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 여성, 20대 남성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당하다

조회수 2019. 10. 13.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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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69세> (An Old Lady,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69세> 표지 및 이하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섹션(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이끌 신인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을 소개하는 섹션)으로 초청된 <69세>는 이번 영화제의 성격 중 하나를 가장 잘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란, 인도 등 아시아 각국에서 '여성 연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초대된 것과 더불어, 여성 감독의 걸작들도 소개했기 때문. 가장 큰 화제작이,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만 없었다면 황금종려상은 능히 받았을 것이라는 각본상 수상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셀린 시아마 감독)일 정도였다.

<69세>는 <도가니>(2011년), <화차>(2012년), <남한산성>(2017년), <사바하>(2019년) 등의 스토리보드에 참여했던 임선애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수십편의 장편 영화 스크립터를 거치면서 쌓아 올린 내공이 폭발한 작품이었는데, 오프닝 장면부터 예사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69세의 '효정'(예수정)은 병원 치료 중 남자 간호조무사 '중호'(김준경)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만다. 으레 그 장면을 보여줄 법도 하겠지만, 사려 깊게 '모든 것은 검은 화면'으로 구성됐으며, 오직 대사와 빈 공백만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성폭행을 당한 '효정'은 동거 중인 '동인'(기주봉)에게 이 사실을 알려, 경찰에 신고하지만, '중호'는 "합의된 성관계"라고 주장한다. 또한, "젊은 남자가 늙은 여자에게 성폭행했을 리 없다"라는 통념 때문인지 영장은 계속되어 기각되고, 이런저런 핑계로 인해 수사는 난항을 겪는다. '동인'은 '중호'의 자백을 어떻게든 받아내려 하지만 실패한다.

한편, '동인'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뜻으로 '책사랑'이라는 조그마한 서점을 운영 중이다. 그리고 아내의 기일에 찾아온 변호사 아들(김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영화는 이처럼 '성폭행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 여성의 인권과 동시에 '노년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임선애 감독은 노인 여성이 성폭행당한 여러 사건을 기초로 시나리오를 작성해나갔다.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들은 앞서 언급한 <도가니>를 비롯해 여러 작품이 있었음에도, 노인이 피해자로 등장한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

그러면서도 천천히, 자극적이지 않게, "나이 들어가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작품의 주제 의식에 상당량 녹여냈다. 단순히 '사회 고발 영화'로 이 영화가 자리 잡지 않았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나쁜 공권력'이나, '남성은 모두 나쁘다'라는 사고로 <69세>를 볼 수 없게 하는 그 연출이 좋았다.
그리고 그런 연출이 가능하기까지에는 배우들의 명연기가 한몫을 했다. 연극, 드라마, 영화 등 연기를 할 수 있는 모든 플랫폼에서 활약하는 예수정과 기주봉은 이 작품의 든든한 기둥이 됐다. 특히 예수정은 어떠했나.

<신과함께-죄와 벌>(2017년)에서는 엄청난 모성애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으며, <허스토리>(2018년)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인 '박순녀'로 나와 수많은 '허스토리언'에게서 연대의 힘을 제공했다. 심지어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2019년)에서는 대기업 총수로 등장해 카리스마를 발산하기까지 했다.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표정으로 관객을 만났던 예수정. 그런 예수정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의외로 관습적이지 않았다. 으레 클로즈업을 과잉 사용하면서 '피해자'라는 각인을 찍을 법도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효정'이라는 캐릭터는 상처가 있음에도, '아무도 자신의 과거를 돌려낼 수 없다'라는 명제를 스스로 이겨낸다.

그래서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에 외치는 한 마디처럼 보였다. 마치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2016년) 속 '박카스 할머니'인 '소영'을 연기했던 윤여정의 기품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동인'을 연기한 기주봉은 어떠한가? 예수정이 절제된 표현 연기를 펼친다면, 그 반대로 기주봉은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표출해낸다. '동인'은 성폭력 사건의 근절을 위해선 단순히 여성만이 문제를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에 상관없이 힘을 합쳐야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선을 보여준다.

처음 성폭행 사실과 '합의' 등의 내용을 들었을 때는 이내 당황하지만, 불의 앞에서 직접 나서는 '동인'의 모습은 나름의 '선의'를 제공한다.

물론, 그 '선의'가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가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영화 <69세>에서는 "그런 성폭력에서는 공론화의 장이 반드시 열려야 한다" 쪽으로 지혜를 모았다. 그리고 '정식 개봉'을 통해서 부디 그런 '공론화의 장'이 열리길 소망해본다.

2019/10/04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 24th BIFF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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