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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하나 바꿔 "영국 휩쓴" '이 브랜드'는?

조회수 2019. 10. 19.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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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영국의 코브라 맥주는 국내에선 낯선 브랜드지만 영국에선 매우 유명한 맥주다. 현재 전 세계 45개국 이상에서 판매되고 있는 코브라 맥주는 매년 2억 5,000만 달러(약 3천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며 성장 중이다. 이 코브라 맥주의 창업가는 카란 빌리모리아(Karan Bilimoria)로 현재 회사의 회장과 동시에 영국의 버밍엄 대학(University of Birmingham)의 총장, 그리고 영국의 하원 의원직을 역임하고 있다.



맥주 회사를 창업하고 대학교의 총장이자 정치인이라는 길을 밟고 있는 카란 빌리모리아의 이력은 사뭇 독특해 보인다. 비즈니스를 비롯해 학계, 정치계에서 폭넓게 관여해온 인도계 영국인인 카란 빌리모리아의 코브라 맥주 창업 스토리를 HBR 기사를 정리해 소개한다.

☞HBR 원문 보기(링크)

첫 직장 회계법인, 변호사 되려 법학 공부... '고향 음식과 어울리는 맥주'에 대한 열망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인도 하이데라바드(Hyderbad)

인도의 '하이데라바드(Hyderabad)'에서 태어난 카란 빌리모리아는 인도 오스마니아 대학(Osmania University)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세계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언스트앤영(Ernst & Young)'에 취직했다. 그는 그곳에서 공인회계사 라이선스를 취득했는데 이후 변호사나 기업의 인수합병(M&A) 자문에 응하는 것을 목표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수업이 끝난 후 영국 술집에서 탄산이 강한 라거(Lager)를 마실지, 진한 에일(Ale)을 마실지 고민을 하게 된다. 라거는 음식과 함께 즐기기엔 탄산이 너무 많고 싱거우며 식사와 함께 마실 경우 금방 배부른 느낌을 줬다. 에일은 음식과 같이 먹기엔 너무 진하고 썼다.



그는 음식과 잘 어울리는, 특히 고향 인도의 매운 카레와 잘 어울리는 균형 잡힌 맥주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카란은 라거와 에일의 중간쯤에 위치한 시원하고 청량하면서도 부드러운 맥주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밤 적당한 조합을 찾기 위해 시중의 맥주들을 이리저리 섞어보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맥주 회사를 설립하는 게 첫 번째 창업으로는 너무 큰 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선 작은 사업 경험부터 쌓을 필요가 있다고 느낀 그는 1989년 친구 '아르준 레디(Arjun Reddy)'와 함께 인도에서 만든 폴로경기용 스틱을 영국에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영국의 대표적인 백화점 해러즈(Harrods)와 영국의 스포츠용품 유통 업체인 릴리 화이트(Lillywhites)가 카란의 고객이 되었고 그는 가죽과 실크, 의류와 같은 전통적인 인도 상품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영국 최고급 식당 & 카레 식당 공략하자

출처: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코브라 맥주 회장 카란 빌리모리아(Karan Bilimoria)

그러다가 벵갈루루에서 인도 최대의 독립 맥주 제조사를 소개받게 되는데 카란은 이곳이 맥주를 수출해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영국으로 수출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당시 팔스(Pals)와 녹아웃(Knock out)이라는 브랜드를 수출하려 했지만 팔스는 영국의 애완견 사료 브랜드와 이름이 같았고 녹아웃은 권투선수의 펀치를 연상케했다. 이런 이유로 카란은 자체적인 브랜드를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인도에서 머물며 고대하던 맥주 개발에 나선다.

