이 아니라 동반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으며 사색적이고 아름답게 끝을 맺는다.  


Hope World, 희망이라는 퍼스낼리티

제이홉의 〈Hope World〉는 BTS의 모든 작업을 통틀어 가장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사해 준 작품이다. 데뷔 이후 그룹의 댄서이자 서브래퍼로만 주목받았던 그이지만, 이 앨범을 통해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개성적인 음악세계를 펼쳐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힙합을 베이스로 두지만 어떤 장르적 틀에 갇히기 보다 다양한 음악들을 제이홉이라는 흥겹고 긍정적인 퍼스낼리티와 자연스럽게 매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인상적이다. 라틴 바이브를 품은 청량한 댄스 트랙(‘P.O.P’), 90년대의 고전적인 하우스 바이브(‘Daydream’), 올드스쿨 힙합의 간결한 바이브(‘Baseline’), 현대적인 정통 힙합의 서늘함까지(‘항상’) 간결하고 확신에 찬 아이디어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이어진다. ‘Hope World’와 마지막 곡 ‘Blue Side’의 상징적인 대비에서도 엿보이듯, 이 앨범은 마치 겉으로 보이는 바다의 푸름과 동시에 그 안에 펼쳐진 수많은 층위를 탐색해 나가는 과정을 표현한다. 마치 스스로의 안에 잠자고 있던, 어쩌면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아티스트적인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처럼. 그리고 그 탐색은 제이홉이라는 무해한 에너지를 통해 그 어떤 거리낌이 없는 흥겹고 자연스러움이 넘치는 음악들로 표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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