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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마녀'='낙원의 밤'?

조회수 2021. 4. 13. 14: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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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다. 영화 '신세계'와 '마녀'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신작인 만큼 기대치가 높았던 탓일까. 공개 후 "누아르와 멜로의 중간 지점에도 도달하지 못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제주도의 푸른 색감의 배경이 주는 서늘함과 배우 엄태구·전여빈의 내면적인 허무감이 빛을 발하지만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생존 의지'의 부재


'태구'(엄태구 분)는 유일한 혈육인 누나와 조카를 사고로 잃고 복수를 감행하지만 그 끝에는 허무함만 남는다. 자신이 타고 갈 차에 누나와 조카를 태운 것을 자책할 겨를도 없이 서슬 퍼런 피의 복수를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 몸을 숨기기 위해 경유지인 제주도로 향하지만 돈다발이 든 가방을 쥐었음에도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출처: (사진=넷플릭스)
조직의 2인자 '태구'(엄태구 분).

어릴 적 마피아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고 불치병을 앓고 있는 '재연'(전여빈 분)도 삶의 낙이 없긴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한 달밖에 살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말의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무기의 불법 거래도 마다치 않는 삼촌까지 잃자 내면의 허무함은 극에 달한다.


영화는 지금까지 박훈정 감독이 연출한 작품과 달리 주요 인물 간의 경쟁과 생존에 대한 에너지가 부족하다. 박훈정 감독의 전작 및 시나리오 참여작을 살펴보면 더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다. 조직의 보스가 되기 위해 암투를 벌였던 '신세계'나 검찰과 경찰의 주도권 경쟁을 통해 생존의 돌파구를 찾았던 '부당거래'와는 또 다른 설정이다. '마녀'에서 주인공 '자윤'(김다미 분)이 박사를 찾아 헤맨 것도, 'VIP'의 '김광일'(이종석 분)이 권력을 이용해 도망가려 했던 부분까지 모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출처: (사진=넷플릭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재연'(전여빈 분).

'낙원의 밤'에는 이런 '생존 본능'이 결여돼 있다. 극 중반을 이끄는 '마 이사'(차승원 분)조차 재연이 들이대는 총구 앞에서 "네가 나한테 계산할 게 남았지"라며 그대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양 사장'(박호산 분)만이 끝까지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 살아남지 못한다. 생존을 위해 남을 짓밟거나 은밀한 뒷공작을 펼치며 끝까지 살아남았던 인물의 입체적인 설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


이처럼 주요 인물들은 한없이 우울하고 처연하다. '신세계' 속 '이중구'(박성웅 분)의 마지막 대사인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가 연상되는 것은 기분 탓일까. '낙원의 밤'은 영화 '신세계'와 '마녀'의 플롯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교차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차량 액션 장면이다. 배신당한 태구가 양 사장과 마 이사 패거리를 따돌리다 붙잡힌 장면에서는 좁은 차 안으로 수십 개의 칼이 들어온다. 태구는 혼자서 다수의 조직원들을 상대하며 좁은 차 안에서 복수의 광기를 내뿜는다. 영화 '신세계'의 '정청'(황정민 분)의 엘리베이터 싸움 신이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출처: (사진=넷플릭스)
박훈정 감독.

상황도 비슷하다. '신세계' 속 '정청'은 '이중구'의 재범파에게 공격을 받지만 큰 틀에서 보면 '골드문' 그룹 안에서 배신을 당한 셈이다. 태구의 경우 자신의 직속 상관인 양 사장에게 배신당해 위기에 처한다.


배우 전여빈이 연기한 '재연'은 영화 '마녀'의 '자윤'과 닮아 있다. 다수의 적을 권총 몇 자루만으로 가볍게 소탕한 채 빠져나오는 '재연'의 모습에서 외계인급 능력을 갖춘 '자윤'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낙원의 밤'에는 '신세계'와 '마녀'의 중간 그 어디쯤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게 만든 영화라면 이해가 갈 만한 장면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주인공 바로 밑에서 일하는 조직원이 희생되는 점, 살인이 이뤄지는 장소가 대형 창고라는 점, 횟집에서 피 튀기는 싸움이 일어나는 점, 차량 사고가 극의 시발점이 되는 것까지 많은 부분이 닮았다.


비정한 것은 알겠는데


결론적으로 제목이 주는 상징성은 반어법 혹은 아이러니함을 부각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낙원'이 주는 안락한 느낌과 '밤'의 서늘한 이미지는 영화 속에서 그 정의를 뒤바꾼다.


제주를 배경으로 한 '낙원'은 지옥을 방불케 하는 죽음의 공간이며, 차갑고 서늘한 '밤'의 공기는 태구와 재연이 진솔한 대화를 나눈 '용기의 시간'이다. 공간과 시간적 배경이 더해지자 낙원의 밤은 '돌이켜 보면 좋았던, 찰나의 꿈'으로 남는다. 푸른 빛의 색감과 제주의 풍광이 더해지며 배경적인 분위기마저 비정함이 감돌았다. 

출처: (사진=넷플릭스)
복수를 다짐하는 '마 이사'(차승원 분).

다만 박훈정 감독의 전작을 봐온 관객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는 2%를 넘어선 부족함이 있다.


우선 돋보이는 캐릭터를 찾기가 드물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혈혈단신 상대 조직에 잠입했던 태구의 패기는 제주도로 떠난 이후 홀연히 자취를 감췄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재연도 사격 외에는 관심이 없다. 이익을 위해 배신의 배신을 거듭하는 양 사장과 그를 위협하는 마 이사의 존재감은 컸지만 그마저도 분량이 적었다.


인물 간 서사도 충분히 쌓아 올리지 못한 느낌이다. 태구가 떠난 사이 조직간 전쟁에서 승기를 잡지 못한 양 사장이 마 이사에게 쩔쩔맨다거나, 삼촌과 재연의 사이를 알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간략하게 스치듯 지나간다. 경쟁 조직에서 탐낼 만한 실력이라는 태구의 서사도 부족했을뿐더러 재연이 제거하고 싶어하는 상대방의 경우 '마피아'라는 상징성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도 않았다. 

출처: (사진=넷플릭스)

결정적으로 의지할 데 없는 태구와 재연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갈 만한 충분한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동질감에 대한 이해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한 이야기 전개도 공감 가지 않는다. 횟집에서 벌이는 피의 향연이 '카타르시스'보다 '물음표'에 가까운 감정으로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영화를 본 후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태구가 재연의 말을 받아치며 "괜찮아 보이냐? 나는 안 괜찮아 보이는 데…"라고 말끝을 흐리는 장면이 나온다. 말 그대로다. 누군가에게 이 영화가 "괜찮아 보이냐"고 묻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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