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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술가들은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좋아할까?

조회수 2020. 2. 13.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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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고양이를 그린 이유
예술의 역사 속에는 많은 고양이가 있었죠.

그중에서 가장 도발적인 고양이는 '마네'의 고양이였습니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1865년 이 작품이 공개되었을 때, 파리 화단이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왤까요?
이 그림은 올랭피아의 모티프가 된 그림인데요.
둘을 비교해보면, 올랭피아 쪽이 더 투박하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죠.

붓자국이 다 드러나 보이고, 입체감이나 음영감도 보이지 않고, 여인은 부담스럽게 정면을 보고 있어요.

당시 화가들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본적인 규칙들을 전부 배반하고 있었던 겁니다.
다른 점은 또 있어요.

바로 '고양이'였죠.

우르비노의 비너스에는 흰 개가 그려져 있는데, 올랭피아에는 검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어요.

고양이를 그려서 얻으려고 했던 효과는 뭘까요?
당시 고양이는 어떤 의미였고, 마네는 어떤 규칙을 깨려고 했던 걸까요?
여러분, 고양이 좋아하시나요?

도도하고 날카로운 얼굴
사뿐사뿐 걷는 우아한 몸동작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주죠.

사람들과 관계 맺기 시작한 이래 고양이들은 늘 사랑받는 동물이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어땠을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신으로 숭배되었어요.

동아시아에선 장수의 상징이었고,
이슬람 세계에선 영물 대접을 받았죠.
그런데 중세 유럽의 분위기는 좀 달랐어요.

고양이가 악마와 연결되었던 거예요.
근본적인 이유는 고양이의 태도였습니다.
고양이는 사람에게 꼬박꼬박 밥을 얻어먹지만, 개나 말처럼 사람을 따르지는 않죠.

함께 살되 길들여지지 않는 모습은 '배은망덕'이라는 단어와 쉽게 연결되었어요.

또 고양이는 남들 다 자는 한밤중에 돌아다니고, 밤에 우는 소리는 좀 섬뜩한 느낌을 주죠
악마가 실제로 있다고 믿었던 시절,
‘고양이가 악마와 서로 교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어요.
14세기에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흑사병이 퍼지기 시작했거든요. 흑사병은 유럽을 덮친 최악의 전염병이었어요.

이 때문에 당시 유럽 인구의 1/3이 줄 정도였죠.

사람들은 흑사병이 악마의 저주라고 생각했고, 악마의 상징이었던 고양이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럽 전역에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죠.
박해는 다양한 모습으로 이뤄졌어요.

몽둥이로 때리는 이도 있었고, 강에 내던지는 이도 있었죠.
프랑스에서는 매년 6월 24일이 되면, 성 요한 축일 행사를 벌였는데요.

이때 수백 마리의 고양이를 잡아 자루에 담고 산 채로 모닥불에 던졌습니다.

성 요한 축일이 되면 마녀들이 검은 고양이로 변신해 나쁜 짓을 저지른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벨기에 이퍼 시에서는 고양이 던지기가 연례행사처럼 이뤄지기도 했어요.

그들은 고양이를 던지면 마을의 액운도 멀리 날아가버릴 거라고 믿었습니다.

마을 경기가 안 좋을 땐 더 많은 고양이를 던졌죠. 그곳은 고양이 지옥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상황이 나아졌을까요? 17세기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여요.

당시는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교회의 권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고, 과학과 철학의 발달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려는 생각이 싹트고 있었죠.

우리는 이때를 ‘이성의 시대’라고 불러요.
덕분에 고양이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바뀌어 갔습니다.
18세기 후반에 그려진 이 그림.

새하얀 털로 뒤덮인 고양이가 단독으로 그려져 있죠.
이건 놀라운 변화였어요.

이전까지의 고양이들은 천사가 오면 달아나거나, 노파의 기도를 방해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지 절대 그림 속 주인공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 그림은?
고양이가 당당히 주인공이 되어 있죠.

살도 토실토실하고 빛깔도 좋은 게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랐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구요.
고양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반려동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정황들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은 19세기 초에 그려졌는데요.

여러분, 고양이가 드디어 해냈습니다!ㅎㅎ
집사가 접시를 들어 고양이에게 음식을 주고 있어요!

18세기 말에 그려졌던 이 그림에선 집사가 고양이를 내려다보고 있는데요.

이 그림에선 집사가 무릎을 굽힌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양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있죠!

고양이와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느껴지지 않나요?
이러한 변화 속에서 1865년,
마네 역시 고양이를 그려 내놓습니다.

올랭피아의 원래 제목은 ‘고양이와 함께 한 비너스’였어요.
그만큼 그림에서 고양이를 중요하게 여겼던 건데요.

대상은 아름답게 재현되어야 한다는 규칙, 여성은 시선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규칙.

마네는 ‘절대 이래선 안 돼!’ 하는 규칙들을 하나하나 깨 나갔고 이 과정에서 고양이까지 그려넣습니다.
순종의 상징인 개 대신 고양이를 그려넣음으로써 마네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려 했던 것 같아요.

집사와 함께 살면서도 집사가 마련한 규칙에 저항하는 고양이처럼 마네 또한 화단에 몸을 담으면서도 화단의 규칙에 도전하고 있단 걸 말이죠

마네의 도전은 마네 이후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예술의 사명은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규칙을 깨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있다는.

이와 함께 고양이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습니다
현대의 예술가들이 갖춰야 할 어떤 태도를 상징하는 존재가 된 거예요.
“함께하되 길들여지지 않기”

고양이는 이후 많은 예술가들의 뮤즈로, 조용한 작업실 식구로, 영혼의 단짝으로 사랑받는 존재가 됩니다.
오늘날 고양이는 가장 사랑받는 반려동물이 되었어요.

인간과 함께 살면서도 인간의 규칙을 따르지 않았던 고양이
때문에 핍박받았지만, 끝내 이미지를 반전시켰고 결국 사랑받는 데 이르렀죠.

오늘날 우리는 고양이를 사랑하고, 고양이를 사랑하듯
고양이의 태도를 사랑합니다
누군가에게 꼬박꼬박 밥을 신세지더라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는 태도.

사람들과 함께 하되
‘자존’을 지키는 그 태도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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