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직전의 영국 패션 브랜드, '이것'으로 회사 갈아엎어 성공했다

조회수 2019. 12. 12.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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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일으키는 것만큼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특히 한번 휘청해서 파산 직전까지 간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고 부활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채색 톤의 감각적인 디자인, 가죽 라이더 재킷, 가죽 가방 등으로 유명한 '올세인츠(AllSaints)'는 파산의 위기를 발판 삼아 체질 개선에 성공해 반등에 성공한 흔치 않은 케이스다.


출처: 위키백과
올세인츠 로고

전통적인 산업으로 분류되던 패션업계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그리 최근 일은 아니다. 디지털 혁신을 통해 온라인 매출을 올린 루이비통(Louis Vuitton), 인공지능을 활용해 의상 코디 및 의류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볼브(Revolve) 등 차세대 기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패션업계가 디지털화를 통해 매출을 올리거나 아예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기도 했다.



특히, 디지털로 기업을 혁신하고 나아가 회사를 무너뜨릴 만큼의 큰 리스크를 극복할 수 있었던 올세인츠의 사례는 현재 사업상 크고 작은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들에 큰 시사점을 준다.

2011년 파산 위기... '이 사람'이 CEO로 취임하면서 혁신의 기틀 마련해

1994년 영국 런던 카나비(Carnaby) 스트리트에서 탄생한 '올세인츠(AllSaints)'는 이스트 런던의 문화를 담은 확고한 브랜드 컨셉으로 영국 패션의 상징이었다. 명품 브랜드는 아니지만 일반 브랜드보다 가격이 높고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컨템포러리 패션 브랜드(Contemporary Brand)로 분류된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정체성이 뚜렷한 디자인으로 미국과 유럽, 러시아까지 진출했던 브랜드다. 케이트 모스, 마돈나, 데이비드 베컴, 리한나 등 셀러브리티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출처: news.samsung.com
올세인츠 전 CEO 윌리엄 김

그러나,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던 올세인츠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크게 휘청거리게 된다. 2008년부터 경영악화로 위기에 처한 올세인츠는 결국 2011년 법정관리 직전까지 가게 된다. 다행히 올세인츠의 가치를 알아본 영국의 사모 펀드 라이언 캐피탈(Lion Capital)이 약 1547억 원에 회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2012년 새로운 CEO로 버버리(Burberry)의 디지털 총괄 부사장으로 있었던 윌리엄 김(William Kim, 현재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리테일·이커머스 총괄 부사장)​이 취임하게 된다.

괌에서 태어난 윌리엄 김은 유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떠난 이민 1.5세대로 구찌(Gucci)에서 임원을 거쳐 버버리에서 디지털 혁신을 이끌어 패션계의 거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인물이다. 그런 만큼 윌리엄 김은 버버리를 떠나면서 강남 아파트 4채쯤 되는 거액의 스톡옵션을 포기해야 했다. 망하기 직전의 회사로 가겠다는 그를 버버리에선 수차례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윌리엄 김은 몰락하고 있던 올세인츠의 잠재된 가치를 알아본 라이언 캐피탈처럼 올세인츠에서 혁신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출처: 윌리엄 김 트위터
CEO로 부임할 당시 올세인츠는 8시간 후면 파산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직접 눈으로 본 올세인츠의 상황은 심각했다. 윌리엄 김이 회사에 처음 출근한 날 입구에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어 한참 동안 입구를 찾지 못했을 정도였다. 직원들은 손님을 맞이하는 방법도 모를 정도로 매장 서비스는 엉망이었으며 재무 상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여러 측면에서 봤을 때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윌리엄 김은 구제불능으로 보였던 이 회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바꾸기로 다짐한다.


* 컨템포러리 브랜드(Contemporary Brand) : 정체성을 유지하되 당대의 트렌드에 맞춰 발 빠르게 고객의 취향에 다가가는 브랜드

디지털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한 일,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

출처: 올세인츠 코리아
올세인츠 남성 라인 일부에 사용되는 '아이코닉 마크 램스컬'

윌리엄 김은 버버리에서 글로벌 디지털 전략을 총괄하며 디지털 혁신을 주도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올세인츠를 '디지털화'로 소생시키기로 결심한다. 비효율을 최소화하고 다가오는 미래의 새로운 트렌드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아날로그를 제거하기로 한 것. 그러나, 그 이전에 디지털화를 위한 토양을 닦을 필요성을 느꼈다. 진정한 디지털 혁신을 위해선 일하는 방식을 비롯해 아날로그에 젖어있는 직원들의 사고 흐름 자체를 바꿔야 했다.

회사 전체에 만연한 비효율성을 기존과는 다른 창의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윌리엄 김은 본격적인 디지털화를 위해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으로 회사의 밑바탕을 혁신하기로 결심한다. 그가 회사에 합류하자마자 한 일은 직원들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경영악화가 오래 지속되면서 생긴 회사에 대한 내부적인 불신과 부정적인 이슈들에 대한 직원들의 생각에 변화를 주기 위해 3개월 동안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개선할 부분을 고쳐나갔다. 또, 디자인 싱킹에 기반해 계절 단위로 진행하던 신제품 출시 주기를 매달 출시하는 것으로 바꿨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윌리엄 김은 패션 회사가 아니라 구글, 아마존과 같은 IT 혁신기업들을 벤치마킹해 그들의 혁신 DNA를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 결과 부도 위기까지 갔던 올세인츠는 윌리엄 김이 합류한 지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4년 만에 매출 4500억 원을 달성했다. 또, 2011년 전 세계 63개에 그쳤던 매장을 2017년 240개, 현재는 301여 개로 늘렸다.



