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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를 기억해주세요

조회수 2021. 4. 3.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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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쿠데타와 시민들의 저항

2월 1일 새벽 미얀마 군부는 2020 총선 결과를 부정하고, 의회 소집을 막으려 수도(네피도)를 봉쇄하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비롯한 집권여당 NLD(민족민주동맹)의 지도자와 당선자들을 감금한 후 쿠데타를 선언하였다. 쿠데타 가능성을 예측한 일부 전문가도 있었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보다 일반적이었다. 왜? 2011년 민간정부 출범 이후 미얀마 사회는 이미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사회적으로 교육열이 무르익는 중이고, 휴대폰을 신체의 일부로 삼은 청년들(이른바 Z세대)은 자유와 자본의 맛을 알아가고 있었다.

물론 해결하기 어려운 미얀마의 사회적 과제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여전히 군부의 그림자가 길고 짙다. 5년마다 선거를 치르지만 헌법상 25%의 국회의석과 부통령 1인의 지명권은 군에게 있다. 사실상 군과 민간정부의 이원통치 체제다.(미얀마 헌법상 군통수권자는 대통령이 아닌 최고사령관이며, 긴급권한 발동도 군의 권한이다. 그래서는 군은 이번 쿠데타도 합헌이라 주장한다.) 


둘째, 군부가 장악한 합법‧비합법적 경제 규모가 거대하다. 미얀마 군부는 군인이면서 동시에 최대의 경제 집단이다. 그래서 군부 쿠데타의 진짜 이유는 현재의 경제적 기득권 유지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고공행진 중이지만 늘어난 부는 군부와 일부 특권 계층에 고여 있고, 여전히 국민들의 삶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셋째, 미얀마는 (미완성) 연방국이다. 미얀마의 행정구역은 에야와디강이 흐르는 중부 저지대에는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버마족의 땅(7개 관구[region])이고, 서부와 동부의 산악 지대는 7대 종족의 자치주(state)이다. 영국의 식민지 분할통치는 종족 갈등의 씨앗이다. 미얀마의 국부 아웅산 장군이 1947년 팡롱회의를 열어 연방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일부 평화협정은 종료되지 못했고 소수민족의 자치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와 관계가 틀어졌다. 미얀마는 우리만큼 지정학적으로 뜨거운 곳이다. 인도양 진출로를 확보하려는 중국과 이를 막기 위해 인도를 포함하는 ‘쿼드(4자안보대화) 전략’을 펼치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장이다. 게다가 2017년 이후 로힝야족 탄압으로 미얀마는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크게 잃었다. 인권 문제로 유럽과 미국의 경제제재가 심해지자, 결과적으로 미얀마의 중국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이번 쿠데타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해 11월에 치룬 총선의 결과이다. 2016년 집권 이후 NLD의 성적표는 사실 초라하다. 헌법 개정, 경제 발전, 평화 협상의 3대 개혁 과제가 모두 미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0년의 선거 결과는 대내외의 관측과 달리 NLD의 압승으로 귀결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부 지역의 선거가 취소되기도 했으나 NLD는 2015년 총선에 비해 의석수를 늘렸다.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미얀마 시민들이 군부라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정치 성적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차선’으로 NLD를 재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미얀마의 산적한 사회적 과제는 결코 개혁개방 10년 안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경험을 갓 10년 넘긴 시민들의 눈에 군부의 권력 제어를 위한 헌법 개정은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이었을 것이다.

지치지 않기를, 외롭지 않기를

미얀마 쿠데타 발발 7주 차에 이른 오늘까지(3월 22일) 나는 세 가지 지점에서 놀랐다. 먼저 군부의 쿠데타 감행이란 시대착오적 결정에 매우 놀랐고, 탱크로 길을 막고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며 구금자를 고문하는 군부의 잔인한 대응에 경악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이미 경제사회적 비상사태를 겪고 있는 미얀마는 이로 인해 정치까지 후퇴하였다. 


둘째, 군의 탱크와 총 앞에서 죽음을 각오한 시민들의 저항은 안쓰럽지만 경이롭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 청년들이, 노동자들이, 공무원들, 의료진들이 시민불복종을 외치며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쿠데타와 군부 통치라는 역사적 퇴행을 막고 있는 미래 세력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한국 사회에서 미얀마를 위한 관심과 지지가 지속되고 있음에 놀라고 있다. 나의 경우는 동남아 연구자라는 나름의 직업적 소명이 있다지만, 평범한 시민들이 이렇게 오래, 이렇게 절절하게 ‘남의 나라 문제’에 관심 가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군부의 잔인한 진압에서 광주를 떠올리는 어른들, 봉사활동이든 여행이든 미얀마를 방문해본 청년들, 그리고 세계시민교육을 경험한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의 이런 관심과 지지는 미얀마의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이 글이 독자를 만나게 되는 날(4월 1일)은 미얀마에서 군부의 쿠데타가 발생한 지 딱 두 달이 되는 날이다. 지금은 군부와 시민들이 강대 강으로 맞부딪치고 있는 상황이다. 자치군을 갖춘 몇몇 소수민족들이 있기에 내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가 있다. 쿠데타 이후 의료 행위가 중단된 상황에서 바이러스의 확산이 얼마나 심각해졌을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해진다. 


게다가 4월부터 미얀마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 40도를 넘나들 폭염의 시작. 희생자를 생각하면 빠른 외부 개입과 협상 중재가 개시되길 바라지만, 군부에게도 시민에게도 사실 마땅한 퇴로가 보이지 않는다. 힘의 격차가 이렇게 분명한데 버티고 있는 시민들에게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지만이 비빌 언덕이다. 나아가 현재의 저항은 군부와 정치 엘리트가 독점하는 정치 구조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미래를 꿈꾸게 할 동력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 사회의 현안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이후에도 미얀마를 향한 우리의 관심이 얼마만큼은 유지되기를 기대해본다. 미래를 위해 싸우는 미얀마 시민들이 지치지 않기를, 외롭지 않기를!

글/엄은희(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사진제공/김원장(K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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