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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화(54)씨는 결혼 후 10년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녀는 자녀 교육 문제로 유학 간 영국에서 뒤늦게 ‘정원 디자이너’라는 국내에서 생소한 직업에 눈 떴다. 임 디자이너는 우연히 영국 집 근처 정원을 보고 ‘나도 이런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 수풀 림(林), 봄춘(春), 꽃화(花)라는 이름대로 살 운명이었나 싶었다. 대학에서도 법학을 전공해 정원 디자인 분야와는 관련 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마흔 가까운 나이에 밤을 새면서 공부했다.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16년차 정원 디자이너 임춘화입니다. 아이디얼 가든 디자인회사 대표이며 정원 디자이너 교육 과정인 '가든 디자인 스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원 디자이너 협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정원 디자이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조경 디자이너와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2004년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정원 디자이너라는 직업 개념이 없었습니다. 조경 설계사나 조경 디자이너로 포함해 불렀죠. 정원 디자이너는 다양한 종류의 정원을 기획, 상세한 설계 도면을 만들고 시공까지 총괄합니다. 공간 및 식재 디자인(식물의 생태, 환경, 형태, 질감, 개화시기 등을 고려해 심미적이고 유지 가능하게 배치하는 일)과 그에 적합한 산책로·쉼터·가구·조형물을 배치합니다. 정원 디자이너는 정원을 하나의 작품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미적·예술적 면에 더 집중하죠.”      

◇ 전업주부에서 정원 디자이너로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셨어요. 정원 디자이너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 결혼하면서 10년을 전업주부로 살았어요. 공부 목적으로 영국을 간 건 아닙니다. 국내에서는 아이 교육에 어려움이 있어 영국으로 유학을 갔죠. 영국에서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나니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하던 중 우연히 왕립원예협회 정원을 찾았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그 넓은 정원에 앉아 있는데 마치 우리집 정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더군요. 그때 정원 디자인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영국은 정원 디자인 시장이 넓고, 교육도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커리큘럼을 찾아보니 그동안 제가 관심있는 모든 내용이 담겨 있더군요. 어린 시절 산골에서 약초 캐시는 부모님 밑에서 온갖 식물을 다보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덜컥 직업 전문 교육 커리큘럼을 수강했죠. 배우고 싶은 열망이 커 늦은 나이에도 밤새면서 공부했습니다. 2004년에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니 마침 영국 정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었습니다. 영국 정원에 대한 교육 요청이 들어와 대학 평생교육원 등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수요가 많아지면서 ‘가든 디자인 스쿨’ 교육 과정을 열었습니다. 국내 첫 정원 디자이너 교육 과정이었죠. 2005년 말, 연천 허브빌리지 식재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그곳에서 4년을 근무하며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식재 디자인 및 현장 시공에 대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연천 허브빌리지를 담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원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정원이란 건 어떤건가요?

“통상적으로 말하는 영국 정원은 초화(草花) 정원을 일컫습니다. 영국은 개인 집 정원도 섬세하게 꾸미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국 정원은 보는 순간 ‘꽃이 정말 많다’는 말이 나올만큼 초화와 꽃이 아름다운 관목을 많이 사용해요. 꽃의 비율이 많아서 사계절 변화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죠.”

-정원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은 무엇인가요?  

“현재 국내에 공인 자격증은 없습니다. 주로 조경학과·원예학과같은 관련 대학을 졸업한 후 정원 디자인을 시작합니다. 타 전공자들을 위한 정원 디자이너 직업 교육 과정은 많지 않지만, 관련 학부를 반드시 졸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관련 학과를 전공하지 않은 채 영국으로 가 정원 디자이너 전문 교육을 받았습니다.”

-국내 정원 디자인 분야는 어떤 위치인가요?

“과거에 비해 현재 국내 정원 디자인 산업은 크게 성장했습니다. 정원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죠. 2004년에 귀국해 정원 디자인 교육을 먼저 시작한 것도 수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증가한만큼 국내 정원 디자인 산업도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정원 디자이너 자격 제도가 마련되어있지 않다보니 고객이 정원 의뢰를 할 때 신중하게 전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정원 디자인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많아지면서 정원 디자이너 수요와 필요성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체계적인 교육이 마련된다면 영국 등 정원 디자인 선진국 못지 않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방문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원 만들고파

-정원 디자인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먼저 개인 고객이나 업체로부터 정원 의뢰가 들어오면 요구사항을 수렴해 어떤 정원을 만들지 기획합니다. 그리고 도면으로 옮겨 설계도를 그리면서 공간 활용, 식재 디자인, 정원 조형물·장식품 배치를 고민하죠. 특히 식재 디자인의 경우, 매번 다른 컨셉에 적합한 식물을 골라야하니 식물에 대한 지식이 정말 많이 필요합니다. 식물 사전에 등록된 식물뿐 아니라 새롭게 발견되는 식물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야하죠. 설계도가 완성되면 시공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필요한 식재·자재가 준비되면 현장 시공에 들어가는데 100평은 기준 1~2주 정도 걸립니다. 아파트 단지나 리조트 단지 등 업체 의뢰는 규모가 커 개인 정원보다 더 오래 걸립니다.”

-작업 시 가장 염두에 두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식재 디자인입니다. 개인 정원이든 공공 정원이든 방문객이 사계절 내내 지루하지 않은 정원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죠. 따라서 계절마다 다른 꽃과 나무가 펴 같은 정원임에도 다른 느낌을 주려고 합니다. 계절마다 식재를 다시 심을 수 없으니 첫 시공때 피는 주기에 따라 식재 배치를 잘해야합니다. 그래서 직접 현장에 나가 설계도대로 잘 구현되고 있는지 직접 감독하고 참여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많은 정원을 담당했지만 매번 완성된 정원을 선보일 때마다 뿌듯하죠. 방문객이 행복해하면 더 기억에 남습니다. 2018년에 포천에 위치한 요양원의 정원 디자인과 시공을 담당했는데 평수가 넓어 꽤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완성된 정원을 본 환자와 가족들이 정말 좋아해주셔서 기뻤죠. 한번은 강화도에 위치한 전원 주택의 개인 정원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은퇴한 목사 부부가 귀농하면서 ‘힘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피난처가 될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좋은 취지라고 생각해 무료로 설계해줬습니다. 개인 정원인데 꽃이 피는 계절이면 한 달에 200명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고객과 제 의도가 잘 전해진 것 같아 뿌듯합니다.”

-정원 디자이너의 수입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조경 회사 등에서 일하는 인 하우스 정원 디자이너는 회사원처럼 연봉을 받습니다. 프리랜서 정원 디자이너는 개인 고객이나 업체의 예산 내에서 자재 및 시공 비용과 더불어 금액을 조정합니다. 경력이 쌓인 뒤에 프리랜서 정원 디자이너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죠."

-정원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팁을 주세요.

“‘가든 디자인 스쿨’ 교육생들에게도 늘 말하지만, 정원 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큰 유망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도전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정원 디자이너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을 잘 쌓아야합니다. 특히 정원 디자인의 중요 요소인 식물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요?

“1세대 정원 디자이너로서 정원 디자이너들의 권리와 요구사항을 수렴할 수 있는 협회를 활성화해야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반 사람들이 직접 수준 높은 정원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완성된 아름다운 정원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만드는 과정에 얻는 기쁨은 비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노하우를 담은 정원 디자인 책들을 계속 출판하고 있습니다. 또 누구든 찾아와 쉴 수 있는 개인 오픈형 정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글 jobsN 박한솔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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