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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각상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조회수 2021. 3. 7. 11: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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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조각의 아버지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고심에 빠진 표정과

턱을 괸 팔


깊은 생각에 빠진 근육질의 남성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철학자의 말처럼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

인간의 가장 일상적인 순간을 담아내며

‘생각’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 자리매김했는데요


이 작품 특유의 고뇌에 빠진 모습은

일상 속 고민의 순간과 결합되며

많은 패러디를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지식과 철학을

또 때로는 인간 존재 그 자체를 상징하며

우리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은 이 작품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이 조각상은 한국에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호암미술관의 수장고에 위치해 있죠


그런데 파리의 로댕 뮤지엄에도

이 조각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조각상은 다른 모습이죠


하나는 거대한 조각의 한 부분으로

또 하나는 이 조각 혼자 

거대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크기도 모습도 다르지만

모두 오귀스트 로댕의 원작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세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에노스 아이레스

코펜하겐과 스톡홀름에서도 만나볼 수 있죠



전세계엔 적어도 28개의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하는데요


모두 오귀스트 로댕의 원작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 중엔 로댕이 

직접 만들지 않은 것도

심지어는 로댕이 살아있을 때 

만든 것이 아닌 것도 있죠


사실 로댕은 조각가임과 동시에

사업가적 면모가 뛰어났습니다


그는 숙련된 조각공들을 모아 큰 팀을 이뤄

작품을 만들곤 했는데요


로댕 자신은 아이디어와 설계, 

컨셉만 만들고 조수들이 

그의 발상을 이어 작품을 만들곤 했죠


그의 작품들은 보통 원본 석고를 만든 뒤

이를 본 떠 청동 작품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한 번 만들면 여러번

똑같이 복제-재생산할 수 있죠


전세계 곳곳의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단독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6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문 작품의 일부로 제작되었죠


이 작품은 오귀스트 로댕의 또다른 명작

‘지옥의 문’입니다


1880년 로댕은

파리의 한 장식물 박물관의 입구를 

만들어달란 의뢰를 받았습니다


당시 박물관은 로댕에게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달라 부탁했는데요


신곡은 단테가 12년간 만든 서사시로

인류 문학사 중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여행자 단테가 저승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으며

서구 기독교 문명을 집대성한 

작품이라 불리는데요


‘지옥의 문’은 이 신곡 속 등장하는

지옥의 모습으로부터 모티브를 따온 것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은

이 지옥의 문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데요


사실 이 시기에는 이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The poet’ 다시 말해 ‘시’라고 불렀죠


로댕은 지옥의 문의 정중앙에 

생각에 잠긴 이 인물을

신곡을 쓴 ‘단테’라 생각했다 말합니다



처음에 ‘시’라 이름 붙였던 것

또한 이 ‘신곡’이라는 서사시를 집대성한

단테를 의미하는 말이었죠


또한 이 인물을 가운데로 수많은 존재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데요


이는 신곡에 등장하는 190여명의 

인물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단테가 그가 창조한 창조물들에게 둘러싸여

지옥의 문을 바라보며


고뇌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나왔을 때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단테’의 

모습과는 달랐기에

많은 의문을 낳기도 했습니다


창작물에서 비춰질 때 단테는 

보통 ‘가녀리고 늙은’ 모습에

천 가운을 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요


지옥의 문 속 단테는 근육질인데다가

나체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 로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댕은 사유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 단테를
근육의 나체로 재탄생시킴으로써
생각의 강인함과 깊이를 담고자 한 것이죠

이 생각하는 사람의 형태는 
문의 일부분으로만 존재하다가
1884년 한 개인 콜렉터의 주문으로
작은 형태로 별도 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사람들의 요구가 계속되면서
더 큰 형태로 재제작되었죠


사람들의 관심도 증가하면서

제목도 신곡 내용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시”에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단독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게 되면서

실제로 그 형태도 조금 변하게 되었는데요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초기

 생각하는 사람의 머리를 보면

단테가 즐겨쓰던 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로댕은 단테라는 상징을 담을 수 있기에

이것을 굉장히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사람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지면

단순히 단테의 신곡을 넘어


‘생각’ 또는 ‘지식’이라는 

더 일반적인 의미로 알려지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지옥의 문에서보다

이 모자의 부분이 덜 특징적으로 바뀌게 되죠


이런 변화 속에서 작품은

‘신곡’의 서사를 떠나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합니다



로댕은 작품활동

초기 주류 미술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파리의 살롱 전시에서 

3번이나 낙제하기도 했죠


자연스럽게 로댕은 당시 

아카데미 주류미술과는 멀어졌고

대신 상업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콜렉터의 주문을 받아 

주문 제작하는 형태로 많이 일했죠


이는 그가 아카데미와 

주류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각방식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주문제작과 개인작업을 오가며 로댕은