영국의 패션기업 대부분이 역성장하던 상황에서 이뤄낸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그 이후 올세인츠는 200개 이상의 국가에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빠르게 시도하고 실패 후 빠르게 개선하는 디자인 싱킹을 바탕으로 디지털 전략을 펼친 결과였다.


*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 : 문제 해결에 있어서 디자이너들이 창조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던 방식대로 사고하는 것

아날로그 제거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디지털'로... 패션기업에서 디지털 기업 됐다

아날로그는 설탕보다 나쁘다

윌리엄 김은 올세인츠가 밀레니얼과 Z세대를 포용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브랜드가 되기를 원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한 전략이 아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했다. 이를 위해선 회사에 존재하는 아날로그 방식 중심의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비롯해 사업 전반을 디지털화시켜야 했다.

우선 윌리엄 김은 모바일 환경과 PC에서 자동으로 화면이 최적화되는 기술을 100일 만에 완성해 고객 친화적으로 사이트와 앱을 개편했다. 또, 마케팅, 물류, 판매 등 모든 업무 프로세스를 디지털화하기 위해 패션 업체로서는 최초로 구글과 협업했다. 구글 클라우드를 통해 전 세계에 있는 3000여 명의 직원들이 업무와 정보를 공유했고 구글 행아웃으로 온라인 회의를 진행하도록 했다.

출처: 올세인츠
2017 가을 컬렉션 'LONDON. MORE THAN EVER'

제품을 매장에 진열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과거에는 새로운 상품을 진열할 때 사진을 촬영해 매뉴얼을 만들었고, 그 매뉴얼을 각 매장에 보내 읽고 실행하게 했다. 또, 본사에서 직원을 파견해 매장을 점검하고 시정 사항이 있을 경우 지적하고 교육했다.



이런 아날로그적인 방식은 시간적으로나 인력적으로나 낭비였다. 또, 경영 성과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날씨가 급변해 두꺼운 옷 대신 얇은 옷을 진열해야 하는 경우 기존의 방식으로는 이를 전 세계 매장에 일일이 전파하고 실행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매출에도 영향을 줬다.

윌리엄 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제품을 진열하거나 변동 사항이 있을 경우 동영상으로 촬영해 이를 온라인으로 전 세계 매장과 공유했다. 디지털 방식으로 바꾼 이후 소수의 인력만으로 모든 매장을 커버할 수 있었고 빠르게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또한, 구글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구글 플러스를 통해 본사와 지사를 비롯해 전 세계 매장에서 발생한 일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직원들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게끔 했다.

출처: 올세인츠 코리아
올세인츠의 모든 매장들은 파사드를 가득 채운 빈티지 재봉틀로 깊은 인상을 준다

또, 웹사이트부터 물류, 고객 서비스까지 모든 것을 본사가 직접 디지털 시스템으로 관리했다. 유통 역시 90% 이상이 직접 판매로 이뤄진다. 백화점과 같은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 업체의 영향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기존의 유통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판단한 것.



유통 혁신이 필요하다고 느낀 윌리엄 김은 재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몰의 재고를 함께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온라인에서 상품이 모두 팔리면 선별한 60여개 매장에 물량을 공급하라는 알림이 뜨고, 매장은 물류창고 역할을 하며 재고를 마련한다. 또, '재고 ZERO'라는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과 판매, 재고관리까지 자동화했다.

결제 시스템에도 변화를 줬다. 온라인 결제의 경우 아마존 시스템을 통해 30초 이내로 결제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그 결과, 올세인츠 판매의 20%는 온라인에서 이뤄질 정도다. 이는 명품 브랜드의 온라인 판매가 평균 5~7%, 컨템포러리 브랜드가 평균 1~2%인 데 비해 매우 높은 수치다. 2016년에는 온라인 판매 수익이 2015년 대비 33% 증가한 804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올세인츠의 디지털 전략은 그 이후로도 효과적으로 작용해 2018년 총매출은 전년 대비 8% 증가한 3억 3700만 파운드(약 5280억 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올세인츠는 패션 회사지만 마치 IT 회사처럼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클라우드 기반의 시스템을 통해 직원들이 재고 현황, 재무 상태와 매출 등의 회사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이커머스, SNS는 물론 모든 업무 프로세스를 디지털 및 클라우드 환경에 구축해 미래지향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패션 업계에서 디지털 혁신을 선도한 리더로 꼽히는 윌리엄 김. 그리고 그가 디지털 전략을 통해 망해가던 패션 업체를 부활시키고 나아가 디지털 회사로 혁신한 사례는 여전히 아날로그에 발목 잡혀있는 많은 기업들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인터비즈 김동섭 장재웅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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