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진짜 직업은요..' 요즘 핫한 25살 여성 래퍼의 반전

조회수 2018. 11. 1. 17:25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15만 구독자 거느리며 "언제나 네 편이 돼줄게"라고 랩하는 선생님
초등학교 교사인 래퍼 달지 이현지씨
경기도교육청과 홍보 영상·음원 만들어
“선생님과 랩에 대한 편견 깨고파”

유튜브에서 현재 조회수 39만6000회를 넘긴 영상에는 초등학교 교실의 점심시간 모습이 나온다. 아이들은 식판에 밥을 푸고, 카메라를 보며 춤을 춘다. 아이들과 함께 등장한 노란 옷의 선생님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빠르게 랩을 뱉는다.


“고작 1년 주어진 시간이 참 짧더라. 많은 걸 주고 싶었는데 받은 게 더 많았고...(중략)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 그저 너의 삶에 행복 한 줄기를 더해주는 것”.


‘래퍼 달지’ 이현지(25)씨다. 안산화정초등학교 6학년 2반 담임선생님이다. 이 영상은 이씨가 경기도교육청과 함께 만든 ‘다시 만날 때’라는 홍보 영상이다. 이씨가 직접 랩 가사를 적었다.


예사 솜씨가 아니다. 그는 ‘달지’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 랩 영상을 올리고, 주말에는 서울 홍대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는 래퍼다. 힙합 서바이벌 TV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 7’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유튜브 구독자 수는 15만명이다. 그는 “선생님이 랩을 한다고 하니 신기하게 보는 분들이 많아 주목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jobsN이 이현지씨를 만나 선생님 래퍼가 된 사연을 들었다.

대학교 힙합 랩 동아리 회장 거쳐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이씨는 어릴 적부터 선생님이 꿈이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게 좋았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힙합 음악을 많이 들었다. 그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적절한 비유로 재치있게 말하는 랩이 좋았다”고 했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 경인교대 11학번으로 입학한 후 힙합 동아리에 가입했다. 활동명은 보름달을 좋아해 ‘달지’라고 지었다.


-대학생 때부터 래퍼 생활을 한 건가.


“래퍼라고 하기는 거창하고 랩이 좋아서 동아리 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동아리 매니저를 하려고 했는데 그런 활동을 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았다. 사람이 없으니 나도 랩을 하기 시작했고 얼떨결에 동아리 회장까지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이후에도 계속 랩을 했나.


“2015년에 안산화정초등학교로 처음 부임했다. 지금 4년차다. 두 번째 해부터 6학년 담임을 맡았다. 부임 초기 2년간은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 랩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지금도 아이들을 사랑해줄 시간을 쪼개 랩을 하지는 않는다.”


-다시 랩을 하게 된 계기는.


“내가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안 지인이 작년 ‘트래쉬 박스’라는 음악 모임을 소개해주더라. 거기서 음악이라는 취미를 다시 시작했다. 활동을 하다 보니 랩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언해피’라는 팀을 꾸렸다. 나까지 총 4명인데 날씨가 좋은 토요일 오후 8~10시 서울 홍대 놀이터에서 버스킹을 한다. 버스킹 공연을 준비하며 따로 연습할 장소가 없었다. 방과 후 교실에서 혼자 랩하는 영상을 찍으며 연습했다. 그 영상들을 저장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유튜브에 비공개로 올렸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 중 조회수가 255만을 넘긴 것도 있다.


“매 학기 3월 아이들과 자기소개를 하며 ‘선생님 취미는 랩이야’라고 소개했다. 아이들이 많이 궁금해하더라. 그래서 유튜브에 비공개로 올렸던 영상 중 하나를 공개로 바꿨다. 아무 홍보도 안 했는데 구독자가 500명이 되더라. 아이들의 요청으로 힙합 가수 우원재의 ‘시차’를 커버해(기존 곡을 따라 부르는 것) 유튜브에 올렸다. 그게 여기저기 퍼지면서 조회수가 100만이 넘었다. 랩 오디션 프로그램인 ‘고딩래퍼2’에 나온 ‘붕붕’도 커버해 유튜브에 올렸더니 25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출처: 이현지씨 제공, 달지 인스타그램 캡처
래퍼 달지 이현지 선생님. 오른쪽은 한강공원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는 모습.

선생님이라는 편견과 랩이라는 편견


그때부터 이현지씨는 랩하는 선생님이라며 주목을 받았다.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 7’에 게스트로 출연했고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유명세는 혹독했다.


-어떤 일들이 있었나.


“‘선생이면 수업이나 준비하지 웬 랩이냐’는 악플이 많았다.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성적인 농담 등 공격적이고 지저분한 것들도 있었다. 한번은 중학교 선생님이라는 분이 ‘교육현장과 아이들을 이용해 유명해지고 돈을 벌려고 한다. 징계하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렸더라.”


