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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빠진 K장녀 주제를 신파의 길로 빠뜨려버린 영화

조회수 2020. 6. 19.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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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결백> (Innocence,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결백>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주), (주)키다리이엔티
* 영화 <결백>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결백>은 좋은 서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신파의 길'이라는 아쉬운 답안을 선택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자기 어머니를 변호한다는 설정 자체가 작위적인 전개를 야기하게 했고, 이를 어떻게 정면 돌파하느냐가 작품의 큰 관람 포인트였기 때문.

아쉬운 점이 많던 이유는, 단순히 '모성애 신파' 서사로만 바라볼 수 없었던 요소를 곳곳에 포착됐기 때문이었다. '여성 변호사' 주연은 <의뢰인>(2011년), <변호인>(2013년), <소수의견>(2015년), <성난변호사>(2015년), <재심>(2017년), <증인>(2019년) 등이 포진한 '남성 변호사' 주연 중심 영화계에선 특이한 선택이었다.

실화 소재를 바탕으로 한 작품도 있겠지만, 다양한 변호사 주인공이 등장한 작품에서, 여성 변호사가 주인공인 상업영화를 최근 10년 사이 보기 드물었다는 점은, 분명 문제가 있다. 에디터는 여러 여성 변호사와 협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실력이 단순히 '성별 쿼터'로만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으며, 이건 '배우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일 터. 다만, 단순한 '젠더 스와프' 형태로만 극을 꾸려나간다면, 분명 똑같은 작품이라는 한계와 비판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결백>은 반은 성공했지만, 반은 실패했다. 왜 그런지 복기해봤다.
추후 나올 사건을 위한 암시를 해주는 첫 흑백 화면 이후 펼쳐지는 롱테이크 장면에서는,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남성 간의 연대와 그 속에서 자라는 암투를 확인할 수 있다.

겉으로는 인자하며, 성실한 인상을 지니며, 시민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은 현 '대천시' 시장으로서,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한 '카지노 유치'를 성공한 후, 차기 도지사 유력 후보로 떠오른 '추인회'(허준호). 그는 '안태수'(최홍일)의 장례식장에 찾아, 젊은 시절을 '안태수'와 함께 보낸 친구들과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켠 후, 구토한다. 누군가가 막걸리 주전자에 농약을 집어넣었던 것. 이에 '안태수'의 아내 '채화자'(배종옥)가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사이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모진 학대를 받은 끝에, 탈출에 성공, 가족과 등을 진 채 독하게 살아온 '안정인'(신혜선)은 대형 로펌 에이스 변호사로 성장한다. 큰 사건을 앞두고, TV에서 '안정인'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일어난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살인 용의자로 어머니 '화자'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고향으로 향한다.

'단기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절대 살인 용의자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한 '안정인'은, 어머니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변호에 나선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아버지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고, '추인회' 시장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태도는 비협조적이다.
그 와중에 '정인'은 초등학교 동창이자, 지역 순경인 '양왕용'(태항호)을 만난다. 'ㅇ'이 6개나 들어있는 그의 이름은, 마치 그의 둥글둥글한 인상을 묘사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양왕용'은 '화자'의 결백을 믿으며, 마을 사정에 정통한 특기를 살려 '정인'을 돕기 위해 나선다.

어린 시절의 짝사랑을 돕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러났지만. 장례식장을 비롯한 가족의 일상을 볼 수 있었던 주요 목격자는, 26살 청년이지만, 자폐성 장애를 지닌 '정인'의 남동생 '안정수'(홍경)였다. 어린 시절 집을 떠난 누나에 대한 기억을 희미하게 지닌 '정수'는 '정인'에게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화자'의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나서는 '정인'이 거슬리던 '추인회'는 각종 수를 쓴다. 그는 다소 무리수 같은 지역 조직 폭력배를 사용하거나, 덤프트럭 교통사고 위장 살인 등을 지시하는데(용케도 살아남는 것이 더 신기하다), 그런데도 '정인'은 물러서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부조리한 정치 권력을 비판하는 심판의 역할을 영화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지만, 이 작품에선 그보다 '나쁜 남성'에 대한 심판이 더 어울려 보인다.
이를테면 이경미 감독의 영화 <비밀은 없다>(2016년)에서 '연홍'(손예진)이 꺼내든 결말이나, 좀 더 과거로 가면 스티븐 킹 원작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븐>(1994년) 속 '셀리너 세인트 조지'(제니퍼 제이슨 리)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두 작품 모두 억압된 여성들이 해방된 순간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백>으로 돌아가면, 이 작품에서 막걸리를 마신 후 세상을 떠난 인물을 보면, 과거 이권 다툼 끝에, '채화자'가 사랑했던 남자를 물에 빠뜨려 죽이는 것을 직접 가담한 인물이었다.

막걸리를 마셨음에도 살아 있던 '황방영'(박철민)은 그 현장에 있었던 인물이었고, 평생을 죄의식에 시달렸던 인물이었으며, 그 죄를 딸 '정인'에게 고해성사하듯이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당시 죽었던 남자가, 진정한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고, 심지어 '화자'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자, '정인'은 법을 다루는 변호사가 하면 안 될 일을 시도한다.

모든 죄를 '추인회'에게 돌려버린 것. 결국, '화자'가 풀려나고, 이 사건을 다루던 '신검사'(정인경)는 '정인'에게 정말로 어머니가 '결백'한지 묻는다. 이에 '정인'은 "어머니는 이미 대가를 치렀다"라고 답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가장'으로 대접받은 지적장애인 아들 '정수'의 모습이다. 최근 개봉한 독립영화 <이장>과 비교하면서 보면 흥미로운데, <이장>은 장녀, 차녀, 삼녀, 사녀, 그리고 막내아들로 구성된 다섯 남매의 여정을 통해, 가부장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작품이었다.

아버지의 묘 이장 문제를 놓고, 막내 아들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최종 결정권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 큰아버지와의 마찰이 이 영화의 주요 대립 포인트. <결백>에서 '안태수'는 자신의 친딸도 아닌 '정인'을 모질게 학대한다. 대학 진학을 막아내려 하고, 아들 '정수'가 지적장애를 가진 것도 '정인' 탓이라고 둘러댔다.

신조어로 들어선 'K장녀'를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된 '정인'은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자해까지 시도했지만, 끝내 어머니의 헌신 덕분에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이 정도로 성차별적인 대접을 받는다면, 당연히 '정인'은 자신의 동생을 '가부장제의 시혜자'로 여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정인'은 '정수'를 함께 하는 '연대'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늘 조롱당하지만, 한 대를 맞는다면 기어이 두 대를 때리는 '정수'는 이른바 '주류 남성 세계'엔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 그리고 그런 사회적 약자로 상징되는 '정수'와 '정인'은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지긋지긋했을 '대천시'를 함께 탈출한다.

그런데도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진정한 작 의도들은 영화의 표현 방법이나, 클리셰의 벽에 막혀 무너져내렸다. '정인'과 '화자'가 보여주는 눈물샘 자극 신파 장면은 어느 정도 절제될 필요가 있었음에도, 그 강도를 높인다.

그리고 '정인'이 '화자'가 범인임을 알았을 때, 자신이 변호사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딜레마에 막히고 고민하는 대목이 그리 무겁게 연출되지 않는다. 뻔해져 버린 결말을 신혜선, 배종옥, 허준호, 홍경 등 배우들의 열연에 기대면서, 대충 수습하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래서 <결백>을 반은 성공했지만, 반은 실패했던 작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2020/06/04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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