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시렁과 잔소리 사이에 그 어딘가에 있는
가족
홍콩은 물론 마카오도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찾기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식당이 아닌 이상 차만 팔아서는 그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서였을까요?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어 메인 도로에서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반(半) 테이크 아웃 카페가 보이더군요. 반 테이크 아웃이 뭐냐면요. 가게의 한쪽 입구를 바처럼 만들어 손님들이 주방을 바라보며 앉을 수 있는 구조를 말하죠. 얼굴을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으나 등은 여전히 후덥지근한 마카오 기후에 노출되는 모양새라 할까요?
여행지에서 늘 가지고 다니는 파란색 모나미 플러스 펜과 작은 수첩을 꺼내 바 위에 올려둡니다. 역시 더운 여름 아이스라테는 진리죠. 너무 더웠고, 오르막길을 올라오며 지쳤기 때문에 무언가를 쓸 기력도 안 남아있었지만 시원한 전면 에어컨에 잠깐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뜨고 다시 펜대를 굴리며 보다가 이 카페의 장점이 들어왔습니다. 보통의 카페는 안쪽에 앉아서 창 밖의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여기는 오픈 주방의 일하시는 사장님 내외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작은 가게지만 손님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어 두 분은 무척이나 바빠 보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들어와 주방을 휘젓고 다니는 교복 입은 중학생.
마치 저는 연극 무대를 보고 있는 중이고, 새로운 등장인물이 무대 위로 올라온 양 교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학교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부모님 가게에 들린 게 아닐까요? 역시 교복은 표정이 따뜻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무뚝뚝한 모습으로 이쪽저쪽 돌아다니기만 합니다.
엄마한테 뭔가 군시렁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빠로 보이는 사장님이 잔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역시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학생과의 대화는 어렵기만 해 보이네요.
그러다가 반전이 찾아옵니다.
주문이 들어오자 교복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능숙하게 기계를 다룹니다.
교복은 나름 착한 아들이었네요. 학교 끝나고 놀고 싶었겠지만 돌아와서 부모님 가게일을 돕는 아이였습니다. 역시 드라마도 끝까지 봐야 결말을 알 수 있듯이 사람도 그런가 봅니다. 괜한 선입견으로 오해했던 제가 머쓱해지던 순간입니다.
이렇게 완전체 가족이 경영하는 카페에서 멋진 오후를 보냈습니다.
저는 자영업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지 않아 이런 분위기를 잘 몰랐거든요. 제다가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는 그런 식당이나 카페를 갔었더라도 아마 모르고 지나쳤을 거예요. 여행지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관조하면서 또 하나 깨닫고 갑니다.
궁시렁과 잔소리 사이에서도 가족은 가족입니다.
나는 언제 가족과 밥 먹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