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개성있는 조각 방식을 연구했죠


또한 1876년에는 자신이 존경하던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직접 

보기위해 이탈리아로 떠나는데요


로댕은 ‘미켈란젤로’를 

‘위대한 마법사’라 부르며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 이탈리아 여행은 

로댕에게 큰 영감이 되는데요



특히나 나체를 많이 그리고

조각했던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부터

인간의 신체에 대한 영감을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내면의 깊은 감정과

복잡한 상징들을 담기에

인간의 형태는 최적의 

방식이라는 걸 깨닫죠


이탈리아에서 파리로

돌아온 후 로댕은 인체조각

그중에서도 나체 조각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이에게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소재이면서도

가장 깊은 철학을 담을 수 있는 통로로서

나체의 인물들을 조각했죠


그는 미켈란젤로의 신체 표현 방식과

작품 철학을 연구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발전시켜나갔습니다



실제로 ‘지옥의 문’에서도

단테를 둘러싼 장면들 속에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오마주한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죠


재밌는 사실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또한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이란 점입니다


로댕은 최후의 심판 속 심판을

내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각’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

단테의 모습으로 바꾸었죠


1877년 37살의 로댕은

파리 전시회에 '청동시대'라는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때까지 보았던 그가 만들었던,

또 사람들이 보았던 조각과는 완전히 달랐죠


우선 신화 속 존재나 우상이 아닌

일반인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리스 조각과 같은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모습이었죠


생생한 촉감과 섬세한 음영 등

이 조각은 생명력이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 작품은 논란에 휩싸였는데요


신체 사이즈부터 디테일한 부분 

모두 너무 현실적인 모습이라

실제 사람한테 찰흙을 붙여 

모델링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로댕은 결국 공식적으로 항의했고

모델이 된 군인의 누드 사진을 제시했죠


이 혐의를 제기했던 조각가 

협회는 본인들의 잘못을 시인했고

로댕은 이 사건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지옥의 문’을 의뢰받았던 

것도 바로 이 시기인데요


덕분에 지옥의 문에선 생명력이 넘치고

생생한 로댕의 조각특징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치 문을 뚫고 나올 것 같은 인물들로부터

각각의 서사를 담고 있는 조각들

그리고 세밀하면서도 투박한 인체의 표현은

이 작품을 매혹적으로 만들었는데요



의외의 사실은 이 작품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작품이란 겁니다


로댕은 극도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조각가였습니다


그는 의도된 장면보다 

대상의 순간적 모습을

빠르게 캐치해 조각하는 것을 즐겼는데요


실제로 그의 작업실에서 

모델들에게 포즈를 취하지 말고

마음대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스튜디오를 돌아다니거나 

자연스럽게 행동하길 요구했죠


로댕은 포즈보다 연기를 

주문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생각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덕분에 멀리서 보면 매우 

자연스럽게 보이는데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대단히 불편한 자세이기도 합니다


단적인 예로 이 작품 속 

팔을 괴고 있는 오른팔은

오른 쪽이 아닌 왼쪽 다리에 닿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자세죠

이는 존 밥티스 카포에 작품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더불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팔은

일반적인 사람의 팔보다 훨씬 

두껍게 묘사돼 있습니다


이는 인물의 고뇌를 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의도입니다



더불어 사실적인 묘사에 더해 

감정과 상황에 따라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는 

로댕의 작품세계를 보여주죠


이는 이상적인 모습을 표현하거나

사실적인 모습만을 담던

기존의 주류 조각방식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이렇듯 자연스러움과 자신의 

의도를 마구 섞는 로댕의 조각 방식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후 현대조각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단순히 묘사로서의 조각이 아닌

표현으로서의 조각을 담고 있죠


그 결과 지옥의 문에서도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해 ‘키스’.


‘세 망령’ 등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장면들이 연출됐죠


덕분에 지옥의 문 뿐만 아니라

이 작품 속 세세한 장면들 하나하나가 

새로운 조각으로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 만들어진지 

20년이 지난 1904년이 되어서야

큰 작품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단독 작품으로 등장한 생각하는 

사람은 금세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죠


전시 이후 프랑스의 

판테온 앞에 놓여지며


길을 지나는 대중들에게까지 

작품이 닿게 되었는데요


이후 ‘자유의 천사’, ‘빛의 거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지식’과 ‘철학’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로댕이 살아있을 적에 지어진 

로댕 박물관에 옮겨진 후

각국의 요청에 따라 새롭게 재탄생했는데요


현재에는 ‘생각’의 상징으로

또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인간’의 상징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조각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키는

 ‘생각’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


끊임없이 고민하는 한 인간의 모습 속에서

여러분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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