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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손가락은 왜 욕이 됐을까?

조회수 2020. 7. 24. 13: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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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손가락 욕의 비밀
작품 속엔 수많은 손가락들이 있습니다.
창조하는 손가락, 의심하는 손가락.
이렇게 다양한 손가락들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손가락은 바로 이것일 겁니다.
다들 무슨 의미인지 아시죠?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건 왜 욕설이 되었을까요?
고대 그리스에서 가운데 손가락은 동성애를 의미했습니다.

쭉 뻗은 가운데 손가락이 음경, 양쪽에 웅크린 손가락들이 고환을 상징했고
이를 통해 남성의 성기, ‘남근’을 형상화했죠.
이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일화는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이야기인데요.
누군가 디오게네스에게 데모스테네스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자, 디오게네스는 가운데 손가락을 쭉 펴서 데모스테네스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데모스테네스의 위치뿐 아니라 성적 취향까지 암시한 것이었죠.
물론 여기에 엄청난 모욕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동성애를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알고는 있어…” 정도의 의미였죠.
가운데 손가락이 모욕의 의미를 갖게 된 건 고대 로마시대부터였던 걸로 추정되는데요.
로마의 3대 황제 칼리굴라의 신하 중에는 호민관이었던 카시우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동성애자였는데요.
칼리굴라는 카시우스가 예법에 따라 그의 손에 입맞춤을 하려고 할 때마다
가운데 손가락을 쭉 펴보이며 그를 조롱했다고 합니다.
이걸 궁궐의 다른 사람들도 따라하면서요.
가운데 손가락을 쭉 펴 보이는 건 점점 성적인 모욕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요인도 있었는데요.
바로 ‘사악한 눈’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당시 일부 로마인들은 사악한 눈이라는 게 있다고 믿었고 그게 사람들에게 재앙을 가져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남근을 형상화한 장식품을 만들거나 돌에 남근을 조각해 사악한 눈을 쫓아내려고 했죠.
아니면 그냥 간단하게 (손가락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요.
그로부터 천 년 뒤 가운데 손가락을 다시 한 번 소환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15세기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난 백년전쟁인데요.
당시 영국군의 주력은 궁수였습니다.
영국군 궁수가 쏜 화살은 중무장한 기사의 갑옷도 뚫을 정도로 강력했죠.

때문에 전쟁 초기 영국이 프랑스를 압도했던 데는 궁수의 역할이 꽤 컸습니다.
그래서 당시 프랑스군은 영국군 궁수를 포로로 잡게 되면 다시는 화살을 못 쏘도록 손가락을 잘랐다고 합니다.

영국군 병사들은 프랑스군의 만행에 치를 떨었습니다.
그래서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게 되면 손등을 바깥으로 한 채 검지와 중지로 V자를 그려 상대방을 조롱하곤 했죠.

그건 ‘내 손가락이 잘리지 않았다’ 즉 ‘승리했다’는 의미였습니다.
오늘날 이것은 승리의 의미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영국에서는 여전히 모욕의 의미가 더 강한 제스처입니다.
그리고 이 V에서 검지를 내리면 우리가 잘 아는 그 모양이 되는데요.

역시 ‘내 손가락이 잘리지 않았다’는 의미였고 제스처와 함께 이렇게 외치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활시위를 당길 수 있다네!”(We can still pluck yew!)

여기서 주목나무(Yew)로 만든 활을 당긴다(Pluck)는 뜻의 ‘Pluck Yew’가 시간이 흐르면서 ‘Fuck You’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 영상 맨 처음에 나왔던 이 그림을 다시 보면 어떨까요?

이 작품은 16세기 독일의 화가 한스 홀바인의 '무덤 속 예수의 시신’인데요.
예수의 가운데 손가락이 시선을 빼앗는 작품이죠.
물론 우연히 저 모양이 된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요.
홀바인이 다른 작품에서도 상징과 은유를 즐겨 사용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냥 넘기긴 쉽지 않습니다.

왜 작품에 손가락 욕이 그려져 있는 걸까요?
16세기는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던 시대였습니다.

당시는 1517년 마르틴 루터가 교회의 부패를 고발한 이후
그 의견에 동조하는 세력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던 때.
홀바인 역시 종교개혁의 열렬한 지지자였죠.
때문에 당시 교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그림 속에 듬뿍 녹여내기도 했는데요.
바로 이 그림이 그걸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죽는 순간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낸 얼굴.
앙상한 갈비뼈와 피로 물든 상처.
발등의 상처는 벌써 검은색으로 변해 있죠.
이전의 그림들이 예수를 아름답게 그리기만 했다면 홀바인은 예수의 죽음 하나만을 파고들었고 섬뜩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해냈던 겁니다.
그리고 성기를 가린 천조각과 그 근처에 놓인 가운데 손가락.

오랫동안 남성의 성기를 상징했던 그 손가락으로 시선이 옮겨가면요.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죠.

‘죽으면 결국 성기를 가릴 천 조각 뿐, 살았을 때 화려한 의복이 다 무슨 소용일까?’
홀바인은 타락에 젖었던 당시 교회에 대고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종교개혁의 물결은 멀리 보면 미국의 탄생을 낳았습니다.

17세기에 여러 유럽 국가들은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 세력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요.
때문에 일부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서 새로운 개신교 사회를 세웠고 그게 오늘날의 미국이 되었죠.
미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 19세기 말에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문화도 미국 사회에 서서히 스며들었죠.
이건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장면을 최초로 포착한 사진입니다.
이 사람은 미국의 야구선수 찰스 래드번인데요.
동료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왼손으로는 슬쩍 가운데 손가락을 쭉 펴보이고 있죠.
이후 가운데 손가락은 영화나 TV 같은 미국의 대중매체를 통해 반복 노출되었고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욕이 되었습니다.
모욕과 위협이었고, 조롱이었으며,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던 가운데 손가락.
우리가 날리는 가운데 손가락에는 이처럼 오랜 역사가 숨어있기도 한데요.

그렇다고 함부로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건 피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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