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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공시지가 15% 상승하며 "뜨는 동네"로 지역 브랜딩 성공한 이 지역

조회수 2020. 2. 28.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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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미국 여행', '중국 여행'을 가던 시기는 지났다. 요즘 여행의 트렌드는 다른 '나라'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도시'로 가는 여행이다. 독일이 아니라 베를린으로 가고, 일본이 아니라 도쿄로 간다. 국가 브랜딩에서 도시 브랜딩으로 좁아지면서 각 지자체들은 지역 브랜딩에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 대구 김광석거리… 도시마다 동네마다 '브랜드'를 만드려 노력 중이다.


지역 브랜딩의 성공이 가져오는 효과는 매우 크지만 단기 효과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수출 증대, 투자 유치 등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지는 '성공적인' 지역브랜딩은 어떻게 하는 걸까? DBR 91호에 실린 기사를 통해 지역 브랜딩 성공 전략을 알아보자. ☞원문 기사 더보기

버림받은 철강도시, 예술의 옷을 입다

헬싱키에서 서쪽으로 차로 한 시간을 달리면 나오는 피스카스는 핀란드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핀란드 최초의 기계공장, 방적공장 등이 들어서면서 피스카스에 대장장이들이 모여들었다.

피스카스 지역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피스카스의 오렌지색 가위와 공구를 아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이 오렌지색 손잡이 가위로 피스카스 회사가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마을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됐다. 일거리가 넘쳐나 이주민이 급격하게 늘었고 8~10세 된 아이들마저 공장에서 일을 도우며 용돈을 벌었을 정도다.


하지만 피스카스사는 끝까지 이 지역을 지키지 못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마을을 떠났고, 그들이 떠나자 피스카스 지역은 공동화 현상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도시로 변해갔다. 자신들의 기업의 뿌리를 버릴 수 없었던 피스카스사는 피스카스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피스카스는 '살아 있는 제철 마을 만들기(A living ironwork village)'라는 슬로건 아래 지역의 전통인 철강산업을 지켜가며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지역 설립 계획에 착수했다. 피스카스사는 자사가 사용하던 대지와 건물들을 예술가들에게 작업장 겸 주거공간으로 임대해주기 시작했다.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지역적인 특색,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예술가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1993년부터 점차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피스카스 마을로 이주를 왔고 이들은 공동 전시회를 개최했다. 전시회는 대중과 비평가 모두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성공을 거뒀다.


이를 계기로 국내외 많은 예술인들이 피스카스 예술인 마을로 들어와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하고 전시와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 과거 철공소로 사용했던 19세기 건축물이 전시회를 여는 갤러리가 됐고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됐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한 피스카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 빠르게 고품질의 핀란드 예술과 산업 디자인을 미리 선보이는 쇼케이스 장소로 새로운 브랜딩을 시도했다.


그리고 오늘날, 피스카스는 예술인 마을로 자리잡으며 핀란드의 컨템퍼러리 아트 디자인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철공소 옆 아틀리에, 문래

한국에도 피스카스와 닮은 마을이 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이다. 한때 소규모 공장이 1000곳이 넘게 밀집하는 등 철강산업단지로 전성기를 누렸던 문래. 하지만 1990년대 후반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고 철공소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문래는 활력을 잃어갔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저렴한 작업공간을 찾던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비어있는 철공소 공간에 작업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장이 하나하나 문을 닫거나 자리를 옮기며 황폐해졌던 문래동의 옛 공장 벽 곳곳에는 벽화가 그려졌다. 예술가들의 등장은 철공소 골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2010년 서울문화재단의 젊은 예술가 지원사업 중 하나인 문래예술공장이 세워지면서 문래 창작촌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00여곳의 문화 공간에서 30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활동하면서 문래는 점차 서울을 대표하는 예술촌으로 자리잡아갔다.


문래동의 매력이 알려지면서 최근 3년 새 철공소와 예술인 작업실 사이로 식당과 카페, 술집 등까지 들어서면서 문래는 소위 '핫플'이 되었다. KB부동산 리브온 상권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2월 기준 매장당 평균매출이 4300만원에서 2019년 2월 기준 5500만원으로 올랐다. 2019년도 기준 점포 수는 200개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는 작지만 매출 성장률은 43.4%를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독특한 공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뜨는 동네'가 된다는 건 발전을 의미하지만, 곧 집값이 오른다는 걸 내포한다.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탄 문래동 골목. 기존의 공장 자리에 카페나 공방, 디자인 사무실 등이 들어오면서 이 곳 임대료는 점점 상승하고 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2016년 4/4분기 m2당 1만원대였던 문래동 예술촌 인근 상가 임대료는 2017년 3/4분기 m2당 2만 1000 ~ 2만 3000원으로 상승했다. 한편, 문래 창작촌 중심지(문래동 3가 58번지)의 공시지가도 2018년 m2당 350만 원 대에서 2019년 m2당 410만 원 대로 15%가량 올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화 자체를 막을 수 있는 뚜렷한 정책은 없다. 하지만 서울시는 문래동이 소공인과 예술인, 자영업자가 공존하는 문화공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작년 지역 가치를 높이고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문래동의 기계금속장인과 문화예술인, 지역주민이 참여해 지역축제를 기획하거나 조형물 제작을 하는 등 주민공모사업을 선정해 지원했다. 청년 소공인과 예술가가 임대료 상승 걱정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임대공간을 조성하고 시제품 제작을 위한 공유 공간과 장비 등을 갖춘 산업혁신센터도 3곳 이상 조성할 예정이다.

