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어떻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타게 됐을까

조회수 2020. 2. 14.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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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출처: ©A.M.P.A.S.®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모두가 기대했지만,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2020년 2월 9일(현지 기준) 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 주요 부문 4관왕을 수상했다. 지난 2019년 5월 14일 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이미 한국 영화 최전선에 선 <기생충>이었지만, 할리우드의 본진 미국 아카데미에서 이 정도 업적을 세울 줄이야. 이 ‘이변’은 미국 현지뿐만 아니라 자국 영화의 아카데미 최초 수상을 목격한 국민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출처: <기생충>

작품상 수상 직후 <기생충>은 재개봉, VOD 등으로 다시 관객들 앞에 소환된 것은 물론이고 축하와 격려 속에서 최고의 화두로 올라섰다. 쉽게 예상할 수 없었던 수상 탓일까, 일각에선 <기생충>이 어떻게 아카데미 최고의 스타가 됐는지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그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좋은 영화니까’ 같은 속 빈 강정 같은 말 대신 <기생충>이 상을 받은 이유, 혹은 받아야만 했던 이유를 꼼꼼히 살펴봤다.


만들어본 사람이면
더 감탄하게 하는 작품의 궤적

이 이야기를 하려면, 아카데미의 시스템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카데미는 매해 봄, 새로운 회원을 선정한다. 감독, 배우, 촬영감독, 편집감독 등을 비롯해 캐스팅 디렉터, 에이전트, 마케팅 총 20개 분야 영화계 종사자 중 기존 오스카 수상자나 후보자, 기존 회원 2명 이상에게 추천받은 사람이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된다. 더 세세하게 따지면 복잡하니까 본론을 짚자면, 아카데미는 상상 외로 많은 영화계 종사자들이 투표 자격을 가진 심사위원이란 점이다. 이번 유권자 수는 8400여 명. <기생충>이 작품상을 탄 건 이 많은 인원들의 절반 이상이 영화를 지지했단 뜻이다.  

<기생충>이 회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어떤 지점일까? 잘 만들어서? 그건 당연하다. 그럼 정치적 메시지? 그것만 따지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나 <포드 V 페라리>처럼 미국 중심적 영화가 낫다. 추측건대 아카데미 회원들을 <기생충>에 매료시킨 건 이 영화의 ‘난이도’가 아닐까 싶다. 관객 입장에서의 이야기가 쉽다, 어렵다가 아니라 만드는 입장에서 보는 난이도. 

쉽게 얘기하면 이렇다. <기생충>은 131분 동안 무슨 장르인가. 초반은 코미디지만, 어느 순간 케이퍼 무비가 되고, 스릴러가 되었다가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기생충>은 규정할 수 없다. 한 영화를 하나의 장르나 톤으로 밀도 높은 완성도를 내는 것, 어렵다. <기생충>처럼 다양한 장르를 혼합하면서 완성도까지 성취하는 건 더 어렵다. 하지만 봉준호와 제작진은 그 장르적 변주를 이질감 하나 없이 <기생충>이란 그릇에 담는 데 성공했다. <기생충>은 장르에 매몰되지 않고 사방으로 요동치는 에너지, 영화인들이 오랜 시간 갈구한 변화무쌍 ‘시네마’를 보여줬다. 오롯이 ‘영화’로 접근했을 때, 영화인들이 보는 <기생충>의 매력은 그 지점일 것이다.


대비와 이질감을 빚은 이국적 풍경

출처: <기생충>

다르게 생각해보자. 아카데미 회원 개개인을 영화인 아닌 개인으로서 사로잡은 건 무엇일까. 이 부분은 <기생충> 공개 직후 여러 차례 언급된 ‘반지하 문화’로 설명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인들은 반지하가 (그곳에 살아보지 않았어도) 어떤 공간인지, 어떤 심상을 의미하는지 체감하고 있다. 즉 너무 친숙해서 그 자체가 인상적인 건 아니다.

출처: <기생충>

그러나 한국과 다른 사회, 문화에 사는 사람들에게 <기생충>은 이미지만으로도 충격적이다. 반지하란 공간, 그곳에서 사는 가족은 이국적인데 그들이 피자 박스를 접기 위해 보는 유튜브는 친숙한 것이다. 친숙한 것과 이질적인 것의 교차는 계속된다. 피고용인과 고용인, 기사식당, 단독주택, 반지하, 자막을 봐야 하는 외국어와 간간이 튀어나오는 괴상한 영어. 요컨대 한국인에겐 워낙 친숙해서 그 자체보다 상징과 구조로만 읽힌 이미지들이 타문화권 사람에겐 인상적인 이질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 것이다.

출처: <기생충>

극중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계단도 문화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남겼을 것이다. 주택 안의 계단은 우리보다 타문화권 거주민들에게 더 익숙하다. 한국인 입장에선 그곳을 ‘미지의 것’으로 읽었다면, 타문화권에선 ‘친숙한 것’이 ‘예상 밖의 것’으로 전이하면서 더욱 공포스럽지 않았을까. 다송(정현준)이 좋아하는 인디언은 정반대로 우리에게 낯설고 꺼림칙한 이미지를 남긴 것처럼. 추측이긴 하지만.


전 세계를 관통한 메시지

출처: <기생충>

이 부분은 수많은 관객과 평론가, 기자가 거듭 언급한 부분이니 간략하게만 짚어보겠다. <기생충>은 점점 양극화되는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물론 부도덕적 행위가 동원됐지만) 노력에도 끝내 다시 돌아와야 했다. 봉준호의 영화는 ‘삑사리’ 같은 코미디 끝에 패배의 기운이 짙은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아카데미 회원들은 그 패배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자, 혹은 공감하고자 <기생충>을 사랑했는지 모른다.


