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공개]미사일의 심장, 열전지의 모든 것

조회수 2018. 7. 20. 09: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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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 개발, 첨단 열전지에 숨은 과학원리

휴대폰과 자동차, 그리고 미사일의 공통점은 뭘까? 연관이라곤 1도 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에는 뜻밖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전지(battery)가 사용된다는 것! 


미사일에는 표적을 파괴할 탄두와 신관(기폭장치), 적이 있는 곳까지 날아가게 하는 연료만 있으면 되는 것 아냐? 이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미·알·못(미사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 

출처: 국방일보 양동욱 기자
중거리 유도무기 ‘천궁’ 발사 모습.

유도탄으로도 불리는 미사일은 이름처럼 유도조종을 통해 표적까지 정확하게 날아간다. 이를 위해 미사일 내부에는 눈 역할을 하는 탐색기, 두뇌 역할을 하는 유도조종장치 등이 들어간다. 이게 다 전기로 움직이니 전지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사일에는 어떤 전지를 쓸까? 주변에 넘쳐나는 AA건전지? 자동차 배터리? 물론 아니다. 미사일에는 맞춤형 전지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열전지(thermalbattery)’다. 


국산 요격 미사일 철매나 보병 휴대용 중거리 대전차 미사일 현궁 등 우리 군이 사용하는 대부분 유도무기에 열전지, 그것도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한 국산 열전지가 사용되고 있다.  

출처: 국방홍보원 이상신 PD
미사일의 심장, 열전지.

미사일은 발사 후 몇 초 혹은 몇 분 정도 날아 표적을 맞힌다.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인 출력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AA건전지로는 턱도 없다. 


차량용 배터리도 자격 미달이다.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 속 전지는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 자동차 배터리는 보통 10kg 내외, 전기차의 경우 차량 무게의 25%에 달하니 제외. 


무엇보다 미사일용 전지가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은 ‘자기 방전(self-discharge)’이 없어야 한다. 빵빵하게 충전한 노트북·휴대폰을 그냥 내버려둬도 시간이 지나면 충전량이 확 줄어드는 현상,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거다. 이게 바로 자기 방전이다. 흔한 현상이지만, 미사일 전지가 이래선 곤란하다. 

출처: 국방홍보원 이상신 PD
전지라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자기방전'. 하지만 열전지는 자기방전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미사일 수명은 보통 15년 이상이다. 휴대폰처럼 늘 쓰는 게 아니라 결정적 순간에만 발사한다. 만든 지 15년 후 발사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자기 방전으로 전지가 죽어버려 비쌀 경우 수억 원이 넘는 미사일이 제 기능을 못 한다면? 이런 낭패가 없다. 


실제로 1970년대 미국에서 도입했던 나이키 미사일은 전지가 방전돼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자기 방전 없는 열전지다. 

이런 열전지를 알려면 전지의 원리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지란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저장장치다. 전지는 보통 ‘음극-전해질-양극’으로 이뤄져 있다. 전지의 음극은 전자(e-)를 잘 내놓는 성질(산화)을 가진 금속으로 만든다. 리튬이 대표적인 금속이다. 


음극에서 빠져나온 전자가 전구·전자기기 같은 외부 회로를 통과해 양극으로 다시 들어가면서(환원) 전기가 발생하게 된다. 우리가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배우는 ‘산화-환원의 법칙’이 바로 전지의 작용 원리다. 

출처: 국방홍보원 이상신 PD
전지의 작동 원리.

전지 안에서 양극 사이를 막아 서로 닿지 않게 해주는 전해질도 중요하다. 음극과 양극이 닿으면 격렬한 화학반응이 일어나 폭발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온은 잘 통과시키는 반면 전자의 이동은 막아주는 성질도 중요하다. 


자기 방전이 일어나는 이유는 전지를 쓰지 않을 때 음극에 있는 전자가 전해질을 통해 슬금슬금 양극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지를 사용하지 않을 때 전자가 전지 내부에서 이동하는 걸 최대한 막아주는 전해질이 좋은 전해질인 셈이다. 

출처: 국방홍보원 이상신 PD
미사일에 들어가는 열전지 단면.

이런 원리는 열전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렇다면 왜 열전지에서는 자기 방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비밀은 고체 전해질에 숨어 있다. 일반 전지의 전해질은 액체지만 열전지의 전해질은 소금과 비슷한 용융염(熔融鹽·molten salt)이 주성분이다.


용융염 전해질은 상온에서는 고체여서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자기 방전이 원천 차단된 것이다. 그런데 500℃의 고열을 가하면 용융염이 액체로 바뀌면서 열전지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활발하게 작동하도록 도와준다. 

뜨거워져야 제 기능을 발휘하는 열전지의 모양은 일반 전지와 많이 다르다. 열전지 전극과 전해질은 미니 CD처럼 동그랗고 얇다. ADD는 자체 개발한 다층성형장치를 이용해 원료 물질의 분말을 압축시켜 열전지를 찍어낸다. 음극·전해질·양극이 하나씩 결합한 전지의 최소 단위를 ‘셀 (cell·단위전지)’이라고 한다. 

출처: 국방홍보원 이상신 PD
열전지의 최소 단위인 단위전지 '셀'의 구조.

신기한 건 이 열전지 셀을 쌓아 올리기만 해도 셀끼리 직렬연결돼 전지의 출력이 점점 커진다는 것. 필요한 만큼 셀을 쌓은 뒤 원통에 넣으면 열전지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500℃의 열을 내 고체 전해질을 액체로 만들어줄 화약 열원과 착화기 등을 원통에 함께 넣으면 열전지 완성! 

출처: 국방홍보원 이상신 PD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한 열전지 다층성형장치.

이렇게 만들어진 열전지의 무게는 1kg에 불과하지만,

출력은 우리가 흔히 쓰는 알칼리 AA건전지보다 200배가량 클 정도로 폭발적인 힘을 자랑한다. 안정성도 뛰어나다. 고체 전지여서 자기 방전이 없을 뿐 아니라 미사일 발사 충격이나 가속도, 진동에 강해서다. 


이처럼 미사일 맞춤형 전지다 보니 열전지는 돈을 주고도 사기 힘든 품목이다. 기술을 보유한 국가들이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ADD는 독자적인 열전지 개발에 착수해 지난 2009년 국내 최초로 열전지 핵심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출처: 국방홍보원 이상신 PD
미사일의 크기에 따라 단위전지 '셀'의 숫자를 다르게 쌓아올려 만든 여러 종류의 열전지들.

열전지 국산화를 이끈 ADD 수석연구원 정해원 박사는

"국내 기술 기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열전지를 개발하다 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많은 ADD 연구원들이 열정을 쏟은 끝에 열전지 국산화에 성공해 지난해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다"면서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산소를 전지의 양극으로 활용해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미래전지 리튬공기전지를 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글=국방홍보원 김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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