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건축가는 어쩌다 사회성 제로 이웃이 됐나?

조회수 2020. 10. 14.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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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려줌] <어디갔어, 버나뎃> (Where'd You Go, Bernadette,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 ⓒ (주)디스테이션
'버나뎃 폭스'(케이트 블란쳇)는 최연소 '맥아더상'을 수상한 건축가였다. '맥아더상'은 분야를 구분하지 않고, 사회 각 계층에서 독특한 성과를 올리는 이에게 수여하며, 주로 '천재들의 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창의적이고 잠재력이 우수한 인물에게 주는 상이기 때문.

그러나 시간이 흘러 '버나뎃'은 사회성이 떨어지는 문제적 이웃이 된다. '버나뎃'의 옆집에 사는 '숙적' 이웃, '오드리'(크리스틴 위그)는 자신을 사사건건 간섭하거나, 지휘하는 '버나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중 '버나뎃'은 '오드리'의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브런치 파티를 망치기까지 한다.

한편, '버나뎃'의 남편 '엘진'(빌리 크루덥)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가장 주목받는 프로그래머이자, 동시에 '워커홀릭'이기도 하다. 덕분에 아내와 딸의 일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제 범죄에 휘말렸다는 소식과 함께 FBI의 조사가 시작되자, '버나뎃'은 자신의 집 화장실 창문을 통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딸 '비'(엠마 넬슨)는 '버나뎃'이 사라지자, 아빠에게 엄마를 직접 찾자고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고, '버나뎃'이 남극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디갔어, 버나뎃>은 마리아 셈플 작가의 동명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작품의 감독은 '비포 시리즈', <스쿨 오브 락>(2003년), <보이후드>(2014년) 등 다양한 영화를 만들어 온 리처드 링클레이터. 그는 작품의 영화화를 결정하면서, "캐릭터들이 굉장히 복합적이면서도 아름답다"라면서, "무엇보다 '버나뎃'은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다. 창작 활동을 하지 않는 예술가이자 창작자라는 점에 제일 먼저 매료됐다"라고 밝혔다.

원작은 문서와 각종 서류로 구성된 독특한 형식을 취하는데, 이를 각색하기는 쉽지 않았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스스로가 '도전'이라고 각색 작업을 표현했을 정도.

그는 우선 활자로만 존재하던 '버나뎃'의 이야기에서 편지글을 제거한 후, 시각적인 효과를 끌어낼 방법을 모색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뒤죽박죽 널려 있는 이야기를 각각의 에피소드로 삼고 서론, 본론, 결론의 형태를 만들었다"라면서, "그러면서도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차용했다. 굉장히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한편으로 무척 재미있는 작업이었다"라고 소개했다.

공동 각본가인 홀리 겐트 팰모도 "소설 속 시간의 흐름에 따른 디테일은 내려놓고, '버나뎃' 내면의 여정을 따라갔다"라면서, "사회가 정한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언급했다.
이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버나뎃'의 캐스팅이었다. '버나뎃'은 까칠하고 예민한 데다 불평불만도 많고, 최소화된 인간관계만 유지하는 인물. 그 덕에 옆집 이웃과 사사건건 부딪치기 일쑤고, 자신의 팬이라는 건축학도가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와도 뒷걸음질 친다.

반면, 딸 '비'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친구 같은 존재이고, 옛 동료와는 스스럼없이 대화하며, 온라인 비서 '만줄라'에게는 하소연까지 털어놓는 복잡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다층적인 캐릭터를 단순 에피소드 나열로 보여준다면, '버나뎃'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무리였을 터.

제작사가 케이트 블란쳇의 캐스팅을 위해 연락을 취했을 때, 케이트 블란쳇은 이미 소설을 읽었다면서, '버나뎃'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케이트 블란쳇은 "감독님의 시나리오가 아주 사실적이고 재밌었다. 캐릭터에 완벽히 매료됐다"라면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배우로서 연기력을 인정받고 나면, 많은 분이 다음 행보를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안다. 바로 이 지점이 예술가인 '버나뎃'에 깊이 공감한 부분"이라고 전했다. 배우로서의 자신과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 천재 건축가 '버나뎃'이 느끼는 창작자로서의 정체성과 고민에 대해 공감을 표한 것.
이런 배우의 열정에 감동한 원작자 마리아 셈플은 케이트 블란쳇에게 "여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됐고, 이건 내 부적과도 같다. 케이트가 받아줬으면 좋겠다"라며, 소설을 쓸 때 항상 착용했던 선글라스를 선물했다.

그리고 촬영 첫날, 현장을 방문한 마리아 셈플은 배우가 자신이 선물한 선글라스를 끼고 연기하고 있었던 것을 보며 감동을 했다고. 케이트 블란쳇은 촬영에 앞서 "영화를 위해서 이 선글라스를 꼭 껴야 한다"고 제안하며 영화 내내 착용, 원작자의 상상까지 반영된 '버나뎃'을 스크린에 생생하게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케이트 블란쳇은 자신의 의견을 담은 디자인 보드를 두고 의상팀과 회의를 하고, '버나뎃'의 시그니처인 헤어 스카프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제작자 진저 슬레지는 "케이트 블란쳇은 처음부터 '버나뎃'의 의상, 헤어 스타일, 태도까지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의상 디자이너 카리 퍼킨스도 "의상을 통해 '버나뎃'이 점점 완성되어가는 걸 보는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라면서, "케이트 블란쳇은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라고 밝혔다. 이런 열정과 훌륭한 연기 덕분에 케이트 블란쳇은 지난 1월 열린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한편, 영화에는 앞으로 주목해야 할 신인 배우를 볼 수 있는데, 바로 딸 '비'를 연기한 엠마 넬슨이다. 대선배인 케이트 블란쳇과 크리스틴 위그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당당히 제안하며 캐스팅 디렉터와 감독을 감탄시켰던 것.

'버나뎃'과 '오드리'의 말싸움 장면 리허설 중 엠마 넬슨은 '비'가 엄마를 도와 '오드리'에게 험한 욕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흡족해하며 그대로 받아들였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몰아붙이는 '오드리'에게 언제나 엄마 편인 10대 딸이라면 충분히 할 만한 행동이라 판단했던 것이었고, 덕분에 재미난 장면이 태어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작품은 '건축계 아이콘'인 '버나뎃'의 집에 상당한 공을 들여야 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시애틀의 집은 1800년대에 지어진 저택을 개조한 것으로, 제작진은 이곳을 찾기 위해 2년 6개월간, 2개국, 5개 도시를 뒤지며 헌팅을 진행했다.
또한, '버나뎃'이 남극으로 떠난 후의 장면은 남극이 아닌 북반구의 그린란드에서 촬영됐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촬영 도중 36시간 동안 지속하는 허리케인으로 촬영이 중단될 위기를 겪었던 것. 하지만 제작진은 포기하지 않고 그 허리케인까지 영화에 담아냈다. 덕분에 '버나뎃'의 모험을 더욱 실감 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통해, 관객은 어느 순간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그리고 불협화음으로 보였던 이웃 혹은 가족과 다시 '소통'하는 '버나뎃'의 모습을 보며 나름의 힐링을 얻을 수 있겠다.

영화에도 나오듯이, 자신의 삶을 다시 찾기 위한 시그널을 '정신 분열'로 오인하거나, 그저 '사회성 제로 인물'로 여기는 시대에서는 더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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