맥주 개발이 마무리되자 카란은 영국으로 돌아가 최고급 인도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맥주를 소개했다. 특히 1990년대 당시 영국에선 인도 카레가 점점 인기를 끌고 있었고 인도 음식, 특히 카레와 어울리는 맥주 개발을 목표로 시작한 사업이었기에 인도 카레 식당을 주요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1만 2,000곳이 넘었던 당시 영국의 카레 식당을 공략할 수만 있다면 성장을 위한 발판을 제대로 닦은 셈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이 제품을 써준다면 도매업자들도 영업을 하기 위해 뛰어들 터였다. 열심히 발품을 판 덕에 첫 번째 판매분으로 컨테이너 하나 분량의 맥주를 선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도매 거래는 코브라라는 이름 덕분에 성사됐다. 코브라 맥주의 이름은 초기엔 코브라가 아니었다. 당초엔 '팬서(Panther)'라고 부르기로 결정했었고 레이블 디자인도 이미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도매상들이 '팬서'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했고, 카란과 동업자 아르준은 다른 이름의 후보를 생각해내야 했다. 이들은 도매업자들에게 "'코브라'로 이름을 바꾸면 살 것인가"라고 물었고 긍정의 대답을 받은 후 맥주 이름을 코브라로 바꾸고 레이블 디자인도 새로 바꾸게 되었다.

닥쳐온 세 번의 위기 극복

출처: 코브라 홈페이지
코브라 맥주

어느 기업이나 그렇듯이 코브라 맥주에도 여러 차례의 위기가 찾아왔다. 초기에는 자금 조달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코브라 맥주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늘면서 생산량을 늘려야 했다. 그러려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는데 카란은 회사의 다수 지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양한 정부 지원을 활용하다가 마침내 회사를 100만 파운드(약 15억 원)로 평가하고 지분의 5%를 인수할 의사를 밝힌 엔젤투자자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일이 잘 풀려가나 싶었지만 이번엔 생산 문제가 발생했다. 투자를 받은 다음 해에 판매를 두 배로 늘렸지만 벵갈루루의 맥주 제조사는 수요에 대응하지 못했고 품질, 일관성, 공급량 등에 어려움이 생겼다. 결국 생산능력을 인도에서 늘릴지, 영국에서 늘릴지 결정해야 했다. 카란은 설문조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원산지보다 맥주의 부드러운 맛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결국 생산지를 영국 '베드퍼드(Bedford)'로 옮겼다.

생산량이 늘어나자 다양한 종류의 술집과 레스토랑에 맥주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위기는 끝이 아니었다. 1998년 인도 레스토랑의 서비스를 비판하는 잡지 기사가 카란의 이름이 발행인으로 올라있는 무역 잡지에 실린 것. 이후 인도 레스토랑 주인들이 1년간 코브라 맥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 기간 동안 코브라 맥주는 영국 내 창고를 폐쇄하고 직원을 해고해야 했다. 1년 동안 코브라 맥주의 판매는 3% 증가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끈질기게 인도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결국 코브라 금지령을 풀 수 있었다.

출처: 코브라 홈페이지

그다음의 위기는 코브라가 꽤 규모가 큰 회사로 성장한 2008년에 찾아왔다. 당시 코브라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를 위해선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했다. 이미 세계 최대의 주류회사 중 한 곳이 회사 지분의 30%를 3000만 파운드(약 450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동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회사가 인수를 철회했고 코브라 맥주는 자금 조달의 문제를 또다시 겪게 된다. 이때 카란 빌리모리아는 인도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대안을 찾아낸다. 리먼 브라더스가 사태가 발생하기 고작 2주 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벌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은 때에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위기를 맞게 된다. 2009년 당시 코브라는 약 7,000만 파운드(약 1천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기 침체로 인해 한 투자자가 대출금 회수를 요청하고 회사를 팔라고 요구했다.



2009년 3월 세계 최대 양조업체 중 하나인 '몰슨 쿠어스(Molson Coors)'가 자신들이 지분의 50.1%를 갖고 카란이 49.9%를 보유하면서 회장으로 남아 팀을 통합하는 조건으로 합작 투자 계약을 제안했다. 투자 계약을 받아들인 코브라는 직원 3분의 1을 합작법인으로 옮기고 중복되는 인력은 일부 남은 주주들과 함께 전액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회사를 살릴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코브라는 결과적으로 재무와 마케팅, 유통을 포함하는 몰슨 쿠어스의 전체 방식을 등에 업을 수 있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HBR 2018년 11~12월

번역 김선우 에디팅 장재웅

인터비즈 김동섭, 장재웅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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