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의 명곡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조회수 2019. 11. 23. 18: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 내품에" 주옥같은 유재하의 명곡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아름다운 선율과 감각적인 가사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키며

한국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예술가


가수 유재하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비록 단 한 개의 앨범을 남겼지만
음악성과 대중성에서 모두 인정받으며
한국 대중음악 명반 1위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유재하는 사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습니다.
한양대 작곡과에서 다양한 작,편곡법을 배웠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비롯한 다양한 악기 연주에도 능했죠.

하지만 유재하는 학부시절부터 대중음악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유재하 군과 제 동생과 동창이에요.
저는 20대 초반에 여러 밴드를 하고 있었고,
그 당시에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이었고,
그 전에는 사랑과 평화였어요.
다 유명한 팀이었거든요 그 당시에
재하가 보고서 제 동생한테
‘너 형 음악 하는 거 자기가 알고 있고 
같이 좀 만나고 싶다’ 그래서 (저희 집에) 오게 됐어요
제 방이 그 층에 제 방만 있었어요
거기 피아노와 전축이 다 있었고,
가지고 있던 악기들이 다 거기 있었고요.
아주 다양한 음악을 나눴어요.
비틀즈도 듣고 있었고. 뭐 이글스, 국악까지
자주들 모였죠.
둘이서 지냈던 게 몇 번 있었는데
테이프에다가 어떤 리듬 같은 거 녹음해서 틀어 놓고서 
재하 기타 치고 제가 베이스 치고
이런 식으로 합주하고 그러면서 ‘형 이거 누구한테 드린 곡이야’ 그러면서 치는 곡들이 있었는데, 
그게 다 나중에 생각하니까 이문세 씨 드렸던 곡들.
이런 곡들이에요.
그 곡들이 다 너무 아름다웠어요.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에
재하랑 이제 깊은 대화를 나누는데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재하가
자기의 음악이 소수의 사람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한테 들려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재하가.
그래서 ‘아 그렇구나’
그때 그 송홍섭 선배님
조용필 밴드에서 베이스 하고, 편곡 이런 걸 맡고 있었거든요.
(선배님께) ‘이 친구는 그런 뜻을 갖고 있는 
친구다’라고 소개드리고 (했죠)"
음악성을 인정받은 유재하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등
당대 최고의 밴드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만의 음악을 고민하며 밴드를 떠나죠.
이후 사비 800만 원을 들여
솔로 앨범을 준비하기 시작하는데요.
혼자서 앨범 속 모든 곡의
작사 작곡 편곡을 담당했죠.

1980년대 당시에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선명하게 분업화돼 있었는데요.
때문에 한 사람이 앨범의 전 과정을 관장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죠.
오케스트라 반주는 자신의 지인들을 섭외해 
하나씩 녹음했고,
오케스트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악기는
유재하 본인이 혼자 연주했는데요.

한국 1인 프로듀싱의 시작인 셈이었죠.
보통 유재하의 음악을 떠올리면
감성적인 발라드를 떠올리는데요.
사실 유재하의 1집 <사랑하기 때문에>에는
발라드만 담겨있지 않습니다.

클래식, 재즈, R&B등 
다양한 음악 장르들이 담겨있는데요.
재즈와 클래식을 즐겨 듣던 유재하는 
당대 대중음악 흐름과는 조금 다른
신선한 실험들을 담고자 심혈을 기울였죠.
"당시 ‘재즈’라는 음악에 대한 관심들이 많이 있었어요.
유재하도 처음에 따라서 재즈를 하려고 같이 했죠.
음악도 듣고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는 재즈도 많이 듣는데
그런 쪽은 좀 아닌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쪽은 좀 다른 쪽이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것만 음악이냐,
너 지금 하는 거 좋으니까 그거 해라'
그래서 그거 한 거예요.

(당시) 음악하시는 분들이 자기가 어떤 오케스트레이션이나 편곡해서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유재하 경우는 자기가 작곡과 다녔으니까 자기가 편곡을 해서 음반에 같이 당사자가 직접 (했죠).
(앨범 나왔을 때) 가수분들이 뭐라 그랬냐면
‘유재하 이거 노래….’
보통 다른 가수 분들하고 다르잖아요.
열창하고 뭐 음도 많이 올라가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고.

몇몇 분들이 '아이 노래를 자꾸 하냐'고 
'걔 노래 하면 안 되는데 자꾸 노래를 하냐'
이런 사람도 있었고.
주위에서 그런 사람들 얘길 들었으니까.
‘뭐 그런가’ 그러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다시 들었는데 참 좋더라고요.
제가 전화를 했어요 '야 재하야 너 이거 노래 하길 잘했다
야 이거 진짜 좋다니까 남들이 뭐라 그래도 
신경 쓰지 말고 Go for it 해라 
진짜 좋다' 그랬더니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유재하씨가 이런 얘길 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굉장히 소심하고 서정적이고 많이
그럴 거 같은데 실제론 안 그렇고
대범한 면도 많고 용기도 있고 그래요.

