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위조가 되나요?

조회수 2020. 9. 25. 17: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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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헤어전문매거진 그라피

사랑도 위조가 되나요? - 영화 리뷰 '베스트 오퍼'

영화 베스트 오퍼 The Best Offer, 2013 포스터

올여름은 영화 애호가들에게 잊지 못할 슬픈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지난 7월 영화음악의 전설 엔니오 모리코네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에비타> 등을 연출했던 알란 파커 감독까지 76세를 일기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들의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자란 시네마 키드이기에 두 거장과의 이별이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시나브로 파란만장했던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리는 긴 호각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새로운 신성의 등장보다 빛을 잃어가는 늙은 별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걸 보면, 내 인생에도 서서히 땅거미가 지고 있구나 한숨 쉬게 됩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야 의심할 필요 없는 인류의 걸작이죠. 그의 음악은 자신의 영혼의 콤비를 이루는 거장과 함께일 때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그의 천재성을 샘솟게 한 마중물이었다면,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모리꼬네 음악의 서정미와 예술성을 절정으로 이끈 해방구였습니다. 


엔니오 모리코네와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이탈리아 영화사상 가장 완벽한 콤비로 칭송받았는데요. 영화 <시네마 천국>부터 시작된 그들의 아름다운 시절 속에는 가슴 뛰는 사랑과 잊을 수 없는 감동이 살아 숨 쉬고 있죠. 그중에서도 2013년 작 <베스트 오퍼>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허를 찌르는 반전, 치밀하게 계산된 미장센, 낭만과 슬픔이 교차하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더해져 기품 있고 낭만적인 미스터리가 탄생했죠.

곰곰 생각해보면 사랑이야말로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미스터리한 감정일 겁니다. 흥미진진한 사건의 연속이면서 수시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복선, 예상을 뒤엎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 꼭 그렇죠.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이 불가해한 사랑이란 감정과 미스터리를 엮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제목인 ‘베스트 오퍼(Best Offer)’는 경매 용어로 가장 높은 낙찰가를 뜻합니다. 주인공 올드먼의 직업이 경매사인 것과 관련이 있죠. 그의 완벽한 감별 능력은 결코 실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을뿐더러 사랑 따윈 믿지 않는 성격이 문제라면 문제. 재치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일터에서의 모습과 달리 그는 주변을 차단한 채 철저히 혼자만의 삶을 삽니다.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있다

이 지나친 결벽증과 오만에 가까운 자기애는 종종 타인의 미움을 사고 불만을 키우지만 올드먼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그의 오랜 파트너 빌리가 늘 서운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의 지독한 이기주의와 자신에 대한 멸시였죠.


외톨이 노신사 올드먼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그건 명망 높은 경매사란 자신의 위치와 친구 빌리와의 작당을 통해 미술사의 명화들을 헐값에 사 모으는 거였죠. 그는 유독 여인의 초상화에만 집착했는데요. 혼자만 아는 비밀의 방에서 액자 속에 박제된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쓸쓸한 황혼을 위로받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남자를 애먹이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클레어. 유산으로 상속받은 고가구와 미술품을 감정해달라며 접근해왔죠. 처음에는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던 의뢰인의 태도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올드먼은 프로다운 예민한 촉으로 마침내 그녀의 실체와 마주하는 데 성공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훔쳤던 명화 속 여인처럼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과 순수를 간직한 클레어에게 올드먼은 단숨에 빠져들었죠. 


의심과 기만, 경계로 평생을 지탱해왔던 올드먼이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철옹성 같은 그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신이라도 되는 듯 완벽한 감별력을 자랑하던 그였지만, 지금은 사랑에 눈이 먼 바보 같은 남자일 뿐. 클레어와 여생을 함께 보내기 위해 은퇴를 결심하고 마지막 경매를 마치고 돌아온 날, 그를 맞이해야 할 여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전부나 다름없던 수많은 여인의 초상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죠. 모든 것은 그의 친구 빌리가 짜놓은 거대한 사기극이었습니다. 클레어는 그를 낚기 위한 미끼였고요. 처참한 실패만 남긴 사랑이었습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이 영화를 무려 20년 동안 구상한 끝에 완성했는데요. 비록 위작으로 판명됐지만, 자신의 사랑에 진품이란 확신에 찬 감정을 내렸던 한 남자의 말로를 처연하도록 아름답게 담아냈습니다. 


어쩌면 사랑이란, 영화 속 대사처럼 경매와 비슷합니다. 내가 부른 값이 정말 최선인지 평생을 고민하게 만드는.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베스트 오퍼였던 적이 있을까요? 심각한 얼굴로 아내에게 물어본들 돌아오는 대답이야 뻔할 테죠. “아저씨 술 마셨으면 곱게 주무세요. 네?”


베스트 오퍼 The Best Offer, 2013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주연 제프리 러쉬, 도널드 서덜랜드, 실비아 획스

글 | 씨네쿠리

영화, 음악, 자전거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잡식남. 물적 가난과 심적 풍요 사이에서 아빠 카드 긁듯 별 고민 없이 문장과 기억들을 소비 중이다.

에디터 성재희(beautygraphy@naver.com)


헤어전문매거진 월간 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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