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최초 종군기자가 남긴 기록, 역사가 되다

조회수 2020. 7. 30. 17: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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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우리의 역사를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끔...

사진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 

역사...

예전에는 충무로에 계셨고

강남에서 작업하시다가

이제 여기로 옮기셨죠

Q. 계속 '청암'이란 이름을 사용하셨나요?

청암이 할아버님 '호' 입니다

그걸 계속 쓰고 있는거죠


/


옛날에 이렇게 다녔다고

짚차타고 '아미포토'라고

아버님이야 아버님... 짚차로(다니셨어요)

아버님이 45년도부터

한미 카메라점을

용산에서 했었어요

한강로 가는데 지금은 삼화...

삼각지 로터리쪽에

용산 초등학교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폭격을 맞았어요

6·25전쟁 때...

용산에 군부대가

주변에 있다보니까

다 폭삭... 카메라점이 완전히...

아버지가 이렇게 기록을 해놔요

거기에 카메라 다 있었는데


아버님은 라이카 카메라를

항상 갖고 다니면서 촬영을 했죠

아버님이 쓰던 건데

필름 넣고 이걸 돌려가지고

쓰셨겠죠

Q. 임인식 선생님께서

찍으신 건가요?

네, 다 아버님이 찍은거

나는 세 살 때 카메라 들고

사진 찍으러...


출처: 청암아카이브

우리는 완전히

(아버님의) 모델이 되는 거야

(동네) 애들하고...

(가회동)집이 밤만되면

암실이 됐죠.


필름을 찍어오잖아요

그러면 아버님이

현상하고 인화하는 것을

다 집에서 직접 했다고

그러니까 전시에는

서울에서 후퇴하잖아요


후퇴해서 대전으로 간다고 하면

대전에 사진관 하나를 접수해요


대구에 간다고 하면

사진관 하나 접수해서

필름을 현상하고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인화하고


찍기만 하면 안되잖아요

출처: 정의의진격

1950년 6월25일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국방부 정훈국이라는 곳이

명동에 있었어요


거기서 일요일에 소집병이 와서

어떻게 했는데

그 상황까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후퇴하면서 (아버님이)

일기를 쓰는 걸 내가 봤어요

출처: 청암아카이브

Q. 그럼 아버님만 후퇴하신건가요?


우린 서울에서 숨어살았어요

아버님만 후퇴한거야  그냥


참 가족을... 같이 못 간 게

아버님이 굉장히

안타까워했더라고요

종로에 한옥 아궁이 밑에

방 같은 거 있으면

숨어지내고...

아휴... 재수 없으면

다 끝나는 인생이었는데

그래도 용케 숨어 지내다 보니까... 그게

참 운명의 장난 같아요

Q. 아버님 사진 중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이 사진이 포항 안강전투에서

군번없는 학도병이라고

아버님이 저한테 가장

이 사진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얘기해 준 적이 있어요

고등학생들인데

총도 훈련도 제대로 못 받고

그냥 총 한 자루씩 주면서

이제 전선으로 출발하는 거에요


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지

출처: 청암아카이브

이건 미군이 학살되는 장면을

찍은건데

이런 사진을 AP통신으로 보내면

미국에 공개 1면 톱으로 난거에요

이건 인천상륙작전 할때

여기 아버님있고


AP통신, 뉴욕타임즈

이렇게 사진기자들과 같이

함상에서 찍은거에요

Q. 서울 어디서 만나기로 약속하셨나요?

아버님이 이제

서울 뚝섬으로,

서울로 들어왔어요


약속이 돼 있던 건 아닌데

어떻게 집 앞 근처를

수소문해가지고

그때 우리 가족을 만난 거죠

하여간 (가족을) 찾아서 (만났는데) 그것도 잠시지...

뭐 또 이제는 북진한다고 그래서...


아버님은 항상 앞서가잖아요

전투병하고 같이 일선에서

이분은(동그라미 안) 아버님이고


이 사진은 북진해서

평양에 10월 21일에 입성해서

찍은 사진이에요

사진 뒤에다 이렇게

메모해 놓은 거에요


아버님 임인식 대위,

국방부 사진대장

최영희 준장 사단장...

이렇게 다 써놨어요

정주가 고향이에요

평안북도 정주,


할아버지, 할머니를 잠깐 만나고 또

신의주까지 들어가잖아요. 압록강...

그러다가 이제...

1.4후퇴라는 게 있어요


중공군이 개입하는 바람에

갑자기 또 밀려 내려오는 거에요

이건 허겁지겁 내려오는거에요.

고향 집을, 할머니, 할아버지를

그냥 놓고 온 거야


단신으로 또 밀려 내려온 거지

평양 밑으로...

그래가지고 그때는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참 아쉬운 작별이지

임진강 건너서 헬리곱터 타고

휴전 회담하러 들어가는 거,


아버님하고 인민군하고...

이때 대위였어 친했지

(이 애는) 어린애 같아

출처: 청암아카이브

Q. 나중에 종군일기를 보시고

어떠셨나요?