자기 음반 굉장히 좋아했던 거 같아.

음반을 옛날에 lp죠
음반 나오면 차 뒤 트렁크에 싣고
신촌이나 이런 카페를 있잖아요.
그런데 갖고 다니면서 자기 판이라고 틀어 달라고
그렇게 홍보도 열심히 했던 걸로 기억해요."
1987년 11월 1일

강변북로를 달리던 차가
마주오던 택시와 부딪힙니다.

조수석에 있던 25살 청년
유재하는 그렇게 세상을 떠납니다
첫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낸지 
4개월 만의 일이었죠.
"그게
광민이가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지금 서울에서 전화가 왔는데
재하가 그렇게 됐다’고

그런 일이 생기면
섭섭하게 했었던
해줬던 그런 것들이 더 생각나는

‘좀 더 잘해줄 걸’
그 생각이 굉장히 오랫동안 있었어요 사실은
‘아 그때 좀 더 따뜻하게 얘기해줄 걸’"
"같이 있었다면 지금도
같이 술 한잔 곁들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텐데
워낙 일찍 세상을 떠나서 안타깝고
그리고 또 살아 있었으면 굉장히 
정말 아름답고 주옥 같은 곡들을 많이 남겼을 텐데
그런 것이 끊겨 갖고 굉장히 안타깝고."
사후 유재하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음반 수익과 성금을 기반으로
‘유재하음악장학회’를 설립하는데요.

‘유재하음악장학회’는 1989년을 시작으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열어 입상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습니다.
유재하의 음악적 성과들을 기리고자 자신이 작곡한 곡을 기반으로 경연대회가 펼쳐졌는데요.

유재하의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실험적인 싱어송라이터들이 이 대회를 통해 배출됐죠.
유희열, 방시혁, 김연우, 스윗소로우, 옥상달빛 등 
현대 대중음악의 중추를 이루는 뮤지션들 모두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통해 배출됐습니다.
하지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매번 순탄하게 이뤄져 온 것만은 아닙니다.

경제 위기로 큰 재정난을 겪으며 2005년 열렸어야 할 17회 대회가 무산돼 버리고 말았는데요.

이 시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문들과 유재하를 기리는 뮤지션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기금 마련 공연을 통해 2006년부터 다시 이어갈 수 있었죠.
이후로도 재정을 비롯한 여러 문제로 인해 무산 위기에 몰리게 되는데요.
유재하의 음악적 업적을 이어받아 더 많은 가능성을 탄생시킨다는 취지에 공감한 CJ문화재단이 손을 내밀었죠.

2014년부터 CJ문화재단과 유재하 동문회가 
함께 주관하여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이어지고 있는데요.
올해로 30회를 맞게 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이었는데, 대학 졸업을 앞두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유재하 선생님이 그런 앨범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이제껏 저희 후배들이 발자취를 따라서 그런 가사에 집중된 서정적인 음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고"
"1위를 쫓는 경연이라기 보다는, 같이 음악하는 친구들이랑 모여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서"
"특히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시는 분들한테는 이 경연대회가 좀 의미가 더 큰 대회인 것 같아요."
"다른 경연대회랑 다른 점음
이제 동문으로 저희가 들어가게 된 점에 있고,
이 큰 커뮤니티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점에
있는 것 같아요.

동문 출신 중에 굉장히 유명하신 분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그런 걸 생각하면.
정말 영광스러운 자리가 되는 경연대회라고 생각합니다"
"음악 프로그램들이나,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뭔가를 특출나게 잘해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저는 사실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 보면 그렇게 특출나지 않고, 하지만 그게 하나로 합쳐져서 제 이야기를 할 때는 그냥 내 이야기기 때문에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현재까지도 영감이 넘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플레이그라운드로서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해내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지금도 매년 포스트 유재하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유재하 경연대회가 특이한 게
다른 것보다 조건이 좀 까다롭잖아요.
예를 들어서 당사자가 노래도 직접 불러야 되고,
곡도 직접 써야 되고 이제 그런 것들
멋있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음악들 많이 많이 만들어가지고
많이 마음에 위로도 주시고,
또 즐거움도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 재하는 불의의 사고로 일찍 떠났지만,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음악 안에서
빠져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주 많은 좋은 작품들을 좋은 소리들을 내줬을 꺼라 생각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젊은 친구들도 좀 더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고 자기의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면 계속 음악 안에 들어가서 좋은 소리 내기 위해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