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 화가에게 벌어진 비극적 사건

조회수 2021. 3. 26. 15: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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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거침없이 남자의 머리를 베는

금빛 드레스를 입은 여자


그를 도와 남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고 있는

두건을 쓴 또 다른 여인


이 두 여자에게 제압당한 남자는

머리가 잘려나가면서도 의식이 있는 듯

저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방으로 낭자한 피와

여자들의 다부진 표정만 보아도

이 장면의 승자를 짐작할 수 있는데요


잔인한 처형의 현장을

섬뜩하리만치 사실감 있게 그린 이 그림


17세기 최초의 여성 직업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입니다


왜 젠틸레스키는

이토록 강렬한 여인들의 

모습을 그리게 된 걸까요?



이 그림은 젠틸레스키가
1612년 로마에 있을 때 그렸습니다

젠틸레스키는 이 당시
강간 사건의 피해자로 재판을 
치르고 있었는데요

가해자는 젠틸레스키의 
미술 선생이었던
아고스티노 타시였죠

400년 전 로마에서 강간죄를 다루는
법정 공방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성추행을 당한 여성은
자신이 당한 일들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고문까지 감내해야 했는데요

화가를 꿈꾸던 19살 소녀
젠틸레스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손가락이 부러질 수도 있는 
고문 기구를 낀 채로  타시가 자신에게 
한 짓을 낱낱이 증언해야 했죠

그녀는 고통 속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사실입니다! 사실입니다! 사실입니다!”
(It’s true, it’s true, it’s true!)

당시 법정 기록문 中


7개월간의 재판 끝에
타시는 2년형을 선고받지만
그마저도 교황과의 인맥으로 
곧 사면받게 되죠

젠틸레스키는
이 모든 일을 겪으며 느낀 감정을
<유디트>에 담아냅니다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칼로 목을 베어내고 있는 이 그림 

격정적인 장면의 주인공들은
실제로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금색 드레스를 입은 이 여자가 바로
‘유디트’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과부였죠


어느 날,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가

‘유디트’가 사는 마을을 침략해 왔는데요


‘유디트’는 장군을 술에 취해

인사불성으로 만든 뒤

시녀와 함께 장군의 목을 베어버리죠


대장을 잃은 아시리아 군대는 패배하고

‘유디트’는 마을을 구한 영웅이 됩니다


사실 ‘유디트’ 이야기는 젠틸레스키 외에도

수많은 화가에게 사랑받아온 소재였는데요


젠틸레스키의 스승이기도 했던

카라바조를 포함해

클림트, 보티첼리, 렘브란트까지도

자신만의 <유디트>를 화폭 속에 담아냈죠



하지만 이들의 ‘유디트’는

적장의 목을 벤 영웅의 면모보다


장군을 유혹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강조되었는데요



<키스>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으로

친숙한 클림트는 <유디트>를

두 번이나 그렸습니다


약간의 구성적 차이는 있지만

두 그림 모두 야릇한 표정을 한 여인이

가슴을 드러낸 채 장군의 목을 들고 서 있죠


방금 살인을 저지른 것 치고는

상당히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비너스의 탄생>을 그렸던 보티첼리
그의 손에서 탄생한 유디트는
마치 여신과 같은 자태를 보여주는데요

시녀가 든 머리를 보지 못했더라면
살인 전인지 후인지 알기 어려울 만큼
깨끗하고 고고한 모습입니다


렘브란트는 다른 화가들과는 다르게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연회에

참석한 모습을 그렸는데요


담비 모피와 진주, 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유디트는

마치 여왕처럼 당당한 풍채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까지 이 그림의 주인공을

어느 여왕으로 추정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유디트 뒤편의 

검은 배경을 자세히 보면

한 명의 하녀를 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잔을 들고 몸을 낮춘 여자 시종과는 달리

허름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손에는 자루를 들고 있죠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하녀는 유디트가 직접 데려온 하녀로

장군의 목을 담을 자루를 들고

몸을 숨기고 있던 것이죠


이에 작품을 소장한 프라도 미술관은

그림의 주인공을 유디트라고 

확정 짓고 논란을 종결시켰습니다



젠틸레스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유디트는

카라바조의 버전일 겁니다


카라바조는 유디트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극적이면서도 잔인한 

장면을 재현한 최초의 화가입니다


그는 금발의 소녀 ‘유디트’가

장군의 머리를 직접 베어내는 순간을 그렸죠


이미 잘린 장군의 목을 트로피처럼 곁에 두고

조각상처럼 서 있던 다른 유디트 그림들보다는

훨씬 생동감이 느껴지는데요


반쯤 잘린 목에서

비현실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피와

귓가에 비명이 들리는 듯한 

장군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그림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어딘가 어색합니다


바로 머리를 자르고 있는 

유디트의 자세 때문일 텐데요


가녀린 소녀인 유디트가

몸은 멀찍이 떨어트린 채

근육질의 몸이 다부진 장군의 목을

버터 자르듯 쉽게 썰어내고 있죠


이는 유디트가 장군을 죽이는 그 순간에도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을 겁니다


목숨을 담보로 적진에 

들어가 영웅이 되는 순간에도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의 ‘여성’인 것이죠



하지만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이들과 다릅니다


지금껏 묘사된 그 어떤 ‘유디트’보다도

힘이 세 보이고 분노로 가득 차 있는데요


남자의 수염을 꽉 붙들어 

움직일 수 없게 제압하는 왼손과 

목을 분리하는 칼을 쥔 다부진 오른손


시선은 목표물에 고정한 채 

안간힘을 쓰는 듯한 표정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그 어디에서도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는

