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걸작으로 불리는 이 작품의 비밀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 천재로 불리는 인물
라파엘로 산치오
어떻게 보면 세 명 중에서는
인지도가 가장 낮은데요
하지만 서양미술 역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고전미술을 부정하고 나섰을 때
내세운 이름은 다름아닌 ‘라파엘 전파’였죠
‘라파엘로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건데요
이는 라파엘로를 부정하는 것이
곧 고전미술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고전미술의 대명사였던 라파엘로
그리고 그의 정수가 담긴 작품
바로 ‘아테네 학당'입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진정한 창의력이란
현실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그리느냐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평평한 2차원 종이 위에
3차원 공간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르네상스 이전 회화들을 보면
대부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하고 있고 인물이나 사물의 크기도
거리에 상관없이 제각각이죠
공간감에 대해 고민했던
르네상스 화가들은 과학지식을 이용해
현실을 잘 재현하기 위한 규칙을 발견했습니다
이 그림은 다빈치의 ‘수태고지'인데요
여기 이 소실점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선들이 바깥으로 퍼져나갑니다
이 선을 따라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그림으로써
화면에 깊이감을 주고 있죠
이 작품도 다빈치의 그림인데요
빛이 왼쪽 상단에서
인물을 때리고 있기 때문에
턱 밑으로는 그림자가
부드럽게 드리워 있습니다
이런 명암 표현은 얼굴에
입체감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걸 이론화한 것이 다빈치였다면요
완성시킨 사람은 바로 라파엘로였죠
여러 개의 아치형 문이
복도식으로 쭉 이어져 있는 ‘아테네 학당'
이곳 소실점을 중심으로 선을
사방으로 퍼뜨리는 기법은
마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최후의 만찬' 속 인물들이
한 줄로 나열돼 있는 반면
‘아테네 학당'은 무려 54명의 인물들을
두 줄로 배열해 더욱 장대한
구성을 드러내고 있죠
인물이 이처럼 많은데도
잘 짜인 원근법 덕분에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또 인물의 옷과 표정은 명암법 덕분에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현실을 작품 속으로
고스란히 끌어들이려 했던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의 고민과 노력들
그 정수가 바로 이 작품 속에 담겨 있죠
그런데 작품 속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이성과 지혜를 상징하는 신
아폴론과 아테나 석상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요
이 작품은 고대의 위대한 학자들을
묘사한 상상화입니다
예를 들어 이 사람은
기하학의 토대를 세운 수학자,
유클리드인데요
그는 학생들에 둘러싸여
퍼스로 도형을 그리고 있고
한 학생은 무릎까지 꿇은 채
열심히 바라보고 있죠
그는 뛰어난 학식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는데 수많은 구혼을
전부 거절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나는 이미 진리와 결혼했다."
그 위로는 소크라테스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산파법'이라는
독특한 교습법을 발전시킨 철학자인데요
산파법이란 교사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짐으로써 학생이 스스로
더 촘촘한 의견을 구성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산파법을 통해
사람들이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깨나갔습니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명제로 이어지죠
말이야 좋지만 듣는 학생
입장에서는 꽤 고역이었을 겁니다
사람들의 못마땅한 표정에서
이것을 추측할 수 있죠
이 인물들은 하나의 소실점에서 퍼져나가는
각각의 선상에 위치해 있는데요
선들이 모이는 소실점에는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이 서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플라톤과
손을 쫙 펴서 땅을 가리키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이처럼 상반된 포즈는
두 사람의 학문적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요
플라톤은 본질은 현실 밖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이곳은 인간의
지각으로는 경험할 수 없고
오직 순수이성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걸 ‘이데아론’이라고 합니다
이데아란 ‘본질을 품은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이
현실에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하나하나의 사물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성질이
바로 본질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중요한 건
이데아가 아닌 현실이 되죠
이 그림의 중심부에 위치한 두 사
람은 서로의 철학을 나누며
세상의 이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염세적이었던 철학자
해라클레이토스
그리고 외골수적 성격 때문에
사람들과 자주 마찰을 일으켰던
미켈란젤로는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죠
라파엘로는 자신의 얼굴도 그려넣었습니다
여기, 사람들 사이에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이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화가 아펠레스인데요
아펠레스의 모델이 바로 라파엘로였죠
그는 그림 속 인물들 중 유일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이 그림을 그린 건 바로 나야!’하고
말하려는 듯 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어떤 자의식을 느낄 수 있는데요
르네상스 시대 이전까지 화가들은
‘예술가’가 아니라 ‘기술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화가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다양한 과학지식을 동원했고
이를 통해 스스로 신분 상승을 이뤄냈죠
진리를 탐구하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어떤 진리를
탐구하는 행위로 만들었던 겁니다
때문에 화가들이 예술가로서
어떤 자의식을 형성하기 시작했던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입니다
우리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는 라파엘로는
바로 그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아테네 학당〉
여러분에게 이 그림은 어떻게 다가오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