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3천 벌었지만, 세상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21. 16: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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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런업(LEARNUP)' 김찬준 인터뷰
유튜버 ‘런업(LEARNUP)’ 김찬준(42)
학원 영어 강사로 승승장구하다 공황장애 앓아
수입 10분의 1로 줄었지만 “지금이 더 행복해요”

‘대한민국 교육 1번지’ 대치동 강사였다. 경기도에서 학원을 운영하면서 서울 강남 대형 학원에서도 학생을 가르쳤다. 고3 수험생 대표 교재 ‘EBS 수능특강’ 집필에도 참여했다. 매일 스타 강사를 꿈꾸며 일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그의 통장에는 매달 3000만원에 가까운 돈이 꽂혔다.


수입은 10배 늘었지만, 욕심은 끝이 없었다. 목동에서는 강남이 보였고, 강남 입성 후엔 대치동이 보였다. 정상을 향해 쉼 없이 달리던 그에게 돌연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강단에 서기만 하면 눈앞이 하얘졌다. 결국 학원가를 떠난 그는 2년 뒤 구독자 10만명을 보유한 유튜버로 변신했다. 김찬준(42)씨의 사연이 궁금했다.

출처: /jobsN
'런업' 김찬준(42)씨.

-간단히 소개를 해주세요.


“유튜브에서 ‘런업’이라는 채널을 운영합니다. 업(業)을 배우자(learn)는 뜻이에요. 유튜브를 하기 전에는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 강사였습니다.”


-무슨 영상을 올립니까.


“작년까지는 브이로그를 주로 올렸어요. 조회 수나 구독자보다 영상을 잘 찍는 게 목표였습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어요. 정보 전달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힘들거든요. 영어를 배울 때 문법을 배우듯, 영상에도 문법이 있다고 봐요. 유창한 영상 언어로 시청자와 소통하고 공감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2020년에는 패션 콘텐츠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원래 강사가 꿈이었나요.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어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미국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했어요. 서울 목동에 살았는데, 귀국 후 집 근처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2008년쯤이었는데, 학원가에서 스타 강사가 막 나오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옆에서 보니 강사는 노동에 들이는 시간 대비 수입이 많아 보였어요. 미국에서 학교에 다녔으니 별다른 노력 없이 영어도 가르칠 수 있었고요. 쉽게 말하면 그냥 돈 벌려고 시작했죠.”


-이력이 화려했다고요.


“목동 학원에서 시작했어요. 교육열이 높은 동네라 학원이 많았거든요. 실력이 변변찮았지만, 그래도 나름 잘했던 것 같아요. 중등부였는데, 점점 중요한 수업을 많이 맡았어요. 국제고 진학반이나 최상위권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죠. 기분이 좋았어요. 내 능력을 인정받았으니까요. 살면서 그런 일이 처음이었어요. 학교에서 공부 잘해서 칭찬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어요. 거기에 돈까지 벌었으니 행복했죠.”


-일이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이거 하면 먹고살겠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배고픈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돈에 미쳤는지 모르겠어요. 그 뒤로는 잘나갔죠. 학원가에선 중등부에서 일하다 고등학생을 가르치기 힘들어요. 웬만한 중학생은 학원에 다니지만, 고등학교는 인문계와 특성화 고등학교로 나뉘고 수강생도 적어요.


그때 마침 정부에서 사교육을 근절하겠다고 방과후학교 제도를 도입했어요.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등부 수업을 맡았어요. 그 이력으로 EBS와 연이 닿아 ‘수능특강’ 교재 집필에도 참여했고요. 일한 만큼 결과가 따라오니 신이 났어요. 돈도 많이 벌었죠. 대학 다닐 때는 부모님께 30만원씩 받아 쓰다가 수백만원의 돈이 매달 통장에 들어오잖아요. 또 그 숫자가 점점 커졌어요. 수입이 많아지니 기고만장해지더라고요. 사람을 수입으로 평가했어요. 30대 초반에 오픈카를 타고 다니면서 차가 막히면 ‘내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데’ 하면서 소리도 지르고요. 그때 대치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출처: jobsN
청담동 스튜디오에서 영상 작업하는 김찬준씨.

-대치동은 뭐가 다른가요.


“학원 강사의 꿈이 대치동에 입성하는 거예요. 전국 상위 1%가 대치동에 있거든요. 대치동에서 1타 강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치동은 다른 곳과 달라요. 강사 자체를 안 뽑거든요. 연예인이랑 똑같아요. 알음알음해서 데려가요. 누가 추천하면 원장이랑 식사 자리를 갖고 수업 제안을 받죠. 인맥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목동과 인천에서 일했으니 인맥도 없었어요. 왜 세상은 날 안 알아주나 화가 났어요. 이때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죠.”


-돈은 잘 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미치겠더라고요. 월 250만원으로 시작해서 한 달에 1500만원까지 벌었어요. 결혼도 안 했으니 부족하진 않았죠. 참 신기한 게, 한 달에 200만원 받다가 300만원 벌면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 1000만원 벌다가 1500만원으로 수입이 늘면 그저 그래요. 일상도 크게 안 달라지고요. 교육에 대한 철학이 있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돈 쓰는 걸로 풀었어요. 처음엔 아울렛에서 100만원짜리 명품 재킷을 샀어요. 나중에는 백화점에서 300만원짜리 신상을 사도 감흥이 없었어요. 차도 포르쉐니, 뭐니 다 타봤는데요. 그래도 스트레스가 안 풀렸습니다.


