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결심, 그리고 복귀..구로다와 추신수의 경우

조회수 2021. 2. 26. 07:30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크리스마스 이틀 뒤였다. 깊은 밤, 무카이 아야(26)가 잠에서 깼다. 그녀는 이른바 카프녀(カープ女)다. 히로시마 카프를 응원하는 여성팬의 호칭이다.

휴대폰이 숨가쁘다. 알람 소리가 쉬질 않는다. 메시지 창을 열어보고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두 손은 만세 포즈가 됐다. 수십개의 말풍선을 채운 건 이름 하나였다. '구로다(黑田)님.' 그녀는 가지런히 무릎을 모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몇 년째 15번 옷(구로다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 갔어요. 어떤 아저씨들이 비웃기도 했죠. '떠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러냐'고 핀잔도 받았어요. 그래도 돌아올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어요."

출처: 일본 KTV 방송화면 캡처

2014년 말, 구로다 히로키가 메이저리그에서 일본 복귀를 발표한 순간이었다. 일본의 모든 매체가 속보를 쏟아냈다. TV 화면에는 긴급 뉴스로 자막이 흘렀다. 신문이 아직도 호외를 발행할 때다. 시커먼 제목이 지하철과 길거리에 뿌려졌다.

히로시마 운영본부장의 회고

카프 구단 스즈키 기요아키 본부장의 회고다. "11월에 한 번 만났어요. 그 때만해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구로다는 '은퇴 40%, 메이저 잔류 30%, 일본 복귀 30%' 정도라고 말했어요."

이후로는 더 절망적이었다. 양키스를 비롯해 레드삭스, 파드레스 등이 영입 경쟁을 펼쳤다. 오퍼 내용이 속속 보도됐다. "대략 1500~1800만 달러가 보장된 제안들이었죠. 우리 같은 가난한 시민구단은 엄두도 못 낼 액수였어요. 포기 상태가 됐어요." (스즈키 본부장)

그러던 12월 26일. 시간도 정확히 기억한다. 오전 10시 11분이었다. 본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구로다였다. "돌아가겠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되물었다. "에? 어디로? 다저스? 파드레스?" 그러자 재차 단호한 음성이 들렸다. "아닙니다. 카프로 가겠습니다." 메이저리그 팀의 1/4 밖에 안되는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복귀 결정 한달 남짓이다. 1월 말에 벌써 홈구장 연간권 8300석이 모두 팔렸다. 히로시마 시내 곳곳에 현수막이 걸렸다. 한결같은 문구였다. '잘 돌아오셨습니다. 구로다 투수.'

출처: 게티이미지

"그대가 눈물 흘린다면 그 눈물이라도 되어주겠다"

복귀 기자회견이 열렸다. 족히 100명이 넘는 보도진이 몰렸다. 당연한 질문이 나왔다. '거액을 마다하고 돌아오게 된 이유가 뭔가요.' 잠시 머뭇거림이 있었다. 그리고 묵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8년 전이죠. 그 때 팬들이 보여준 그 마음에 보답해야한다는 생각을 늘 잊지 않았습니다."

2006년의 유명한 사건이다. 그가 FA 권리를 얻어서 카프를 떠나려던 때다. 마지막 홈경기였다. 응원단 수천명이 모두 15번 판넬을 들고 외쳤다. 커다란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는 함께 싸웠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미래에 빛나는 그날까지. 그대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 눈물이라도 되어주겠다. 카프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我々は共に闘って来た 今までもこれからも… 未来へ輝くその日まで 君が涙を流すなら 君の涙になってやる Carpのエース 黒田博樹).'

며칠 뒤 기자회견이 열렸다. FA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만약 다른 팀에 가서 히로시마를 상대로 공을 던진다면 그건 솔직하지 못한 일이 될 것 입니다." 이른바 평생 히로시마 선언이었다. 이 얘기는 훗날 만화로 제작됐다. 일본 하쿠센샤가 '구로다 히로키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발간했다.

4년 동안 1년짜리 계약만 고집한 이유

1년 뒤. 33세의 나이로 태평양을 건넜다. 팬들도 도전은 막지 못했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거기서 4년, 그리고 양키스로 가서 3년을 뛰었다. 처음 3년만 다년 계약이었다. 이후로 4시즌은 매번 1년짜리 계약이다. 구로다 본인의 뜻이다.

"더 이상 내년을 위해 뛰는 나이는 아닙니다. 늘 완벽하게 태우고 싶습니다. 다년계약을 하면 아무래도 2년째의 일이 머리에 남죠. 여력을 남기며 시즌을 치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팀에 리스크를 떠안기지 않고, 매년 결과로 내 자신의 가치를 어필해야 합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의 공포, 로테이션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은 언제나 짊어지고 가야할 몫입니다."

소신과 더불어 이유가 또 있다. 카프 시절의 동료 투수 사사오카 신지의 말이다. "(구로다) 히로키는 늘 돌아와야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1년 계약을 반복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요."

물론 복귀는 누구나 염두에 둔다. 문제는 시기다. 커리어의 뜻깊은, 또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진짜로 전력에 도움이 돼야한다. 그래서 정한 조건이 '힘이 남아 있을 때'였다. 거액의 다년 계약을 외면한 진짜 이유다. (카프 구단도 등번호 15번을 7년 동안 비워놨다.)

출처: 게티이미지

복귀 2년째 우승 이루고, 은퇴 결정

복귀 2년째인 2016시즌, 카프는 승승장구했다. 그는 3선발로 책임을 다했다. 선발 24번에 10승(8패)을 올렸다. 완투 1번도 포함됐다. ERA도 3.09로 수준급이다. 급기야 요미우리와 한신을 물리치고 센트럴리그 정상을 차지했다. 25년만의 우승이다. 기념 퍼레이드에 히로시마 시민 31만명이 모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현역 속행은 무리라고 밝혔다. 왜? 10승이나 한 투수가? 수많은 물음표에 대한 답은 명료했다. “항상 완투하다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9회를 던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시간씩 마사지를 받아야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떠날 때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은퇴식은 홈구장에서 열렸다. 우승보고회 자리였다. 동료들의 헹가레를 받았다. 등번호 숫자만큼이다. 그리고는 한줄로 서서 일일이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했다.

끝내 혼자 남은 마운드. 그는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고개 숙여, 얼굴을 깊이 묻었다. 간간히 양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숨 막히는 정지 동작은 33초간이나 계속 됐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훌쩍임이 들렸다. 3만 810명이 "구로다"를 연호했다.

출처: 유튜브 화면 캡처

또 하나의 컴백 - 추추 트레인

또 한 명이 '복귀'한다. 최고의 리그와 작별하고, 자신이 나서 자란 곳으로 돌아온다. 비록 고향팀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정성으로 인연을 만들었다.

미국에서도 의외라는 눈길이다. 몇 개 팀이 붙었고, 제법 진지한 제안까지 제시됐다. 하지만 마다했다. 그리고 결단이 내려졌다. 그가 밝힌 이유 중에 하나가 귀에 박힌다.

"한발짝이라도 더 뛸 수 있을 때 돌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추추 트레인) 구로다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아직도 힘이 남아 있을 때 카프를 위해서 던지겠습니다"라는 멘트다. 연봉 중 상당액을 좋은 일에 쓰겠다는 마음씀도 비슷하다.

이제 남은 건 하나다. 결과로 입증하느냐다. 가진 모든 걸 태워서 환하게 밝힐 수 있느냐다. 그래야 귀환이 완성되는 셈이다.

출처: SK 와이번스 인스타그램
출처: 게티이미지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