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싶어요

조회수 2019. 2. 16.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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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사연 100책
100사연 100책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민과 사연.
그 사연에 맞는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자유롭고 싶습니다. 철이 일찍 든 편이라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걱정 끼치지 않고, 부담도 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어요. 대학교도 비교적 등록금이 적은 시립대를 선택했고, 놀고 싶은 마음을 참아가며 알바도 계속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지금 못하면 앞으로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하고요. 사람도 사귀고 싶고, 여행도 다니면서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요.
- 익명 님
이런 말을 하면 웃으실 분이 많을 겁니다.
'얼마쯤 나이를 먹고 보니 너무 빨리 철든 아이를 보는 게 그렇게 쓸쓸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생각이거든요. 어렸을 때 종종'철 좀 들어라'고 말하곤 하셨는데, 그 말을 할 때의 부모님은 속이 터지는 기분이었겠지만, 그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너무 조숙하고, 성숙한 아이를 둔 부모의 기분은, 다른 의미에서 몹시 복잡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컵이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듯이 사람의 내면에도 성격이든, 성향이든 담길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철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이 천진난만함이나 순수함이 빠져나갔다는 것이겠지요. 그 상실, 잃어버림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일 테고요.
어떤 상황에 있는지 분명히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 누리지 못하고 억눌러 온 자유에 대한 갈망이 몹시 간절해진 것처럼 보여요. 철이 들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자신을 억눌러 왔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 갈망들은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닐 거예요. 지금까지 몇 년이나 깨어나지 못하고 잠들어 있던 거겠죠.

철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하면 세상의 이치와 흐름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이해는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죠. 납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과 행동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철이 든 것이 아니라 '철든 척하는 것'일뿐입니다.

지금까지의 시간들, 참고 견뎌온 시간이 무의미 해져서, 더는 계속할 수 없겠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견딜 수 없이 가혹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일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는 이제야 비로소 철이 들기 시작한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의 거의 모든 다툼은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내면의 방황 역시 하나의 다툼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상적인 나와 현실적인 나 사이의 갈등이요.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자기 이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깊이 이해하는 것에서 말입니다 이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흔히 '방종'이라고 하는 무책임의 결과와 마주해야 하니까요.
진정한 자유를 찾는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책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이 책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의 책'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동경할 만한 자유로움을 담고 있습니다. 그 자유로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제목 속의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조르바가 온몸으로 삶을 살아가는 적극적인 존재라면, 이야기의 화자인 '나'는 글과 생각을 통해 세상을 보고 느끼는 소극적인 존재입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나이답지 않은 활기와 적극성 '나'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조르바에게서 발견하고 그와 함께 사업을 도모하기 시작합니다.

나이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조르바 덕분에 사업의 준비와 공사는 차근차근 진행되지만, 그의 제멋대로인 성격과 화를 참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성향과 자신의 주의와 주장을 관철하려는 태도는 크고 작은 충돌의 원인이 됩니다.

조르바와 '나'는 이방인이자 외지인입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이방인의 처지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합니다. 그리고 그 의지가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름을 일깨웁니다.

조르바는 자기 나이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고용주를 두고 '두목'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 '두목'이라는 호칭은 그 사람이 자신의 지배자라고 인정하는 의미의 호칭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라는 의미의 호칭처럼 보이죠.

사업을 위해 진행하던 공사는 결국 실패합니다. 그러나 조르바는 그 실패 앞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어긋났음에도, 그 많은 것을 부순 시련도, 자기 자신과 영혼을 파괴하지는 못했음을 아니까요.

두 사람은 서로의 길로 나아갑니다. 조르바는 여전한 자신감과 확신과 자유로움을 품고 떠나고, 나 역시 그 자유로움의 단서를 얻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을 느끼면서요.
지금 꿈꾸는 자유로움이 마구잡이식에 무책임한 방종은 아닐 겁니다. 그런 자유라면 마음껏 누린다고 해도 잘못될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참고 억누르기를 거듭함으로써 '나다움'이 죽어 사라지는 것이 더 위험하고 나쁜 결과가 아닐까요.
조르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분명히 해둡시다. 나에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인간 = 자유'라는 진리를 조르바는 투박한 말로 간단히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자유란 '나다움'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어요, 두목, 사실이 그러니까. 내가 콩을 먹으면 콩을 말해요. 내가 조르바니까 조르바 같이 말하는 거요."
먹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행하는 대로, 그것이 곧 내가 되고 나다운 것이 됩니다. 우리는 무수한 제약 앞에서 나다움을 발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 열심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잊어버리는 순간도 적지 않아요.

정말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 찬다면 떠나야 합니다. 더 늦더라도 아주 떠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더 힘들어질 거예요.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책임을 질 줄 아는 성숙함은 자유의 기본입니다. 잊어버리면 안 되겠지요.
플라이북 에디터
서동민
captaindrop@flyboo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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