수입 구조도 불만이었어요. 학원 강사는 프리랜서입니다. 수강료를 학원과 일정 비율로 나눠 가졌어요. 그런데 학원에서 너무 많이 떼어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경기도 산본에 직접 학원을 차렸습니다. 어느 정도 학원이 안정되고 나니 월수입 3000만원을 찍었어요. 돈 문제는 이걸로 해결했죠.”


-그래도 뭐가 부족했나요.


“강남 1번지에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인터넷강의도 찍을 수 있으니까요. 그때 마침 메가스터디에서 강사 공채를 했어요. 당시에는 공개채용을 하는 학원이 없었어요. 합격해서 일주일에 3일은 산본으로, 나머지 3일은 강남으로 출근했어요. 그렇게 대치동에 입성해 꿈을 이룬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대치동은 작은 동네 학원을 인정해줬어요. 대형 학원을 깔보는 시선이 있더라고요. 비 오는 날 정장을 빼입고 이력서 수십장을 들고 학원가를 서성였어요. 우울했습니다. 비싼 차를 타고 명품 옷을 입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36살에 공황장애가 왔어요. 조금씩 우울증 증세가 심해졌어요. 우울증이 오면 밤에 잠이 안 오는데, 계속 부정적인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살다가 죽는구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면서요. 어느 날 수업을 하는데 갑자기 두통이 오고 심장이 엄청나게 빨리 뛰더라고요. 눈앞이 하얘지고 손발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학생들을 보내고 화장실에서 3시간 앉아 있었더니 조금 정신이 들었어요. ‘아, 이러다 진짜 죽겠구나’ 싶어 일을 모두 접었죠.”

출처: /jobsN

-아픈 기간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2016년이었는데, 유튜브가 한국에서 조금씩 알려질 때였어요.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유튜브 보는 것밖에 없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직접 채널을 운영할 생각은 없었죠. 사실 제가 ‘관종’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영상 매체에 대한 잠재력은 봤어요. 말과 음악이 함께 나오고, 그림도 넣을 수 있는 등 표현 방법이 다양하잖아요. 영상 매체에 매료되면서 성인 대상 교육 동영상 플랫폼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죠.”


-회사는 안 차리지 않았습니까.


“재무제표 보는 법이나 주식 같은 실무 교육을 하려 했어요. 스타트업 예비 창업자들이 만나는 모임에도 가봤죠. 사업제안서 써서 투자 유치도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투자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투자자에게 보여주려고 1000만원을 주고 강의 영상을 두 편 제작했어요. 그런데 영상이 너무 별로인 거예요. 개성이 없었죠. 그래서 직접 촬영과 편집을 해보자 결심했어요. 브이로그를 하면 배울 게 많을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구독자가 하나 둘 늘었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처음엔 전문 장비도 없어서 아이폰으로 촬영했어요.”


-유튜브 하면서 달라진 게 있나요.


“일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강사였을 때는 일이 재미가 없었어요. 그런데 유튜브는 편집하다 보면 3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더라고요.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의무적으로 하는 것도 아닌데 만족도가 높으니 치유 수단인 셈이죠. 물론 뭐든 일로 접하면 귀찮고 힘든 건 있어요. 그래도 행복도를 따지면 훨씬 올랐죠. 그렇게 2년 반 했더니 구독자가 10만명 모였습니다.”


-수입은 많이 줄었을 텐데요.


“강사 시절보다 10분의 1로 줄었습니다.”

출처: /jobsN

-다시 강사로 복귀하고 싶단 생각은 안 해봤습니까.


“대치동 학원가에 이력서를 돌렸잖습니까. 사실 한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공황장애 증세가 좀 나아진 뒤에 원장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못 하겠더라고요. 강단 앞에 서니 숨이 막히고 심장이 뛰었어요. 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지만, 몸이 거부하는 것 같아요.”


-강사 시절과 지금 가치관을 비교한다면요.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대학에 진학할 때 IMF 경제위기가 터졌어요. 그전까지는 잘 살았던 거죠. 누구나 장밋빛 미래를 꿈꿨고요. 그래서 낙천적이기도 했어요. 인생을 쉽게 생각했고, 뭘 해도 잘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살아 보니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더라고요. 인생의 무게도 절대 가볍지 않고요.


어렸을 때는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하면 ‘돈이나 벌어보고 하는 소리냐’라고 맞받아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말이 다 맞더라고요. 돈만 바라보면 나보다 많이 버는 사람이 계속 눈에 들어와요. 나는 점점 불행해지죠. 개인적으로 인간은 일을 하게 설계됐다고 보는데요, 자신이 하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예요. 올해부터는 패션 영상을 주로 올리려고 합니다. 브랜드를 론칭해 옷을 만들고 있어요. 사람들이 제가 만든 옷을 입은 걸 보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공감 폭이 넓어진다는 느낌이 신선했어요. 그래서 이 브랜드를 키워 보려고요. 쉽게 말하면 옷 만들어 팔겠다는 건데, 그렇게 단순한 생각으로 하는 건 아닙니다. 몸집이 커지면 스트레스도 함께 늘어난다는 걸 아니까요.


두 번째는 나답게 사는 겁니다. 마흔 살 정도 먹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어요. 저는 좋은 집에 살고 페라리를 타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몸을 던질 이유가 없어요. 행복하게 살려면 일과 가족 두 가지만 잡으면 된다고 봅니다. 일에서는 이미 행복을 찾았고, 최근 결혼해 가정을 꾸렸어요. 가족과 단란하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다른 건 필요 없어요.”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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