영웅의 모습을 하고 있죠


사방으로 낭자한 피 또한

‘홀로페르네스’가 두 여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젠틸레스키는 유디트의 

강인함을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구성을 활용했는데요


남자를 제압하는 시녀의 팔부터

칼날과 천을 타고 흐르는 피는 모두


그림 정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일직선 상에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직선 한가운데에는

칼을 굳게 쥔 유디트의 손이 자리 잡고 있죠


그래서 그림을 보는 관객은

중앙에 누운 ‘홀로페르네스’보다도

유디트와 그의 힘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여성이 직접 정의를 구현하는 그 순간을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극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여성의 육체적 힘을 포착한 이와 같은 그림은

서양 회화사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었죠



이는 남성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찾기 힘들었던
호기로운 여성 영웅의 이미지를
젠틸레스키가 독자적으로 창조한 것입니다

연약한 여성이 매혹적인 
몸으로 남성을 꾀어내는 이미지가 아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새로운 
유디트를 탄생시킨 것이죠

남성을 제압하는 대담하고 
거침없는 유디트는  젠틸레스키 
본인을 투영한 것이기도 한데요

그 이유는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와 맞물려 있죠

젠틸레스키는 자신을 성추행한 타시에게
정의가 구현되기를 바라며 재판을 치릅니다

이는 자신이 순결을 잃은 여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17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이는 치명적인 낙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내한
재판의 결말은  너무나 허무했죠

젠틸레스키는 이에 붓으로 화답합니다

바로 <유디트>를 통해서죠

젠틸레스키는 ‘유디트’의 모델을 
본인으로 설정했습니다

혹시라도 자신인 것을 알아보지 못할까 봐
유디트의 팔찌에도 힌트를 숨겨둡니다

팔찌에는 활을 쏘는 그리스 여신

 ‘아르테미스’가 그려져 있죠


젠틸레스키의 이름이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합니다


또 ‘유디트’의 이야기는

기원전 6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림 속 여자들은 17세기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고려하면

성서에 등장하는 이들에게 현대복을 입혀

마치 최근 일어난 일인 것처럼 

그렸다는 의미가 되죠


그러니 젠틸레스키가

 ‘홀로페르네스’의 모델로

누구를 상상하면서 그렸을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갑니다


재밌는 사실은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그림은

젠틸레스키가 두 번째로 

린 <유디트>라는 겁니다


처음 그렸던 <유디트>에 비하면

‘유디트’가 입은 드레스는 더욱 화려해졌고


칼자루는 더 커졌으며

홀로페르네스의 근육은

 조금 더 작게 그려졌죠



놀랍게도 두 번째 유디트는

르네상스 전성기를 이끈 

이탈리아 최고의 명문가

메디치 가문에서 들어온 주문으로 

그려졌다는 것입니다


강간범을 직접 처형하는 그림을 그려

복수를 꿈꾸던 19살 소녀 젠틸레스키


그는 어떻게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는

당대 최고의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젠틸레스키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는

로마에서 이미 저명한 화가였습니다


그래서 딸 아르테미시아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보았죠


당시 17세기 여자들에게 

허락된 미술 교육은

매우 제한적이었는데요


여자는 예술학교에 입학할 수도 없었고

당시 수준 낮은 미술로 취급받던

정물화나 초상화 정도만 

그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화가인 아버지 덕분에 

정통 미술을 배울 수 있었죠


17세에 완성한 <수산나와 노인들>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재판 이후,

젠틸레스키는 추문을 피해

피렌체로 떠납니다


이곳에서도 젠틸레스키의 그림 실력은

금세 입소문을 타는데요


이를 메디치가에서도 눈여겨보고

그림을 주문한 것이죠



젠틸레스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같은 
유명인사들과 교류하고
명문 귀족과 왕가의 후원으로 활동하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갑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1616년
이탈리아 화가 협회인
‘아카데미아 델 디세뇨’의 
회원 자격을 얻게 되는데요

이는 여성 화가로서는 최초였으며
그가 직업 화가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했죠

젠틸레스키는 계속해서
전통 회화 속에서의 여성 이미지에 도전하는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이는 1630년
그가 그린 자화상에서 잘 드러나는데요

이전 시대의 여성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릴 때
자신을 귀부인으로 묘사해왔습니다

하지만 젠틸레스키는 처음으로
붓과 팔레트를 든 여성의 모습을 그립니다

정면을 바라본 모습이 아닌
대각선으로 몸을 배치해
여성임을 부각하면서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간의 
자신을 모습을 잡아냈죠

하지만 젠틸레스키가 숨겨둔 상징을
더 찾아냈다면 그가 화가로서 얼마나
자부심이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자화상 속 모습은
1593년 체사레 리파가 쓴 
<도상학>에서 따온 것인데요

추상적인 개념을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할 때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 설명한 책입니다

그중 ‘회화’를 의인화한다면
이러한 상징들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풍성한 흑발의 머리를 지닌 아름다운 여성
영감을 받은 듯한 아치 모양의 눈썹
‘모방’을 상징하는 얼굴 모양의
 팬던트와 금목걸이 
붓과 팔레트를 든 손 등이 있죠

이는 모두 그의 자화상에 녹아들어
마치 스스로가 ‘회화’ 
그 자체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의 자화상은 남성이 지배하는 미술계에서

당당히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처럼 젠틸레스키의 그림 속 여성들은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로서

다른 어떤 그림 속 여성들보다도

강렬한 기운을 뿜어냅니다


남성이 지배했던 당대 미술계에서

그들이 세운 미술의 기준을 거부하고

여성 화가로서의 주체성을 입증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그의 인생의 전환점에서 그려진

<유디트>부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그림 속에서

어떤 강렬한 힘을 느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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