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 그랜저, 현대 그랜저 XG의 시대적 해석

조회수 2020. 1. 3. 17: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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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 XG는 독자 개발해 양산한 첫 중대형 세단이라는 점이 의미가 깊다

2001년 12월경 국내에 처음 출시된 4세대 렉서스 ES는 연간 1,000대 이상이 팔려나갔고, 서울 강남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었던 베스트 셀링 수입차였다. 또한 이듬해인 2002년부터 4년간 수입차 판매 1위를 자리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있어 ‘강남 쏘나타’라고도 불렸다. 

출처: 현대자동차

이런 수입차의 높은 판매량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자동차는 2001년부터 대형 고급 세단 에쿠스의 전용매장을 강남을 중심으로 새롭게 만들었다. 고객의 높아진 눈에 맞추려는 마케팅의 결과였지만, 그곳에는 에쿠스만 전시되지는 않았고, 소형차 베르나에서 중대형급인 그랜저 XG 등 다양한 세그먼트의 다른 모델도 판매하고 있었다. 중장년으로 보이는 다수의 고객은 딜러와 에쿠스에 관한 상담을 했지만, 조금 더 젊은 사람들은 감각적이고 렉서스 ES와 크기가 비슷한 그랜저 XG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전 세대 모델들과 다른 스타일이 돋보인, 새로운 감각의 그랜저였기 때문이었다. 

출처: 현대자동차

이전 1, 2세대 그랜저는 탄생부터 럭셔리 대형 승용차 성격이 강한 모델이었다. 하지만 기아 엔터프라이즈와 현대 에쿠스가 등장하면서, 3세대 그랜저인 그랜저 XG는 오너 드리븐 즉 운전을 즐기면서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전문직종의 사람들을 위한 고급 중대형 세단의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또한, 그랜저 XG는 현대가 외환 위기의 어두운 현실에서도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비전을 담은 모델이기도 했다.

당시는 IMF 구제금융 신청에 즈음해 하룻밤 사이에 도산하는 기업이 쏟아져 나오던 어둠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국내 상황과 더불어,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는 생존 문제가 부각되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1990년 후반에 연간 400만 대 이상 생산해야 살아남는다는 논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그레이트 식스(Great Six) 즉 GM, 포드, 토요타, 폭스바겐, 크라이슬러, 르노 닛산의 생산 규모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론이었다. 

단순히 숫자에 초점을 맞춰, 이만한 물량을 대량 생산한다면 어떤 자동차 기업이라도 빅 스리, 그레이트 식스 등에 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무조건 덩치만 키우는 방식으로 사업 확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을 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즉 단순히 가격을 올려 수익성을 높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비용으로 고품질 차를 대량 생산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한 핵심 전략으로 돋보인 것은 기업 간 인수합병과 플랫폼 공유였다.

글로벌 5위 안에 들겠다는 의지를 가진 현대자동차는 보란 듯이 1990년 후반 기아자동차를 인수했다. 외환 위기에 즈음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를 감당 못하던 기아차를 흡수하면서, 연구 개발과 구매 부문 통합, 부품 공용화 등으로 현대기아차는 2011년 660만 대를 판매하는 명실공히 글로벌 메이커가 되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노력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플랫폼 요즘에는 아키텍처라고 표현하는 하부 뼈대 즉 플랫폼의 공용화를 위해 온 힘을 쏟아부으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 결과 플랫폼 하나로 EF 소나타를 비롯해 싼타페와 트라제, 그랜저 XG를 생산하여 생산 비용을 낮추고 규모의 경제를 이뤄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결실을 맺었다.

물론 이와 같은 생존 노력은 비단 현대자동차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미국 제너럴 모터스는 하나의 아키텍처를 개발하면 캐딜락, 뷰익, 폰티액, 쉐보레 등 자체 브랜드와 전 세계에 퍼져있는 생산 공장을 가진 산하 브랜드의 모델에도 이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20세기 말부터 생산 비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작된 글로벌 산업의 공통된 생산 방식이었다. 

출처: 현대자동차

이런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생산된 그랜저 XG는 여러 특별한 점이 있었다. 이전 세대 그랜저들은 미쓰비시와 협력해 개발된 것과 달리, 그랜저 XG는 독자 개발해 양산한 첫 중대형 세단이라는 점이 의미가 깊다. 또한, 오너 드리븐 개념으로 개발되어 뒷좌석 승객 중심 모델인 다이너스티와 에쿠스에 비해 스포티하면서도 안전성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바탕으로 판매되었다. 이러한 전략 덕분인지 아니면 두터운 충성 고객층 덕분인지, 그랜저 XG라는 이름의 모델이 생산된 7년 동안 약 30만 대 이상이 판매되어 베스트 셀링 모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높은 판매량과는 별개로, 그랜저 XG는 고질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 판매되고 있던 수입차들에 비해 고속주행 시 NVH(Noise, Vibration and Harshness) 즉 소음과 진동 그리고 마찰음이 심했다. 그 당시 한 매체에서 인터뷰한 현대자동차 관계자가 "한국차도 이제 세계 수준에 올랐지만, 창문을 만드는 기술과 염료를 칠하는 도장 기술은 아직 세계 수준과 격차가 있다”라고 밝힐 정도였다. 

창문과 페인트 도색의 기술의 문제라면 작은 문제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운전자에게는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창문이란 외부 소음을 막아 내부를 조용하게 만드는 방음 기술의 시작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아쉽게도 당시 그랜저 XG는 고속 주행 시 이런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포함한 다른 기계적 결함 등은 이후 세대를 거듭할수록 비약적 개선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최근 선보인 그랜저 IG 페이스리프트 버전은 다양한 편의 장치와 외향적 변화로 전 모델에 비해 색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우선 후측방 모니터 및 후진 가이드 램프 등 더 많아진 안전 사항과 더 강해진 출력으로 글로벌 시장 5위 안에 현대자동차가 진입할 수 있었던 기술의 혁신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다양한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도록 다양한 트림과 선택사항을 마련한 것은 국내 대표 중대형 세단으로 올라서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일명 '각 그랜저'로 시작한 그랜저의 역사는 약 34년이 되어가고 있다. 40대 중반 남녀노소라면 동네에 한 두대 보였던 그랜저가 동네 삼촌과 아저씨들의 로망이었다는 것도 기억할 것이다. 지금 다시 ‘성공’을 표현하는 삶의 아이콘으로 새로운 그랜저가 나왔다. 고급 세단을 소유한 것이 인생의 성공을 나타내지는 않겠지만, 역대 그랜저 중 가장 강력한 퍼포먼스와 안락함 그리고 자율주행에 가까운 기술을 가진 최첨단 기술의 총아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글 라라클래식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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