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 하나 끌고 나홀로 대륙땅 밟은 한국 여고생, 15년 후..

조회수 2020. 10. 4. 16:13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혈혈단신 중국 유학 떠난 고등학생이 15년 후 한중 전문 MC가 된 사연
한국 상품 중국에 알리는 한중 MC 이향주씨
중국 고등학교, 북경대, 화웨이 거쳐 MC로 활동
“한국과 중국의 교량 역할 하고파”

중국은 TV홈쇼핑보다 온라인 쇼핑몰이 더 활발하다. 알리바바 그룹의 온라인 쇼핑몰 티몰과 타오바오몰, 징동닷컴에서는 하루에도 수조원의 물건이 거래된다. 이 인터넷 쇼핑몰을 휴대전화로 접속하면 첫 화면 상단에 한국의 TV홈쇼핑 같은 프로그램이 실시간 나온다. 상품 판매를 위한 비디오커머스다.


이향주(32)씨는 이러한 티몰, 징동닷컴 등에서 한국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쇼호스트이자 MC다. 화장품과 정관장, 미용기기 등을 소개하고 사용법을 알려준다. 이광수·김종국 등 한국 연예인과 중국인이 만나는 팬미팅도 진행한다. 한국·중국과 관련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 한중 MC인 셈이다. 한 달에 일 때문에 4~5번 중국에 간다는 그는 사실 한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하다. 그의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팔로워 수는 58만5373명이다.


지난 12월 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이씨는 “혈혈단신 중국에 가서 너무 많은 은인을 만났다”며 “이들에게 한국의 좋은 것을 소개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일한다. 한국과 중국의 교량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출처: jobsN
이향주씨.

캐리어 하나 끌고 중국에 건너간 고등학생


이씨에게 어릴 적 꿈이 뭐였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 한자(李香周·이향주)를 풀이하는 데부터 시작했다. “향기를 널리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결국 제가 이 일을 하는 것도 이름 덕분인가 봐요.”


이씨는 어릴 적부터 홈쇼핑 쇼호스트를 꿈꿨다. 말하는 것이 즐거웠고, 자기만 아는 좋은 물건을 남들에게 소개하는 것에 성취감을 느꼈다. 초등학생 때부터 교내 방송반에 들어갔다. 중학생이 되자 넓은 세상이 궁금해졌다. “학업 스트레스를 받던 고등학생 친언니를 보며 ‘난 항상 매일 즐겁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날 신문을 보니 중국의 가능성에 대한 특집기사나 나왔더라고요. 어마어마하게 큰 땅을 가진 중국에선 뭐라도 기회는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때부터 부모님께 중국에 유학 보내달라고 2년간 졸랐어요.”

출처: 이향주씨 인스타그램 캡처
이향주씨의 북경대 졸업사진.

이씨의 부모님은 둘째딸의 당돌한 제안에 어이가 없었다. 이씨는 “중국의 비전을 언급하며 ‘나에게 투자하라’고 끊임없이 부모님을 설득했다”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겨우 승낙을 받았다”고 했다. 이씨는 2002년 2월 중국 북경 수도사범대 부속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의 중국어 실력은 학원에서 배운 2달치가 전부였다. “기내용 캐리어 하나만 들고 겁도 없이 중국땅을 밟았죠. 친척도 없이 완전한 혈혈단신이었어요. 말이 안 통하니 처음에는 슈퍼마켓도 못 가고 너무 힘들었죠.”


겁이 없고 씩씩한 그의 성격은 도움이 됐다. 이씨는 “말을 배우고 친구를 사귀려고 점심때만 되면 학교 복도에서 아무에게나 ‘니하오’ 인사를 건넸죠. 대부분 무시하는데 한 친구가 인사를 받아주더라고요. 그 친구에게 내일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준비했고 그게 공부가 돼서 말이 빨리 늘었습니다. 나중엔 그 친구와 베프가 돼서 그의 집에 홈스테이를 했죠.”


그는 2005년 중국 북경대(베이징대) 신문방송학과(광고학 전공)에 진학했다. 유학생 최초 북경대 방송반 아나운서를 맡았고, 역시 유학생 최초 북경대 TV방송반 공로상을 받았다. 졸업할 때는 우수 유학생 장학금도 받았다.

출처: 웨이보 캡처
이향주씨 웨이보 화면. 메인 화면엔 가수 김종국씨와의 팬미팅 현장 사진을 걸었다. 7일 기준 팔로워가 58만5373명이다.

한국화웨이 들어갔다가 퇴사 후 한중MC로


이씨는 대학 졸업 후 중국에 남았다.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의 스카우트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대신 생활용품·화장품 등을 중국에 수출하는 자그마한 중소기업의 영업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이씨는 “중국 시장에 막 진출한 그 업체와 함께 일하며 기본부터 배우고 싶었다”며 “아무것도 없는 데서 월 매출 4억원까지 만들고 1년만에 퇴사했다”고 했다.


