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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경이로운 지만, 그에게도 융의 땅이 열렸다

조회수 2021. 2. 8. 07: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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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신청 승리가 갖는 각별한 의미

질펀한 자세다. 베이스 위에 퍼져앉았다. 헐렁한 후드티, 모자도 대충 걸쳤다. 참, 모양 빠지게 공을 잡는다. 장난 섞인 훈련 스케치다. 그래도 표정만큼은 월드시리즈다. 어떻게든 공만은 놓치지 않는다. 다리찢기 신공의 응용편 같다.

<탬파베이 타임스>가 올린 사진이다. 직설적인 제목이 붙었다. '최지만이 조정신청에서 레이스를 이겼다.' 기사 내용도 단촐하다. 달랑 한 줄짜리다. '조정위원 3명이 선수편을 들어, 1루수의 2021년 연봉은 245만 달러가 된다.'

출처: 템파베이 타임스 뉴스 화면

액수야 뭐 소소하다. 245만 VS 185만 달러로 붙었다. 달랑(?) 60만 달러(6억 7000만원) 차이다. 천만~억 달러가 오가는 판 아닌가. 미미한 액수다. 본인도 얘기한다. "세금도 많고, 에이전트 피도 내야한다. 손에 쥐는 건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드문 일도 아니다. 가오리들은 2016년 이후 (조정신청) 6연패다. 매번 승리는 선수들 몫이었다. 투철한 절약정신의 비애다.

하지만 액수나 통계가 전부는 아니다. 각별한 의미가 담긴 사건이다. 쉽게 넘기면 안 될 것들이다. <…구라다>는 오늘 그 얘기를 하려한다.

오타니 스카우트에 소환된 한국의 실패 사례들

2012년 10월이었다. 일본 열도가 시끄럽다. NPB 드래프트 일주일 전이다. 등 떠민 것도 아닌데, 기자회견이 열렸다. 주인공은 고교 3년생 투수였다. 고시엔 대회의 스타 오타니 쇼헤이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을 선택하겠습니다." 길게 얘기했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미국 갈 거니까, 드래프트 때 찍지 마세요. 피차 입장 곤란해지니까….'

삿포로가 발칵 뒤집혔다. 연고팀 니혼햄 파이터스는 오매불망이었다. 오타니만 바라보던 터라서다. 비상 대책 회의가 소집됐다. 사장 이하 편성(운영)ㆍ공보(홍보)ㆍ스카우트팀이 망라됐다. 결론은 비장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명을 강행한다.'

며칠 뒤. 드래프트가 전국에 TV 중계됐다. 니혼햄은 역시 오타니의 이름을 불렀다. 당사자는 시큰둥하다. "조금 놀랐습니다. 그러나 달라질 건 없습니다. 평가는 감사하지만 미국행 계획에는 변함 없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

70세 가까운 야마다 마사오 GM은 애가 닳았다. 집으로, 학교로 동분서주다. 머리를 조아려도 만나주질 않는다. 애꿎은 시간만 자꾸 흐른다. 그래도 마지못해 자리가 마련됐다. 처음에는 간단히 차 한 잔으로 끝냈다.

이윽고 교섭일이 잡혔다. 열흘 뒤다. 구단에는 TF팀이 꾸려졌다. 스카우팅 디렉터 오부치 다카시가 독박을 썼다. 자료 준비를 맡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냈다.

직행 성공확률은 겨우 5.6%

‘오타니 쇼헤이군 꿈에 대한 이정표(大谷翔平君 夢への道しるべ~).' 제목조차 아련하다. 30페이지 분량은 며칠간 밤샘의 결과다. 젊은 선수들의 해외 진출 성과에 대한 분석 자료였다. 야구 뿐만 아니라 축구, 테니스, 농구 등 모든 종목이 집대성됐다.

주목해야 할 내용이 있다. 11페이지의 소제목이다. ‘2장 7부 - 일본ㆍ한국야구 메이저(리그)에 대한 활약상황 중점 정리’. 이 대목은 아래 숫자로 요약된다.

