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려면 일단 견뎌라?

조회수 2021. 3. 5. 18: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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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飛龍)을 결정하는 6단계

모두가 하늘을 나는 비룡(飛龍)이 될 순 없다. 물 속에 숨어 때를 노리는 잠룡(潛龍)의 시기에 머물다가 끝나는 경우도 부지기수. 기업의 일생도 그렇다. 잠룡 시기를 슬기롭게 통과한 기업은 글로벌 시장을 누비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지역 시장에서조차 날개를 펴보지도 못한 채 도태된다. 연못 아래 숨죽이던 잠룡이 하늘을 나는 비룡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세종과 제갈공명의 공통점?

동양의 고전 주역은 인간과 자연의 존재 양상과 변화의 원리를 64괘에 담았다. 그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괘인 중천건괘는 천지창조와 생장의 원리를 밝힌다. 주역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쌓인 데이터를 토대로 이런 성장의 과정을 여섯 단계로 구분해 단계별 행동 지침을 조언한다.

출처: 인터비즈

첫 번째 단계인 잠룡 시기에는 함부로 나서지 않고 근신하는 것이 지혜롭다. 중국 한(漢)나라 초의 무장 한신은 잠룡 시절 동네 깡패들의 가랑이 밑을 기면서 바짝 엎드려 지냈다. 그때 욱하는 심정으로 깡패들과 싸웠다면 초한지의 영웅 한신도, ‘배수의 진’이라는 유명한 병법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갈공명이 유비의 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모두 사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땅에 바짝 엎드려 있던 와룡(臥龍)의 시기였다.

조선의 성군 세종 또한 왕위를 물려받은 후에도 아버지 태종이 죽을 때까지 몸을 숨겼다. 장인이 역모의 수괴로 몰리고, 장모가 노비로 전락할 때에도 침묵했다. 만일 연민의 정을 앞세워 태종에게 맞섰더라면 세종은 비룡이 되기 전에 추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천재들도 본격적으로 이름을 드러내기 전 창고를 전전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창업을 했지만서도 창고는 그들이 잠룡 시절 숨어 있었던 연못이었다.


두 번째는 세상에 나가 서서히 이름을 알리는 현룡(見龍) 단계다. 주역은 이때 가장 중요한 행동 지침이 인재 발굴과 네트워킹이라고 말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상품을 출시할 때도 홍보전략보다 인적 자원 발굴을 선행해야 한다. 구글, 애플 등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들 가운데 공동 창업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훌륭한 인재를 찾아 힘을 더해야 한다는 주역의 가르침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녹아있다.

기회는 준비한 자의 것

세 번째는 역량 강화의 단계다. 본격적으로 도약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한다. 여물지 않은 상태로 세상에 몸을 성급하게 드러냈다가는 비룡이 되지 못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실력을 연마하고 기술력을 축적해야 한다.

세종은 잠룡과 현룡 시절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스스로 성군의 길을 닦았다.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에도 3년이라는 자강불식의 단계를 거친 후 비로소 공표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컴퓨터를 시장에 내놓기 전에 소비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회로기판의 디스플레이도 세심하게 다듬었다. 이렇게 출시된 애플컴퓨터는 자체 완결적인 구조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애플은 마침내 비룡이 될 수 있는 준비를 완벽하게 갖췄다.

출처: 위키피디아
약 90%까지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지만 MS에게 밀려났던 넷스케이프

물론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비룡이 되려다 낙마한 잠룡이 수두룩하다. 'WWW(World Wide Web)' 태동기의 대표 웹브라우저였던 넷스케이프는 여물지 않은 브라우저를 출시했다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왕좌를 빼앗겼다. 포털 사이트 야후도 결함을 가다듬지 않은 검색 엔진을 세상에 선보였다가 완벽한 알고리즘을 장착한 구글의 검색 엔진에 정상을 내줬다.

네 번째는 도약 단계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태종 이방원은 형제들 중 유일하게 과거에 합격할 정도로 능력도 출중했고 이숙번, 하륜 등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도 갖췄다. 그러나 이성계가 어린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이방원의 입지가 흔들렸다. 결국 그는 왕자의 난을 일으켜 스스로 왕좌에 오른다. 만일 그가 우유부단했다면 조선은 신권이 왕권을 압도하는 국가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기업에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기업공개 등을 통해 사세를 확장하는 단계가 바로 이 시기다. 기업을 공개하면 자신들의 경영권이 약화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을 창업한 CEO들은 비룡이 되기 위해 과감하게 연못에서 뛰쳐나오는 변화를 선택했다.

왕좌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려워

출처: 위키백과
장영실 표준 영정

근신, 파트너십 구축, 역량 강화, 도약이라는 네 단계를 무사히 통과하면 마침내 잠룡은 비룡이 된다. 하지만 비룡이 됐다고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비룡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비룡이 되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 비룡의 자리를 잘 보존하기 위한 주역의 다섯 번째 지침은 유능한 인재 등용이다. 왕이 되려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보필할 인재가 그만큼 중요해서다.

출처: 위키백과
황희 영정

태종 승하 후 마침내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게 된 세종은 과감한 인재 등용으로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정적이었던 황희를 영의정에 기용해 국정을 총괄하게 했고, 문인 출신인 김종서를 국방 분야의 최고책임자로 발탁했다. 노비 출신인 장영실은 과학기술 분야의 수석 엔지니어로 특채했다. 훈민정음 창제, 4군 6진 개척, 과학기기 발명 등 세종이 일궈낸 업적 밑바탕에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혁신적인 용인술이 있다.

출처: 네이버 미술백과
마르크 샤갈 作 이카로스의 추락(1977)

마지막인 여섯 번째 단계는 너무 높이 오른 용은 후회한다는 의미의 항룡유회(亢龍有悔)다. 하늘을 날고 싶어 하던 이카로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도움으로 소원을 이루지만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는 충고를 무시해 한순간에 추락한다. 경제계의 비룡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으면서도 하나 더 가지기 위해 레드라인을 넘는 기업은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이다.

원문: DBR 314호
필자: 박영규
정리 인터비즈 조지윤 김재형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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