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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조건 다 갖추고 오픈한 광교 앨리웨이 "이 편집숍"

조회수 2020. 2. 25. 16: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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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PCG 여준영 대표는 처음 부동산 디벨로퍼인 네오밸류(NeoValue) 손지호 대표로부터 광교 앨리웨이에 남성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을 열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단칼에 거절했다. "미친 거 아냐?"란 말과 함께. 최근 소비 트렌드와 정반대에 있는 세 가지 요소, 오프라인·비(非)서울·남자가 모두 포함된 기획이었기 때문이다. 손 대표의 긴 설득이 이어졌고, 1년여 고민 끝에 결국 지난해 6월 '스트롤(STROL)'을 열었다.



'오프라인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하겠다'며 매장 이름을 '산책(stroll)'으로 정하고 온라인 스토어도 열지 않았다. 여 대표는 어떻게 '안 될거야'란 생각을 넘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콘셉트의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DBR 290호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의 특권인 '산책'을 살린 스트롤

앨리웨이 광교
출처: DBR
제안서로 쓰이는 레트로뷰어

오프라인은 온라인에 비해 '경험'과 '공간'이라는 가치를 잘 전달한다. 스트롤은 ‘맥락 있는 취향 제안'을 위해 '경험, 취향, 맥락, 제안, 공간' 이 5가지 요소를 매장의 여러 활동, 즉 상품 소싱, 디스플레이, 스태프의 태도 등 모든 일의 기준으로 정했다. 예컨대, 입점 제안서도 주로 쓰는 파워포인트대신 스트롤의 가치를 녹인 레트로 뷰어를 사용했다. 브랜드 담당자들은 레트로 뷰어와 필름 슬라이드로 스트롤의 정체성을 느끼는 새로운 ‘경험’을 신선하게 여겼고 대부분 스트롤의 제안에 흔쾌히 호응했다.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좋은 브랜드를 유치하는 일이 덕분에 수월하게 풀린 것이다.



온라인에서 상품이 저렴한 이유는 매장 유지비용이 없고 인건비 등 제품 단위당 비용이 싸기 때문이다. 배송비 부담이 있음에도 공급자 입장에서는 비용이 상당히 절약된다. 그래서 공급자 입장에서 오프라인이 온라인보다 비싼 게 당연하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프라인이 더 싸야 맞다. 사실 오프라인 매장까지 가려면 이런저런 수고가 드는데 더 비싸게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매력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오프라인에만 한정적인 상품을 팔거나, 매장을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거나, 서비스가 인상적이어야 한다. 결국 오프라인 매장을 가야 하는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 매장 이름이 스트롤(STROL)인 것도 그 이유에서 착안됐다. ‘산책(stroll)’이란 의미를 담은 스트롤은 ‘우리는 오프라인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는 스토어의 가치와 함께 한다.

남자들의 아지트를 만드는 요소

2019년 5월 광교 앨리웨이에 오픈한 스트롤은 남자들을 위한 아지트 공간이자, 다른 어디에도 없는, 하나를 사도 후회가 남지 않을 제품을 선별해 제안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편집숍이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콘셉트의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기까지 여대표는 어떤 고민을 했을까.

스트롤 인스타그램

취향: 매장이 곧 미디어

벤치마킹할 만한 남성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을 찾아다니며 두 가지 질문에 맞닥뜨렸다. 첫 번째 질문은 “왜 라이프스타일은 없고 패션만 있는가?”다. 패션이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는 맞지만 라이프스타일이 곧 패션은 아니다. 라이프스타일은 말 그대로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한다. 두 번째 질문은 “큐레이션을 통해 이미 좋은 물건을 모아놓은 셀렉트 매장을 방문해도 왜 여전히 선택이 어려울까?”다. 아이템별로 상품 종류가 많다 보니 그 안에서 소비자는 뭘 살지 또 고민해야 한다. 여대표는 패션의 비중을 줄이고, 카테고리별로 엄선한 단 하나의 제품을 제안하는 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편집숍에 테넌트(입주할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출처: DBR