① (일본) 프로 실적이 있는 선수 : 42명 중 29명이 메이저리그 활약 = 69.0% 확률

② (한ㆍ일) 프로 실적이 없는 선수 : 108명 중 6명이 메이저리그 활약 = 5.6% 확률

출처: 니혼햄 화이터스 제작 <오타니 꿈에 대한 이정표> 중에서

그나마 예전에는 나았다. 고교만 마치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예가 있었다. 백차승, 봉중근, 류제국 등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 대략 2006년 이후로는 사라졌다. 20명 이상이 도전했지만 마이너 벗어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PT의 결론은 이렇다. '쇼헤이군, 괜히 일찍 가면 고생만한다. (프로) 경력을 쌓고 가는 게 훨씬 유리하다. 잘 생각해봐라.' 그 무렵 류현진의 포스팅이 대박을 터트렸다. 결국 오타니는 고개를 숙였다.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습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삿포로 팬들을 기쁘게 하겠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탄 발레리노의 야구 인생

지난 주 인천공항 출국장이다. 화기애애 분위기였다. 연봉 싸움서 승리한 다음 날이라서다. "이기든 지든 신경쓰지 않으려했다. 그래도 좋은 결과여서 다행이다." 활짝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선다. (최지만)

불과 몇 달 전이다. 다채로운 인생이 펼쳐졌다. 발레리노의 삶이 시작됐다. 아름다운 다리 찢기가 연일 화제였다.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X볼도 척척 잡아냈다. 이 장면은 멋진 한 컷으로 주목받았다. 급기야 세계적 맥주회사의 광고 모델로 선정됐다.

어디 그 뿐인가. 4번 타자의 위용도 떨쳤다. 양키스와 디비전 시리즈 때다. 결정적 홈런을 쳤다. 게릿 콜의 천적임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 덕에 월드시리즈도 경험했다. 한국인 야수로는 처음이다. 2차전에서는 안타도 쳤다. 역시 최초의 기록이다.

쿠퍼스타운의 초대장도 받았다. 그의 유니폼 상의가 명예의 전당에 전시될 예정이다.

출처: 탬파베이 레이스 트위터 이미지

최근 10여년간 거의 유일한 성공 사례

어찌 좋은 일만 있겠나. 올라타보니 롤러코스터다. 곤두박질도 예삿일이다. 지난 12월 얘기다. 구단들이 선수단 정리하는 계절이다. 그의 이름이 미디어에 오르내렸다. 논텐더(non-tender·조건 없는 방출)로 풀릴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다.

이유는 뻔하다. 몸값 때문이다. 이전에는 주는 대로 받아야했다. 저연봉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조정 자격을 갖췄다. 알뜰한 탬파베이에겐 부담스러운 존재다. 때문에 놓아줄 것이라는 견해도 많았다.

그러나 구단은 미련을 가졌다. 대신 소극적 인상을 택했다. 발레리노는 불복했고, 결과 연봉 조정 신청을 피할 수 없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했다. SNS에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가 필요했다.

출처: 최지만 SNS 캡처

사실 생존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비슷한 시기의 도전자는 수십명이다. 아마추어 경력만으로 태평양을 건넜다. 안타깝게도 성공 사례는 찾기 어렵다. 대부분 깊고, 어두운 터널에 갇힌 상태다. 오타니 쇼헤이 같은 슈퍼스타도 끝내 포기한 험난한 길이다.

유일한 케이스는 최지만이다. 6년간의 눈물 젖은 빵, 이후 2년간은 혼란의 시간이다. 콜업과 마이너행이 반복된 희망 고문이었다.

풀타임 3시즌을 통과했다. 그동안의 보상을 받을 시기다. "예전에는 연봉 조정 신청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어느덧 내가 여기까지 와 있다는 게 참 기뻤다."

'경이로운 최지만'은 이제 출발선일 뿐이다. 영롱한 빛의 '땅'이 비로소 그의 앞에 열렸다.

출처: OCN <경이로운 소문>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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