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야근에 찌들고 카드값에 허덕이던 영업사원이었습니다

조회수 2020. 10. 4. 16: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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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야근하는 삶에 지친 영업직 사원이 회사 뛰어나와 벌인 일
컵아티스트 김수민 작가
영업직 사원에서 프리랜서로
“좋아하는 일 할 수 있어 행복”

내용물을 다 마시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종이컵. 그러나 이 사람을 만나면 종이컵의 운명이 달라진다. 어떤 컵은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또 다른 컵은 직장상사에게 꾸중을 듣고 있는 우리 모습으로 바꾸는 주인공은 컵아티스트 김수민(37)작가다.


그는 2012년부터 종이컵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쉽게 구겨지고 버려지는 종이컵을 보고 직장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순식간에 사라진 월급을 아쉬워하는 사람, 출근길 지옥철에 갇힌 사람 등 일상을 담은 작품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이뿐 아니라 커피 프랜차이즈 로고를 이용해 다양한 패러디 작품도 그린다. 영화 채널 chCGV, 영화 잡지 맥스무비 등과 협업도 했다. 6년째 컵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지만 한때는 야근과 카드값에 치이는 직장인이었다. 그런 그가 직장을 나와 작가로 전향한 사연을 들었다.

출처: jobsN
김수민 작가

진짜 내 모습 찾기 위해 퇴사 결심


김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는 단순히 취미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한 대기업 국내영업팀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그만뒀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원티드(wanted)’라는 영화가 있어요. 영화 속 주인공은 킬러가 되기 전 자신의 정체를 모른 채 삶을 살아갑니다. 그 모습이 마치 나 같았습니다. 아직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걸 찾기 위해선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입사한 지 2년만인 2009년에 퇴사했습니다."


아무 계획이 없었다. 막연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퇴직금을 털어 그림학원에 등록하고 그림 도구를 샀다. 1년 반 동안 그림만 배웠다. 2011년 초 수료 후 조그만 작업실을 얻었다. 그림책을 내려고 초안을 들고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할 일이 없어 작업실 책상에 앉아 돌멩이·상자·도시락통·종이컵 등 눈에 보이는 사물에 그림을 그렸다.

출처: the koo 유튜브 캡처, 김수민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왼쪽부터)공식 1호 작품 'healthy'. 종이컵 재질에 맞는 초록색 펜을 찾고 난 후 처음 작업한 작품이다. 김작가는 펜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눈에 보이는 화방은 무조건 들어가 초록색 펜을 사서 써봤다고 한다. 김작가 손을 거쳐 다양한 작품으로 재탄생 하는 세이렌.

세이렌 이용해 그림 그리기 시작


점점 종이컵이라는 새로운 캔버스에 매력을 느꼈다. 종이컵 성질을 일러스트에 적용했다. 예를 들면 컵을 구겨 공격받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또 원기둥이기 때문에 그림을 360도로 채워 넣을 수 있다. 그러다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로고, 세이렌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생겼다.


"그때 책상 위에 가장 많이 쌓여있는 종이컵이었어요. 또 아무것도 없는 바탕에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기준 이미지가 있고 그 주변을 꾸미는 것이 더 수월했어요. 세이렌이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기도 했습니다. 웃고 있는데 '정말 웃고 싶어서 웃는 걸까' '속으로는 욕하고 있을지도 몰라' 같은 생각이 들었죠. 이런 걸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탄생한 작품은 'healthy'였다. 세이렌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후 하나둘 종이컵을 그림으로 채울 때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신선하다, 재밌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영상을 찍으면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없는 부분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케이크 돌림판을 샀다. 작품을 그 위에 올려놓고 돌려가면서 영상을 촬영해 공유했다. 과정이 궁금하다는 사람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 찍어 편집까지 해서 올리기도 했다.

출처: jobsN, 김수민 작가 인스타그램
(왼쪽부터) 김수민 작가가 인터뷰에 직접 가져온 작품들.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후 작업 한 퀸·미야자키 하야오의 토토로를 패러디한 작품·김수민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포커페이스. chCGV 무비버스터즈와 협업한 '배트맨 대 슈퍼맨'과 'Joker' 맥스무비 매거진과 협업한 Harley Quinn.

첫 전시부터 책 발간까지


자신을 찾아오는 SNS 독자들과 소통하고 지내다 2013년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 김작가의 작품과 이야기가 인터넷 매체에 실린 것이다. 종이컵 일러스트를 시작한 지 딱 1년째였다. 마침 목표했던 개인작품 100개를 채우기도 했다. 그해 5월 이를 기념할 겸 개인전시를 열었다. 2015년에는 일본, 대만, 홍콩, 유럽 등 외국 인터넷 매체에서도 그의 작품을 소개했다. 홍콩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모이는 그룹전에 유일한 한국인 작가로 참여했다.


2016년 한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도 시작했다. 일명 컵툰(cuptoon)이었다. 컵 여러 개를 이용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직장생활은 물론 일상에서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해 말 연재 중이던 서비스가 사라졌지만 연재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공감 한 컵 하실래요?'라는 책을 출간했다.


김작가는 이 모든 게 열심히 작업한 것에 대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림 작가라면 일단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남들보다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요. 그러나 어떤 내용을 그리는지, 어떤 방법으로 보여줄지에 집중했죠. 부족한 부분을 채울만한 나만의 방식을 찾았고 못하는 만큼 열심히 했어요."

출처: 김수민 작가 인스타그램
우리들 삶을 담아낸 작품들. 직장인들의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좋아하는 일 하는 게 큰 장점


'왜 그림 내용이 다 부정적이에요?' 김수민 작가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라고 한다. 실제 종이컵 속 사람들은 현실에 눌려 구겨져 있거나 금방 사라진 월급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내가 잘 알고, 잘 그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을 많이 해요. 결국 그 고민의 끝은 우리 일상입니다. 저는 응어리로 남아있는 과거 경험, 스트레스를 그림으로 나타내요. 또 그 부분을 많은 분들이 가장 공감하시기도 하죠."


일상을 담아낸 작품도 좋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건 '포커페이스'라고 한다. 트럼프 카드의 퀸이 카드를 쥐고 있고 그 카드 너머로 상대의 얼굴이 보인다. 종이컵을 잘라내 입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처럼 종이컵 하나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찢기도 하고 구멍을 뚫어 색다른 연출을 하기도한다.


6년째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프리랜서인 만큼 수입은 일정하지 않다. 평균적으로 직장인 월급 정도는 벌지만 작업 의뢰가 없을 때는 한 푼도 못 버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한다. 일반 일러스트 작업도 하지만 당분간은 지금처럼 좋아하는 종이컵 작품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저보다 훨씬 즐겁고 윤택한 삶을 사는 작가들도 많아요. 너무 제 이야기만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데에서 오는 자부심과 만족도는 큽니다. 좋아하는 일을 좇으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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