-악플에 대처한 방법은.


“난 괜찮은데 아이들이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고 충격을 받을까 걱정됐다. 그래서 항상 영상을 올릴 때 ‘투잡 아니에요. 취미예요’라는 글과 ‘아이들에게 따뜻한 댓글 문화를 보여주시면 감사드리겠다’는 글을 같이 올린다. 내가 걱정한 것과 달리 아이들은 의젓하게 대처한다. 무례한 댓글이 달리면 ‘우리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삭제해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하더라. 내 유튜브가 바람직한 댓글 문화에 대한 생생한 교육 현장이 된 것 같아 다행이다.”


-선생님이 랩을 하는 것에 대해 반 아이들은 어떤 반응이냐.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선생님도 좋아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요즘 어린 아이들은 유튜브와 힙합을 선망한다. 선생님이 그것을 하고 있으니 좋아하는 것 같다. 다른 반 애들이 우리반 학생들에게 ‘너 달지 선생님 반이냐? 부럽다’고 말한다더라. 사실 난 엄한 편이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랩을 하는 목소리로 훈계하면 소리가 커서 쩌렁쩌렁 울린다.”


-유튜브로 인한 수익이 있나.


“원칙적으로 교사도 문화 예술 분야에서 콘텐츠를 생산해 수익을 내도 되는 것으로 안다. 동화책이나 시집을 내는 선생님들도 있지 않나. 하지만 난 음악으로 돈을 벌거나 음악에 많은 시간을 쏟고 싶은 생각이 없다.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사랑할 시간을 다른 곳에 쓰지 않는다. 유튜브에 걸린 몇 개의 광고 수익금은 전부 음악 저작권자나 자작곡 만드는 데 도와준 사람들에게 간다.”

출처: 이현지씨 제공
이현지 선생님이 반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랩에 담아


그는 지난 9월 경기도교육청과 ‘다시 만날 때’라는 자작곡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경기도교육청 홍보 영상이다. 이씨는 2분 57초짜리 이 곡에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


-홍보 영상을 찍게 된 계기는.


“지난 7월쯤 경기도교육청이 함께 홍보 영상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랩으로 만들어달라는 주문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제안을 수락했다. 사실 그동안 교사로서 랩을 하는 것을 윗선에서 좋지 않게 볼까 걱정했었다. 이 제안을 받고 내 활동을 교육청도 지지해준다고 느꼈다. 반 아이들 목소리를 담은 노래를 만드는 게 꿈이었는데 교육청 덕분에 이 꿈을 빠르게 이뤘다.”


-가사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더라.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하다 신규 발령 났던 해를 떠올리며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2절에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면서 혼자 많이 울었다. 예전 내가 학창시절에 한 선생님이 ‘딴 거 없고 네가 어떤 사람이 되든 간에 나중에 네가 날 찾아오면 항상 난 네 편이 돼 줄게’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때 참 감동했는데, 지금 내 마음이 그때 선생님 마음과 똑같다. ‘우리가 다시 만날 때 네 편이 되어줄게, 세상이 등을 돌려도 나만은 널 안아줄게’ 등 가사에 그런 진심을 담았다. 아이들도 무척 좋아하며 영상에 출연했다. 초상권 동의도 다 받았다.”

출처: 이현지씨 제공
교실 선생님 책상에 앉은 이현지씨. 그의 책상엔 학생들이 선생님을 놀리며 붙여놓은 '못생긴 선생님'이라는 글씨가 붙어있다.

-학부모나 동료 교사 중 이러한 활동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없나.


“다행히 모두 좋아하시고 지지해주신다. 특히 많은 선생님이 응원한다. 내 랩을 통해 ‘선생님이 이래선 안 돼, 저래선 안 돼'라는 식의 사회 편견이나 고정관념 등이 깨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편견을 깨고 싶다. 선생님과 랩이라는 2가지는 모두 편견이 가득한 분야다. 랩에 반드시 욕설이 섞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항상 교실에만 갇혀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다. 선생님이란 존재가 항상 재미없고 고지식한 게 아니다. 선생님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자기계발을 할 때 아이들에게 더 풍성한 경험과 삶을 들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래퍼,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나.


“내가 이렇게 유명해질 정도로 음악성이 있는 게 아니라 조금 부끄럽다. 하지만 앞으로도 선생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담아내고 싶다. 반 아이들 30명 전체에게 행복한 1년을 만들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엄청 특별한 선생님보다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기본적인 것을 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앞으로 쓰고 싶은 자작곡이 있나.


“올해 자작곡을 냈듯, 매년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1년에 하나씩 새로운 주제에 대해 랩을 써야 하는데 능력이 부족해 그게 가능할지 고민이다. (웃음)”


글 jobsN 김성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