출처: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영등포·문래촌 특화가로 조성 아이디어 공모전 대상 수상작 ON 문래

그리고 규모 기계금속 공장과 예술공방, 힙한 카페가 공존하는 영등포역 인근 경인로와 문래창작촌 일대 3곳을 '특화가로'로 조성하면서 거리 자체를 하나의 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철강산업과 문화예술이 공존한다는 독특한 특성을 살리면서도 지역 구성원이 주체가 돼 일종의 '자생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문래동에 '철공소 옆 아틀리에'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다.


그렇다면, 조금 '뜨다가' 금세 카페거리로 변해버린 다른 핫플들처럼 되지 않고 살아난 성장 동력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지역 브랜딩에 힘써야 할까?

지역 브랜딩 성공 전략 3단계

브랜드는 '이미지'다. 도시의 브랜드를 결정하는 것은 타 도시와 어떤 차별점이 있느냐다. 매력적인 도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도시 브랜드를 관리해야 한다. 도시 마케팅 전문가 빌 베이커에 따르면 지역 브랜딩은 3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첫째, 자연적 이미지 단계다. 한 지역에는 자연 경관, 건축물, 역사, 문화, 예술, 인물, 음식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혼재돼 있다. 따라서 지역 브랜드를 만들려면 이미 '실체'로서 그 지역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여러 유·무형적 요소들에서 공통된 장점을 뽑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정통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정체성을 미래지향적으로 정립하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둘째, 마케팅 유도 이미지 단계다. 광고, 홍보 등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기존 자연적 이미지에 의도한 메시지를 입히는 '상징적 실행' 단계다.


셋째, 경험 단계에서는 지역 이미지가 개인의 직접적 경험에 의해 형성되고 강화된다. 이 단계에 이르려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다양한 브랜드 요소들을 목표 정체성에 맞춰 변화시키고 경험을 통해 실체적 이미지로서 받아들여지도록 만들기 위한 일관되고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출처: 동아일보
록밴드 비틀즈

쇠퇴한 항구도시 리버풀이 비틀즈의 도시로 다시 태어난 과정을 살펴보면 위의 지역 브랜딩 3단계를 이해하기 쉬울터다.


1960년대 전 세계 팝 음악을 평정한 록밴드 비틀즈의 멤버 넷은 모두 리버풀 출신이었다. 리버풀은 비틀즈라는 '실체'들로 정체성을 정립해 지역 브랜딩을 시도했다. '인물'로 시작한 자연적 이미지 단계였다.


리버풀은 '비틀즈의 고향'이라는 테마로 마케팅을 유도했다. 곳곳에 스토리를 입혀 관광상품화를 추진했고 비틀즈의 음악과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리버풀은 '비틀즈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해갔다. 비틀즈 박물관인 '비틀즈 스토리'를 개관하고, 비틀즈 테마 투어, 비틀즈샵 등을 운영하면서 무형의 예술문화를 실체적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게 꾸준하게 노력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도 많은 관광객들은 리버풀에 방문해 비틀즈와 관련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비틀즈의 음악과 그들을 추억한다. '비틀즈의 도시'라는 지역 브랜드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역 브랜딩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데 이견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 브랜딩은 종종 실체를 간과하고 리더의 철학에 기초한 전략을 밀어붙여서 실패하곤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덴마크 코펜하겐 전경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덴마크 코펜하겐이다. 2009년 제 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가 코펜하겐에서 열리자 시 당국은 이 행사의 의미를 기반으로 도시 브랜드 구축을 도모했다. 코펜하겐은 기후변화를 막는 희망(hope)을 주는 도시라는 뜻으로 'HOPEnhagen(호픈하켄)'이라는 브랜딩을 시도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반대로 협약 타결에 실패하자 거꾸로 'BROKENhagen' 'NOpenhagen' '절망하겐' 등 비아냥에 가까운 오명을 얻었다.


지역 브랜딩은 리더가 "이렇게 하자"고 말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 투자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지역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이미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91호

필자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

인터비즈 조지윤 윤현종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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