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류 FLEX 한다! 난 어른이니까!(당당)

조회수 2021. 4. 6. 18: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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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부터 엽서까지, 우리가 사랑한 문구 이야기

어른이 된다는 것의 장점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문구를 잔뜩 사도 돈 낭비라는 잔소리를 들을 일이 없다는 게 아닐까. 스마트한 미니멀리즘의 시대에도 여태 울룩불룩한 필통을 끼고 사는 어른 4명에게 사랑하는 문구 아이템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청했다.

미니멀리스트 꿈나무의 문구


한때 나를 설레게 했던 것들을 버린 지 3년이 되어간다. 평생 쓸 필기구로는 연필을 택했다. 너무 멋진 연필 익스텐더와 캡이 있었기 때문이다. 익스텐더는 뉴욕으로 여행 갔을 때 연필 전문점에서 구입했다. 복잡한 차이나타운과 어울리지 않는 정갈한 가게, 전 세계에서 온 아름다운 연필이 즐비한 곳에서 익스텐더만 열 개를 사와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눠주었다. 

연필 한 자루가 적당히 짧아지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연필을 억지로 쪼개어 익스텐더에 꽂았다. 양심이 따끔거리긴 하지만, 익스텐더를 쓰는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다. 선물한 지 5년이 되어가는데 친구들은 아직 쓰지 않은 것 같다. 캡은 서울 성수동 가죽 매장에서 샀다. 가방은 비싸고, 액세서리는 만만했다. 전혀 필요하지도 않은 연필 캡, 선글라스 고리, 이어폰 줄감개를 사면서 신이 났다. 작은 가죽 소품을 사용하는 내가 남들에게도 멋있게 보일 거라 생각했다. 


미니멀리스트 꿈나무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피곤하다. 쓸모와 아름다움, 물건과 나의 미래까지 생각해야 한다. 이제 아주 작고 견고한 커터칼만 사면 된다. 그건 또 얼마나 멋질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익스텐더: 연필깍지라고도 한다. 몽당연필을 연장시켜주는 도구.

글, 사진. 김초롱

Paper is Forever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가 바둑판 위에서 겨루던 3월, 내가 듣던 수업의 교수님은 그 대국의 여파로 자신이 일생을 바쳐 축적해온 지식이 구글보다 못하다는 것에 크나큰 회의감을 느끼셨다고 한다. 양으로 보나 정확성으로 보나 구글을 이길 자신이 없다며 ‘기술이 바꿔놓을 미래’에 대한 예상을 열심히 설파하시던 어느 날, 교수님은 노트북을 펼쳐놓고 열심히 필기 중인 우리에게 물으셨다. “여기서 10년 후에도 종이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요?” 수많은 노트북 사이, 꿋꿋이 리갈패드에 연필로 필기하던 나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왜지?” 나는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종이는 취미에 가깝다고 생각..해서요….”

그렇다. 내가 바로 그 종이가 취미인 사람이다. 차곡차곡 모아 착착 쌓아둘 수 있는 종이의 물성을 사랑한다. 손에 닿는 종이의 감촉, 종이마다 조금씩 다른 그 질감을 좋아한다. 종이 위에 보존된 기억들엔 그 나름대로의 삶이 생기는 것 같다. 


그 수업 이후 몇 년 후 읽은 제임스 워드의 책 '문구의 모험'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전구가 발명되어 사람들은 양초로 집을 밝히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양초는 사라지지 않았다. 용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 물리적인 것은 뭔가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한다.” 종이가 수행하는 여러 기능은 기술이 발전하며 대체될 수 있겠지만 종이의 역할은 그런 기능적인 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50년 후에도 아마 종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종이 만세!

글, 사진. 안솔비

글씨를 쓸 때는 만년필로 쓰세요


디지털 기기를 쓰면서 만년필을 사용해본 지가 오래되긴 했다. 한동안은 만년필에 관심이 많아 좋아하는 잉크를 사려고 여행 중 온 동네 문구점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훌륭한 디지털 기기의 대명사인 아이패드를 장만하면서 나의 관심은 만년필에서 디지털 기기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그렇지만 손 필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아이패드도 주로 손 필기 하는 데 쓰고 있다. 필기감을 좋게 하려고 종이 필름도 붙이고 드로잉 앱에서 쓸 유료 브러시도 이것저것 구입했다. 어차피 할 일, 기왕 하는 거 재미가 있으면 더 좋으니까.

그런 면에서 만년필에 여전히 마음이 많이 간다. 만년필은 관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번거롭기도 하지만 손을 타는 만큼 애정도 생기고, 또 좋아하는 필기감과 색깔로만 채워서 왠지 특별한 느낌이 든다.


손 글씨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면서 만년필을 영영 놓고 살 것 같진 않다. 친구들에게 소분 받은 것들이나 내가 고생해서 산 잉크들이 다 소중하고, 아무리 필기감이 비슷하대도 진짜 만년필과 그리기 툴 사이에는 필기감과 질감 표현에서 따라갈 수 없는 차이가 있다. 또 한동안은 만년필을 들고 다니면서 뭐든지 청록색으로 쓸 것 같다.

글, 사진. 심소

엽서에게 보내는 연서


엽서를 사랑하는 이유는 물욕보다 애정 욕구가 큰 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일선물로 뭐 갖고 싶어?”라는 질문을 들으면 해외 직구로만 살 수 있는 영양제부터 술(?)까지 줄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온갖 물건의 이름이 떠오르지만 결국 입 밖에 내는 건 “편지나 써줘.”다. 그런데 사람들에게서 ‘편지지만 마주하면 머리가 새하얘져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급히 아무 말이나 끼적이다가 몇 줄이 남아 곤란하다’라는 피드백을 듣고 타협하는 마음으로 “엽서나 써줘.”로 선회했다.

엽서의 장점은 무엇보다 ‘콤팩트’에 있다. 심지어 시선이 자주 머무는 책상 앞, 창문, 어디에 붙여둬도 인테리어의 기능까지 해낸다. 쓰고 보니 우리 엽서 만만세다. 


특히 여행지에서는 엽서를 고르고 사는 순간 자체가 소중한 추억이 되기에 한푼 두푼 아껴서 기념품 숍 관광객용 엽서 특유의 촌스러운 디자인도 마다 않고 열심히 사 모았고, 집에 콕 박힌 신세일지언정 몇 장의 엽서로 끝없이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게 됐다. 눈앞에 엽서를 두는 건 별을 보는 것 같다. 손에 잡히는 거리인데도 어쩐지 아득하고 요상스럽다. 

글, 사진. 양수복

전문은 빅이슈 248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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