든든한 조력자들

출처: 씨네21
달시 파켓

이 부분도 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기생충>은 달시 파켓이 영어 번역을 맡았다. 달시 파켓이 누구냐면 1998년부터 한국 영화 전문 사이트를 운영하고, <옥자>를 제외한 봉준호의 모든 작품을 번역한 미국인 평론가다. 그야말로 한국 영화와 봉준호 전문가. 짜파구리를 라면과 우동으로 의역한 ‘람동’이나 한국 사회 속 서울대의 권위를 전하기 위해 ‘옥스포드’를 선택한 센스는 황금종려상 수상과 동시에 주목받았다

달시 파켓이 악셀을 밟았다면, 아카데미까지 밀어준 건 북미 배급사 NEON(네온). 북미 영화계는 아카데미 시즌이 다가오면 시사회를 열거나 회원들을 초대해 후보를 소개하는 등 일종의 홍보 행사인 ‘오스카 캠페인’을 진행한다. 만일 배급사에서 손을 놓는다면 이런 행사를 하지 못하고 묻히기도 한다. NEON은 CJ ENM과 함께 적극적으로 오스카 캠페인을 벌이고, 끊임없는 온라인 홍보를 통해 북미 대중들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로컬 영화제 발언에 반발?

출처: CJ엔터테인먼트
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화제의 발언. 봉준호 감독은 2019년 10월 해외 매체 ‘벌처’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인터뷰어가 “지난 20년간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계에 영향을 끼쳤는데도 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지 못했을까"라고 묻자 봉준호는 “오스카(아카데미)는 국제영화제가 아니지 않나. 매우 ‘로컬’(지역적)이니까”라고 대답했다.  

본인이 아카데미 회원이라 상상하고, 이 말을 들었다면? 반응은 셋 중 하나일 것이다. 그냥 그런가 보다. 어떻게 감히 아카데미를. 그래, 이제 아카데미도 변할 때가 된 거지. 어떤 생각이 들었든 간에 이 말을 들은 사람이라면 다시금 아카데미에 대해 재고할 수밖에 없다. 아카데미는 실제로 2016년 흑인 영화인들의 보이콧이 일어나자 2017년 흑인 영화인 후보가 늘린 바 있다. 이번에도 ‘외국어 영화상’을 ‘국제 영화상’으로 바꾸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고. 보여주기식으로 <기생충>에게 표를 던지든, 아니면 진짜 <기생충>이 좋아서 표를 던지든 <기생충>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는 동일하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말하자면, <기생충>이 이 발언 때문에 상을 탔다고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다. 봉준호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고, 시대의 변화를 꿈꾸는 회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도화선이 됐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수많은 회원의 선택으로 이뤄지는 만큼 아카데미 특성상 그의 발언에 동조하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꼭 소신을 밝혀야지’ 같은 방관자 효과가 더해졌는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그의 발언이 변수가 됐음은 확실하다.

혹시 정치적, 사회적 영향으로 수상하는 게 반칙이라고 생각하는가. 칸 영화제는 2015년 난민 이야기를 다룬 <디판>에 황금종려상을 줘 논란이 됐고, 베니스영화제는 2018년 칸 영화제를 보이콧한 넷플릭스에게 <로마>로 황금사자상을 안겼다. 멀리 갈 거 없이 아카데미도 2005년 <브로크백 마운틴> 대신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그린 <크래쉬>에게 준 바 있고. 세상에 사회와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은 드물다. 


재미, 기승전재미

출처: <기생충>

지금까지 얘기하면서 놓치고 있는 한 가지. 아카데미는 LA, 할리우드, 그러니까 ‘상업 영화’ 최전방에서 열리는 축제다. 로컬 영화제라는 지적처럼 아카데미가 유독 미국 영화에 한정적인 건 결국 세상 어디에도 할리우드 버금가는 상업 영화를 만드는 나라가 드물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여러 이유들, 강렬한 이미지나 영화 외적 발언 등이 유권자의 마음을 동요시켜도, 유권자가 표를 던지기로 마음먹는 결정적 이유가 필요하다. 그게 곧 재미다. <기생충>은 다양한 층위의 메시지를 여러 장르로 변주하는 이야기를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로 전한다. 기택 가족의 여정에 몸을 실으면 특유의 ‘삑사리’ 유머에 웃다가 순간적인 장르 변화에 몸을 움츠리게 되고, 끝내 사회 한 켠을 떼어낸 듯 잔인한 현실에 이를 악물게 된다. 어느새 결말을 맞이할 때면, <기생충>이 선사하는 그 모든 게 ‘재밌’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출처: <기생충>

작품성을 따지는 영화제에서 주관적 감각인 재미가 무슨 소용이겠느냐마는, 생각해보라. 사는 곳도, 문화도, 인종도 다른 8천여 명의 사람들을 어떻게 사로잡겠는가. 고작 ‘재미’만? 그럴 리 없다. <기생충>의 재미는 각자의 시선에서 만족감을 느낀 유권자들을 표라는 구체적인 결과물로 움직인 화룡점정이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기생충>이 좋았다해도 디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과연 유권자들이 표를 던졌을까.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만든 것이 <기생충>의 재미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들과 함께 보고 얘기 나누고 싶은 재미야말로 <기생충> 4관왕의 원동력이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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