그리고 스트롤의 정체성을 숍이 아닌 ‘미디어’로 정의했다. 지면이나 화면이 아니라 실제 공간을 활용하는 미디어란 뜻이다. 그냥 상점이라면 손님이 오래 둘러보고 나가면 김이 새겠지만, 미디어로서의 숍은 손님이 오래 둘러보는 행위 자체가 고마운 일이 된다. 손님이 제품을 사는 것으로 공간이용이 끝나는 것이 아닌, 들여올 새로운 제품을 손님이 기대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을 매거진과 전시회의 중간으로 설정함으로써 남다름을 추구했다. 그래서 상품에 대한 설명을 매거진처럼 충분히 적어두었다. 매장 스태프는 그저 수동적으로 자리를 지킨다. '과묵한 도슨트'인데, 손님이 말을 걸기 전까지 다가가지 않는다. 매거진처럼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면서도, 전시회처럼 하나의 작품과 깊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한 것이다.

가치 제안: 하나를 사도 오래 지속되는

‘남자들에게 아주 오랜 시간 쓸 수 있는 상품을 제안하자’는 스트롤이 상품을 런칭할 때의 원칙이다. 소비자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가치를 카테고리로 구체화했다. 아무리 인기 있는 상품이라도 카테고리에 해당하지 않으면 입점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물건’이 아닌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물건’을 가져다 놓는 것은 굉장히 모험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카테고리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① 희소성: 가치는 좋은 것이 아니라 희귀한 것(rarity)으로부터

희귀한 상품은 희귀함 그 자체에서 존재 이유를 갖고 가치를 높인다. 중고 숍에서 40만원에서 출시된 슈프림(Supreme) 후드 셔츠가 중고가 150만원에 판매되는 것처럼 말이다. 스트롤도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제안하기 위해 수시로 작가들과 협업하고 그들의 작업을 상품화해 선보인다. 1965년부터 2대에 걸쳐 빈티지 시계를 제작하는 '용정'의 컬렉션 또한 용점 본점 외에 스트롤에서만 볼 수 있는 아이템이다.

② 리처블 로망: 싼 쪽에서 조금 더 꿈 쪽으로

생각해보면 살면서 같은 카테고리에서 두 개 이상 필요한 물건은 별로 없다. 하나만 필요하다면 이왕이면 비싼 물건을 사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로망을 포기하고 쉽게 살 수 있는 방안을 택하면 그거대로 후회한다. 스트롤은 조금 무리하더라도 로망에 가까운 지점에서 상품을 선택해 오래 곁에 두길 바라는 ‘리처블 로망(reachable roman)'의 물건을 입점시킨다.

출처: 광교 앨리웨이

​예컨대, 카메라는 라이카(Leica), 자전거는 브롬톤(Brompton), 오디오는 오드(ODE) 컬렉션을 각각의 카테고리에서 유일한 선택지로 입점시켰다. 더 저렴하고 합리적인 브랜드 제품들이 있지만 분명 후회하거나 업그레이드를 하기 마련이다. 그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제안을 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우리가 선택한 것들보다 더 하이엔드 제품들도 있지만 그 로망에 가기 전까지 그에 가깝게(reachable) 다가가라고 제안했다.


③ 환경에 도움이 되는 것들

오래 쓸 수 있으면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쓰레기가 되지 않으니 환경에 비교적 도움이 된다. 포틀랜드의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나우(Nau)와 함께 페트병에서 추출한 재생 소재로 만든 스웨트셔츠는 옷에 달린 태그에 이와 같이 ‘지속가능성’에 대한 두 브랜드의 생각을 텍스트로 넣었다. 그리고 보통 구매 후 떼어서 버리고 마는 태그를 재활용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소비자는 이 태그를 뗀 뒤 북마크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④ 오늘 살 때가 가장 싼 것

스트롤은 소유했을 때 '재테크'라 불릴 정도로 사용하는 동안 가치가 올라가는 것들, 즉 내일 사려면 더 비싸지는 것들에 주목한다. 예컨대, 세르주무이(Serge Mouille)는 연간 2000개 이내만 생산되는 프랑스 조명인데, 현재도 경매에서 50년대 만들어진 모델이 10배 이상의 가격으로 되팔릴 정도로 그 가치를 자랑한다.

