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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비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죽음

조회수 2021. 2. 16. 16: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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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인이 물에 빠져 죽은 이유

싱그러운 자연에 폭 안긴 듯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여자


여자가 입고 있는 고급스러운 

은빛 드레스 옆으로

각기 다른 색을 자랑하는 꽃들이 

흩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몸이 물에 반쯤 

잠겨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여자는 그저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긴 채,

그의 손도 헤엄치려는 

의지 없이 늘어져 있습니다


거기까지 관찰하고 나니

편안하게 풀려있는 것처럼 

보였던 여자의 표정도

영혼 없이 텅 빈 것처럼 보입니다


신비로운 분위기가 매력적인 이 작품은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아>입니다

오늘날 책 표지나 핸드폰 케이스 등

다양한 곳에서 사랑받는 그림이라

한 번쯤 보신 분들도 계실텐데요


실제로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 꼽히기도 했죠


평화롭고 예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도 드는 <오필리아>


이 그림은 왜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졌을까요?


아름다워 보이는 <오필리아>는 사실

아름다움에 반발하며 탄생한 작품입니다


<오필리아>가 태어난 1851년


당시의 화가들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내려온

정형화된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었는데요

진정한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전성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라파엘로의 스타일을 따라 해야만 했습니다


한마디로, 예술이 공식처럼 

정해져 있었던 거죠


이 공식만 지킨다면 누구든 

유능한 화가가 될 수 있었다는 얘긴데요


이에 반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를 그린 밀레이가 

그 대표적 인물이죠


특출난 예술적 재능으로 11살부터

영국 최고의 예술학교인

 ‘왕립 아카데미’에 다녔던 밀레이


그는 학교에서 배운 똑같은 

구성과 테크닉으로만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품게 됩니다


밀레이는 그림 속에 

화가만의 생각과 의미가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들을 모아 학교에서 배우는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들기로 하죠




                       


밀레이와 친구들은

지금의 예술이 르네상스 시대의

 ‘라파엘로’부터 왔으니


‘라파엘이 태어나기 이전의 

예술로 돌아가자’고 뜻을 합칩니다


그리고 서로를 형제라 부르며 

라파엘 ‘전’파를 결성하죠


이것이 바로 라파엘 이전의 형제들, 

라파엘 전파의 탄생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이 싫어한 것은

라파엘로의 미술이 아니었습니다


라파엘로와 같은 거장들의

틀에 박힌 양식을 모방하게 해

예술의 공식을 만든

‘왕립 아카데미’에 반항한 것이죠



그들이 스스로를 PRB라고 부른 것도

왕립 아카데미의 교장만

쓸 수 있는 서명이었던

PRA(Principal of Royal Academy)를

조롱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방법대로

완벽하고 이상적인 공식의

그림을 그리는 대신

산으로 강으로 이젤을 들고 나갑니다


그리고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리기 시작하죠



꽃과 나무의 본연 그대로의

색을 담기 위해서 수년간 영국의

그림에서 볼 수 없었던

청록색, 자주색, 보라색을 다시 쓰게 됩니다


이렇게 밝고 다채로운 

색의 활용은 당시엔 아주 혁신적이었죠


그림의 주인공인 사람만큼이나

배경이 되는 자연을 동등하게 

중시했던 라파엘 전파


창시자인 밀레이도 <오필리아>의 

배경을 그리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강가를 발견한 밀레이는

그 앞에 이젤을 가져다 놓고

매일 11시간씩, 주 6일, 꼬박 5달

동안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거의

 10,000(1만) 시간에 달하죠


당대의 화가들도 배경을 

그리기 위해 자연으로 나가긴 했지만


대부분 간단한 스케치 작업 후 

작업실로 돌아와 그림을 완성했죠


하지만, 밀레이는 이 강가에서 

5개월을 보내며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모두 완성합니다


<오필리아>에 등장하는 꽃들의

실제 개화 시가가 모두 다르다고 하니

밀레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배경에 투자했는지 알 수 있죠


날씨가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영국

밀레이는 그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그야말로 

‘극한직업’에 가까웠다고 고백했는데요


이는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서리의 파리들은 더 억센거 같아. 

사람 살을 뜯어먹으려는 경향이 있어.

최근에는 남의 들판을 무단침입하고, 건초를 망쳤다며

법정에 출두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았지.

그리고 강풍에 휩쓸려서 물에 빠질 뻔한 적도 많아.

이런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살인자에게 교수형을 처하는 것보다

 더한 형벌일 거라고 확신해.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사정은 더 나빠졌죠


밀레이는 눈을 피하기 위한 

움집을 짓고 그 안에서 

계속 작업을 강행합니다


짚으로 덮은 보초소 같은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 마치 

로빈슨 크루소가 된 심정이야


이렇게 집요한 관찰 끝에 

밀레이가 그린 자연은

정말 사실에 가까운 모습이었는데요


얼마나 정교하게 그렸는지

밀레이의 그림 속 꽃을 사진으로 

찍어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실제 그 꽃이 나온다고 하네요


밀레이가 이토록 풀 하나, 꽃 하나까지

세밀하게 그려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꽃말’ 때문이었죠

이 꽃말을 이해하려면 그림 속의 여자

‘오필리아’가 누군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데요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가 등장하는 바로 

그 유명한 작품이죠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일부러 미친 척을 합니다


그러자 햄릿의 연인이었던 ‘오필리아’는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알아오라는 

명령을 받게 되는데요


햄릿은 이 상황을 눈치채고

오필리아에게 저주에 

까운 악담을 퍼붓죠


그러면서 누가 이런 일을 

시켰냐며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커튼 뒤에 숨어 

이 모든 상황을 감시하던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맙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엄청난

