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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에서 '글로벌'로, <기생충> 오스카 수상이 주는 의미

조회수 2020. 2. 15.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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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오스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기생충>이 선을 넘었다. 누가 예상했을까. 오스카 4관왕이라니. 게다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모두 차지해버렸다. 완성도, 작품성, 예술성 등 영화를 평가할 수 있는 주요 핵심 부문에서 <기생충>이 다른 후보작들보다 뛰어났다는 걸 뜻한다. 혹시라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오스카 시상식은 미국영화예술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AMPAS, 이하 아카데미) 소속 회원들의 인기 투표와 다르지 않다고. 회원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오스카 캠페인’의 결과 아니냐고. 이런 주장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과거에 오스카 시상식은 ‘보수적인 백인 남성들의 잔치’라는 비난을 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카데미에 나이 많은 백인 남성 회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카데미는 변화를 약속했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여성, 이민자, 미국 이외 국적의 영화인들을 적극 받아들였다. ‘할리우드 리포터’가 2월 5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39%의 새 오스카 투표권자가 미국 이외의 국가에 있다”고 한다. <기생충>의 수상에 이런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까. ‘할리우드 리포터’의 기사를 좀더 살펴봐야겠다. 참고로 해당 기사는 오스카 시상식 이전에 쓰여진 것이다.

지난해 텔룰라이드영화제에 참석한 봉준호(오른쪽) 감독과 송강호.

우선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가 아카데미 회원이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이 점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약 6개월 전, 오스카 캠페인을 막 시작하던 시기,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텔룰라이드영화제에서 만난 송강호의 일화를 전했다. “송강호는 윙크를 하며 올해는 <기생충>에 투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2015년에 아카데미 회원이 됐다. 2016년 아카데미가 미국 국적이 아닌 영화인들을 적극 회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기 1년 전이다. 2016년 아카데미의 정책 변화 이후 국내 영화인들이 다수 아카데미 회원으로 등록됐다. 현재 아카데미 회원으로 알려진 국내 영화인으로는 임권택·이창동·박찬욱·임순례·김기덕·홍상수 감독, 배우는 최민식·이병헌·배두나·하정우·조진웅·김민희 등이 있다. 정정훈·홍경표 촬영감독, 김현·양진모 편집감독, 류성희·조원우 미술감독, 이병우 음악감독, 정서경 작가,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등도 아카데미 회원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영화인들도 2016년 이후 대거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얻었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새롭게 아카데미 회원이 된 ‘국제적 멤버’(international member), 즉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 영화인들의 비중을 보면 영국 23%, 프랑스 16%, 멕시코 6%, 중국 6%, 한국 4% 등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기생충>

아카데미 회원의 세계화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뉴욕과 LA에서만 주로 열리던 아카데미 행사가 로마, 파리, 마드리드를 비롯해 유럽에서도 개최된다. 칸영화제 기간에도 행사가 열리기 시작했다. 로렌자 무뇨즈(Lorenza Muñoz)는 아카데미의 멤버십과 시상식 책임자(Managing Director, Membership and Awards.)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미국의 것이 아니다. 글로벌 비즈니스다.”(Film is not just the United States, it's a global industry.) 외국어영화상이 올해부터 국제장편영화상으로 이름을 바꾼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기생충>의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의 말을 인용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모든 게 멀게 느껴졌다. 지금은 우리 영화를 통해 그 간극이 좁혀지는 것 같다.”

지난해 화제가 됐던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19년 10월 7일(현지시각) 보도된 ‘벌처’(vulture)의 기사다. 봉준호 감독은 “왜 한국영화가 그동안 오스카 시상식의 후보가 되지 못했나”라는 질문에 “오스카 시상식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매우 지역적(local)이다”라고 답했다. 이른바 ‘로컬’ 발언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 인터뷰 내용을 보며 가볍게 웃고 넘어갔을 것이다. 이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기생충>의 오스카 6개 부문 후보 지명과 4개 주요 부문 수상은 분명 봉준호 감독과 배우, 스태프의 노력으로 일군 성과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아카데미의 세계화가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로마>

지난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감독상, 촬영상, 국제영화상 등 3개 부문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작품상에서 탈락한 <로마>는 스페인어로 제작된 멕시코 영화다. 올해 <기생충>의 오스카 싹쓸이로 인해 이제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오스카 시상식은 확실히 변했다. 적어도 변하고 있는 중이다. 로컬에서 글로벌로. 감히 말하자면 오스카는 92년간 이어온 선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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