나도 정확하게는 못 봤어요

상황을 잘 모르니까

대충 그런 가보다 그 정도만 알지

6·25전쟁을 젊은이들은 잘 모르잖아요

북침했다는 둥,

그게 말이 안 되잖아요


하여간 그런 것이 제대로 앞으로

정확하게 전달되야 하는데

너무 그런게 잘못전달되고

오해의 소지도 많고

말이라는게 원래

오해의 소지가 많잖아요


그래서

내가 강조하는건

'사진이 얼마나 중요하냐'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은거에요

이건 승낙서네

AP통신하고 뭐하는 것 때문에

근데 그때는 우리나라를

외국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잖아요

출처: 청암아카이브

대한사진통신사를 만들면서

이런 걸 해요

이건 AP원본이고

정부에서 행사를 하잖아요?

그럼 서울운동장(지금의 동대문운동장)에서

행사를 하게 되면

신설동에 비행장이 있어요

저쪽 마장동 쪽으로

거기에L-19 경비행장이 있었어요

거기서 처음으로 
(항공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가회동부터 청계천까지
다 찍어 놨어요
출처: 청암아카이브

그게 국가기록원에서 하는 얘기가

민간인으로서는 최초로 찍은

항공사진이래요

이게 (가회동) 항공사진인데

이 항공사진 아버님이 이제...

길 잃어버릴까 봐 이걸 만들어줬어요


그래서 호주머니에 넣고

집 잃어버리면

우리집 찾아오라고


이해가 안갈거야

Q. 아버님의 사진에서

영향을 받으신 게 있나요?

그것은 기본적으로

사진은 시간성과

장소성(공간성)이라는게

내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진에는

이야기가 들어가야해요


사진만 딱 보면

아! 이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육하원칙에 의해서

사진을 만들어놔야 되는데


아버님한테 영향받은 것은

기본적으로 틀이 있어요


그건 은연중에

머리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고

특별하게 기교를 부려서 하는 게 없어요

봉천동 버스타고 다니는

옛날이다 옛날...


지금은 이런거 흔적을

찍을 수가 없어요

아버님이 사실은 저한테

사진 못하게 했어요


이게 다큐멘터리라

돈도 안 되고 밥 먹기 힘드니까


우리 아들만이라도 돈 벌게 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는 나의 피가

내려 오는 거 같아요

그래서 우리 아들한테도

마찬가지야

사진 못하게 했어요


아들도 사진 안 했으면 좋겠는데 참...

초등학교 때 저희 집에

많이 있었던 게

물론 만화책도 있었고 그랬었는데요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게

인테리어 잡지

아버님께서 건축사진을 하셨었기 때문에

그걸 보다 보니까

공간, 각도, 선과 면에 대한 구분이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러다보니까 그게

자연스럽게 흘러서

지금 사진을 하게 됐는데요

Q. 세 분의 사진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차이점이라고 하면

제가 봤을때는

할아버님은 결정적인 순간을

그 한컷을 위해

담으셨던 것이고요

저는 그것보다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좀 더 여유롭게

작업을 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스트레이트 한 사진도 찍습니다.

물론...

출처: 청암아카이브

이게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영향이 가장 크긴 하죠


계속 봐왔기 때문에

시대에 변화된 어떠한 모습들

이런것들을 눈으로

계속 보고 있거든요

출처: 청암아카이브

그래서

전에 한 번 연재를 한 적이 있는데


3대가 본 서울의 기억이라는 걸

연재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할아버님, 아버님, 제가

같은 장소를

3대가 다른 시각으로 보는


그런 장면을 기획해서

10회 분량의 연재를 했었습니다

출처: 청암아카이브

전시를 누비던 그런 카메라잖아요

그게 아직 있다는 것

자체로 믿기 어렵고


'귀하겠구나... 귀중한 거겠구나'

생각이 들고요

Q. 자신에게 사진이란?


사진을 하면서 계속적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거잖아요


계속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사진으로써

일기를 대신하는 게

훨씬 더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진은

저에게 일기 같은 존재


그래서 매일매일 

저희 가족들에 대한 기록

이런 것들도

틈나는 대로 하고 있고요

Q. 앞으로 어떤 사진을

더 찍고 싶으신가요?


사실 저는 기록적인 사진보다

그냥 남들이 봤을 때

행복했으면 하는 사진?


그런 작품을

남기고 싶습니다

아버님...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해방 이후에 많은 걸 남기시고


제가 그걸

수만장을 정리를 하면서 느끼는게


'내가 감히 이걸

어떻게 정리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위축감을 많이 받고 있는게

사실이에요

운이 좋아서

아버님의 영향을 받기는 했는데


건축과 도시가 변화되는 걸

내 나름대로 해왔기 때문에

자부심을 많이 느끼는 게

없어진 걸 남겨 놓은 것

시간을 정지시킨 것도 있고

하여간


다음 세대에 젊은이들한테도

아들 뿐만이 아니라

그런 과거의 역사를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끔

만들어줬다는 것만으로도


한 집안으로써 다행스럽지 않은가

생각을 하는 게 있어요

사진은 멈춘 시간의 역사를 전달하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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