참극에 오필리아는 그만

미쳐버리고 마는데요


이후, 매일 노래를 부르며 

화관만 만들던 오필리아는

꽃을 따려다 개울가에 빠지게 되고 

익사한 채로 발견됩니다


햄릿의 어머니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이렇게 전하죠




그 애가 늘어진 버들가지에 화관을 걸려고 했을 때

심술궂은 은빛 가지가 갑자기 부러져

화관과 함께 흐느끼는 시냇물 속에 빠지고 말았어

그 애는 마치 인어처럼 늘 부르던 찬송가를 부르더라

마치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사람처럼

하지만 그것도 잠깐, 마침내 옷에 물이 스며들어

무거워지는 바람에 아름다운 노래도 끊기고

그 가엾은 것이 시냇물 진흙 바닥에 휘말려 들어가 죽고 말았지 

밀레이는 이 구절에 

아주 충실하게 <오필리아>를 그려냈습니다


완성하지 못한 화관을 쥔 손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는 입까지 모두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대로라면 

오필리아는 곧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운명이죠


그러니까 지금 그림 속 오필리아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태라는 말인데요


밀레이는 그런 오필리아의 

감정을 꽃을 통해 영리하게 표현해냈죠


오필리아의 머리 위로 드리워진 

수양버들은 ‘버림받은 사랑’을


버드나무 가지 주변에 자라고 있는 

짙은 녹색의 쐐기풀은 ‘고통’을 뜻합니다


오필리아의 목에 걸려있는

제비꽃은 ‘육체적 순결’과 ‘젊은 날의 죽음’을


그의 뺨 옆에 있는 장미는 

오필리아의 오빠 레이어스가

그를 ‘5월의 장미’라고 부르던 것을 뜻합니다.


물론 ‘젊음’, ‘사랑’, ‘아름다움’의 의미도 있죠.


오필리아의 오른손 주변에 

떠있는 붉은 양귀비꽃은

'깊은 잠'과 '죽음'을 뜻합니다.


그 옆의 흰색 데이지꽃은 '순결',

오른편의 노랑색 팬지꽃은 

'공허한 사랑'을 뜻합니다.


팬지 왼편의 작고 붉은 

아도니스꽃은 '슬픔'을 의미하죠.


그리고 그림 오른편 덤불 속에는

구멍 세 개가 움푹 파여있는 걸 

발견할 수 있는데요


마치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상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밀레이는 왜 그림의 주인공으로

오필리아를 선택했을까요?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죽기 직전의 오필리아의 모습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밀레이가 속해있던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눈으로 본 사실’만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오필리아>의 자연 배경을 그리기 위해서

5개월 동안 한자리에 못 박혀 

그림을 그렸던 밀레이


그의 욕심대로라면

아마 오필리아의 실제 모델도

강 위에 띄워둔 채로 그리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 없었죠


그래서 그는 그 대신

오필리아의 실제 모델인

 엘리자베스 시달에게

드레스를 입고 물을 가득 채운 

욕조 안에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은

직접 보지 않은 것을 그릴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오필리아가 죽던 그 순간 

그대로를 재현하게 한 겁니다


오필리아가 죽기 직전,

그의 드레스가 어떻게 물 위에 떠 있었는지

그리고 점점 물을 먹은 옷자락이

어떻게 수면 아래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지를요


처음엔 물에 잠긴 모델이 춥지 않게

욕조 아래 초를 켜주기도 했다는데요

밀레이가 어찌나 오래 집중을 했던지

초가 다 꺼지고 물이 

차갑게 식을 때까지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결국 모델이었던 엘리자베스 시달은 

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죠


단단히 화가 난 시달의 

아버지는 밀레이를 협박해

병원비를 받아가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밀레이는 그만큼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에서 

묘사된 오필리아의 죽음을

정확하게 눈으로 보고 

그리고 싶었던 것이겠죠


그렇게 해야만

오필리아가 죽기 직전에 느꼈을 감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밀레이는 오필리아가

‘불행을 모르는 것처럼’ 죽어가는 모습,

모든 고통과 광기를 초월하고 

끝을 기다리는 모습을

관찰한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밀레이는 오필리아가 죽어가는 과정을

가장 사실적으로,

 또 가장 정교하게 그렸습니다


인물의 손동작부터 풀 한 포기까지

의미 없이 그린 것이 하나도 없죠

그림을 보는 관객들은

밀레이가 <오필리아>를 그릴 때 그랬듯,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 샅샅이 살피면서

완전히 몰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질문하도록 만들죠


왜 오필리아는 이렇게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걸까요?

그의 죽음은 그저

 안타까운 사고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그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일까요?


이처럼 이 그림을 본 사람은

장면 너머의 감정을 상상하며

화가와 함께 이 작품 속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우면서도 

섬세한 그림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땐 

그리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신문들은 <오필리아>를

“잡초가 무성한 배수로에 담겨져 있다”거나

“우유 짜는 여자를 연상시킨다”며 혹평을 했죠


그러나 밀레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후대 예술가들이 이해하고 

동의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데요



프랑스 초현실주의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도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극찬하면서

자신이 표현한 ‘오필리아’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광고와 영화 속에서도

<오필리아>는 끊임없이 오마주 되며

그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죠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묘사된 자연 속에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허구의 인물 ‘오필리아’


여러분들은 이 아름답고도 

섬뜩한 매력의 그림 속에서

어떤 감정을 가장 먼저 읽어내시나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