경험: 독점적이거나 비틀거나(Exclusive or Twist)

‘오프라인에서 무엇을 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는 ‘왜 소비자가 직접 사러 가야 하는가?’란 질문을 같이 던져야 한다.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남과 다른 것을 팔면 된다. 따라서 스트롤은 남다른 것(Exclusive)을 파는 것뿐 아니라 같은 것을 다르게 판매한다(Twist)는 원칙을 세웠다.

출처: 광교 앨리웨이

스트롤이 암스테르담의 반고흐박물관에서 수입한 립스틱 케이스는 뒤틀기(Twist)의 좋은 사례이다. 2018년 1월 유럽 여행 중 반고흐박물관에서 판매하는 립스틱 케이스를 발견하자마자 동전 케이스로 쓰기 너무 좋겠단 생각을 하고 반고흐박물관으로부터 그 케이스를 수입했다. 필자의 경험을 설명하며 매장에 전시했고, 수많은 여행객이 그 제품을 사기 위해 매장을 찾았다.

이미 히트 상품인 로우로우(RAWROW) 트렁크를 입점시키면서도 “이걸 왜 여기까지 와서 사야 하지?”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다른 어느 판매점에서도 하지 않는 형태로 래핑을 했다. 래핑 디자인은 디자인 스튜디오 슈퍼픽션(SUPERFICTION)과 ‘광교’의 로컬 정체성을 모티브로 협업, 제작했다. 트렁크 래핑은 단순한 데코레이션이 아니라 ‘트렁크는 집에 산다’는 해석을 담은 결정이다. 사람들은 트렁크를 여행 갈 때 쓰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내 생각엔 트렁크가 가장 오래 있는 곳은 ‘집’이고 사람들은 그 큰 트렁크를 어디다 둘지 곤란해 하곤 한다. 그러니 원하는 디자인으로 꾸며 평소에도 잘 보이게 놓으라는 새로운 제안이었다.

스트롤만의 산책은 계속된다

'하나를 사도 무리해서 좋은 걸 사는 게 아끼는 것'이라는 스트롤의 원칙은 많은 소비자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인스타그램에 자발적으로 후기를 남기면서 우리 공간과 그에 담긴 필자의 취향에 열렬한 지지를 표시했다. 하지만 아직 개선할 점도 있다. SNS에 ‘다 사고 싶다’ ‘돈 벌면 사고 싶다’ ‘주머니 열릴 뻔했는데 참았다’라는 글들이 많이 보이는데 상품은 마음에 들지만 구입의 문턱이 높다는 얘기다. 또 광교라는 입지 핸디캡도 분명하다. 공개적으로 가장 많이 받은 피드백이 “ㅇㅇ에도 내주세요”다. 그래서 최근 오픈 당시의 철학을 조금 양보해 VIP들을 위한 온라인 사이트(strol.co.kr)를 열었다.


​매장 내 스펜서룸은 남성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만들었는데 오히러 여성 고객들의 열광을 받았다. 남성라이프스타일 편집샵으로 시작했지만을 매일 자주 방문하는 로컬 고객에 집중하다 보니 매장을 자주 바꿔야 해서 비용 대비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도 여전히 고민거리다.


이 같은 문제들은 스트롤이 오프라인 로컬 매장으로서 해결해 나가야 할 숙명이다. 매장에 방문하는 한 명 한 명을 위해 매일 미세한 조정을 해나가야 하기에 여러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은 바뀌지 않는다. 스트롤은 ‘잘 팔리는 것’보다 ‘우리가 팔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춘다. 오프라인 숍이 남들과 같아지는 순간 그저 개성이 없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게 스트롤의 변치 않는 믿음이다. 스트롤 매장의 미션은 좋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다. ‘Back to Offline’, 그곳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 가는 산책을 이어가는 것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90

필자 여준영 스트롤 대표 / 에디팅=배미정 동아일보 기자

인터비즈 김정현 박은애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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