이씨는 2011년 일본 동경대 대학원 유학을 준비하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발생하자 계획을 접었다. 한국에 돌아와 기업 공채 시즌때까지 할일을 찾다가 화웨이에서 통·번역하는 일을 맡았다. 2년 계약직이었지만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1년도 안 돼 정규직이 됐다.

출처: 이향주씨 인스타그램 캡처
이씨가 지난 11월 11일 광군제 때 판매할 제품을 소개하는 모습(왼쪽). 오른쪽은 중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실시간으로 정관장을 판매하는 모습.

화웨이 창업주 런징페이가 한국에 오면 전담 수행 통역을 했다. 통·번역 업무를 넘어 프로젝트 매니저까지 맡고 2년만에 과장으로 승진했다. 결혼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15년 말 화웨이에 사표를 냈다. “점점 책상이 커졌지만 성취감도 없고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회사만을 위한 삶이 아니고 내 인생을 살고 싶었어요.”


퇴사 후인 2016년 이씨는 쇼호스트 학원 페이스북에서 ‘중국어가 가능한 쇼호스트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 그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공고를 보는 순간 잊고 있던 꿈이 떠오르더라고요. 오디션을 봤고 합격해 바로 녹화방송을 했습니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 국산 LED 마스크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이었죠. 녹화가 시작되자 조명 때문에 앞이 안보였지만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희열감과 성취감이 온 몸을 감싸더군요.”

출처: 이향주씨 제공
이향주씨 프로필 사진.

”한국 중소기업의 좋은 물건 중국에 소개하고 싶어”


이후 그는 한중 MC로 이름을 날렸다. 연예인 이광수와 김종국의 중국 팬미팅 사회를 맡았고, 중국 연예인 레오·루카스의 국내 팬 미팅 MC도 했다. 추자현, 박신혜, 박서준 등이 등장하는 브랜드 행사도 진행했다. 정관장, 려, 입생로랑, SNP, 잇츠스킨 등 다양한 상품을 중국어로 소개하는 일을 했다.


지난 9월에는 중국 후난TV 홈쇼핑에도 진출했고, 11월 11일 광군절때는 1시간 동안 정관장을 팔아 2000만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프리랜서라 매달 수입이 다르지만 많을 때는 대기업 부장급 월급을 번다. 이씨는 “카메라를 무서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친구에게 물건을 소개하는 식으로 다가간 게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출처: 이향주씨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9월 이향주씨가 한 화장품 관련 기념 행사에서 박신혜, 박서준, 양쯔(중국배우) 팬미팅을 진행하는 모습. 오른쪽은 인터넷 쇼핑몰 녹화 모습.

이씨에게 중국인을 대상으로 상품을 소개할 때 주의할 점을 물었다. 그는 “중국 소비자 사이에 한국 상품은 가성비가 좋다고 여겨지고, 화장품 등은 최고로 인정받는다”며 “방송할 때는 ‘뭘 그런거까지 알려주냐’고 할 정도로 기본 정보부터 상세히 설명해야된다”고 답했다. “중국엔 짝퉁이 정말 많잖아요. 그래서 이 물건이 정품인지, 어디서 생산했고 어떻게 들여와 배달할 것인지 등을 자세히 설명하면 좋아요. 상품에 대해 소비자가 믿게끔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보통 중국인 MC와 콤비를 이뤄 제가 상품 소개와 수입 절차를 말하고 중국인은 ‘직접 써보니 뭐가 좋더라’라고 설명을 하죠.”


이씨의 일은 ‘한중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 작년 ‘사드 보복’으로 중국에서 국내 기업이 찬밥 신세가 됐을 때 이씨도 일감이 확 줄었다. 이씨는 “당시 일주일에 2~3건이던 일이 다 취소되고 한 달에 1건 정도만 일했다”며 “지금은 그런 관계가 작년보다 많이 개선된 것 같다”고 했다.

출처: 이향주씨 제공
지난 11월 열린 제2회 한중국제영화제에서 레드카펫 행사 진행을 맡은 이향주씨 모습. 오른쪽은 징동닷컴에서 진행한 정관장 홈쇼핑에서 배우 추자현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이씨는 조만간 알리바바 타오바오몰에 자신의 이름을 단 오픈마켓을 열 예정이다. 이제껏 기업들과 계약을 맺고 한국 상품을 중국 소비자에게 안내하는 역할이었다면, 앞으로는 직접 이씨가 질좋은 한국 상품을 선택해 중국 소비자에게 안내하는 것이다. 그는 “돈을 벌겠다는 목적보다는 한국의 좋은 것, 특히 우리 중소기업의 좋은 상품을 중국에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혼자 중국에 와서 고생했을 때 절 도와준 친구들을 잊지 못해요.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상품을 안내하고 그들을 예쁘게 꾸며주고 싶어요. 이런 내 활동이 한중관계에 도움이 됐으면 더할나위 없겠네요.“


글 jobsN 김성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