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 이맘 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조회수 2020. 1. 20. 0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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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안 궁금해하는 34년 전 자동차 이야기
그러나 막상 읽어보면 묘하게 빠져드는 옛날이야기


느닷없이 20년, 30년 전도 아닌 34년 전(1984년)의 이야기다. 당시 세계 경제는 석유값 하락과 저물가, 저금리 등 3저 현상으로 장밋빛 무드가 드리워져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만, 싱가포르, 브라질 등 개발도상국가들이 이 기류를 타고 신흥공업국(NICS)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소련 등 일부 공산권 국가가 불참한 가운데 미국 LA에서 제28회 올림픽이 열렸고, 폐막식에는 한국의 호돌이 마스코트가 등장해 다음 개최지인 서울을 홍보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어디를 가더라도 건국 이래 첫 대규모 행사인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준비로 부산스러웠다.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이 완공된 것도 84년의 일이다.


84년 서울에서는 지하철 2호선과 한강의 14번째 다리인 동작대교, 광주와 대구 구간을 잊는 올림픽고속도로(173.3km)가 개통되었다. 올림픽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국내 고속도로 전체 길이는 1,420.9km로 늘었다.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을 살펴보면 현대와 대우, 기아 등 국내 자동차업체의 전체 생산대수는 26만5,000여 대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수출량은 5만2,000여 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84년 말 자동차 등록대수가 94만8,000대를 넘어서면서 국내 승용차 100만 대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현대는 포니2와 스텔라, 그라나다 V6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84년 포니2를 캐나다에 수출하기 시작한 현대는 수출사업본부를 따로 만들어 미국 시장 상륙을 위한 사전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11월 말 국내 단일차종으로는 처음으로 50만 대 생산기록을 세운 포니2는 캐나다를 비롯해 영국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세계 65개국에 수출되면서 국산 대표 수출차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당시 포니2의 값은 365만~511만원이고 중형차인 스텔라는 552만~868만원이었다(천원 단위 생략). 현대가 조립 생산하던 그라나다 V6는 1,992만원으로 국내 승용차 중 가장 비쌌다.


83년 새한에서 이름을 바꾼 대우자동차는 맵시나와 4종류의 로얄 시리즈를 생산하고 있었다. 로얄 시리즈는 보급형 XQ(701만원)부터 최고급 살롱(AT 1,220만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델을 갖춰 당시 중산층에게 가장 폭넓은 인기를 얻는 중형차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81년 내려진 2·28 조치로 1~5톤 트럭과 미니버스만 생산하던 기아는 봉고 코치의 인기에 힘입어 승용차에서 손을 뗀 데 대한 타격을 이겨내고 있었다. 84년형 봉고 코치는 3종류에 값은 652만4,000~721만원이었다. 특히 9인승 봉고 코치는 2종 보통면허로도 운전할 수 있어 인기가 좋았다.

1984년에 나온 국산 신차들

포니2 픽업


현대 포니2 픽업 (84년 초) 82년 포니2에 이어 84년 초 포니2 픽업이 더해졌다. 9월에는 화물칸에 톱을 씌운 픽업 컨버터블 톱도 나왔다.


현대 스텔라 프리마 업그레이드 (84년 3월) & 이코노미 (84년 8월) 83년 중반 판매를 시작해 1년간 3만 대(수출 7,000대 포함)가 생산된 스텔라가 3월 업그레이드되었다. 프라마는 크롬 도금 그릴 등 외관의 크롬 장식과 3점식 도어 암레스트와 천으로 마감한 천장 등을 더했다. 와이어스포크 휠과 소프트터치식 AM/FM 카세트, 3웨이 스피커 등을 더한 골든팩도 옵션으로 내놓았고, 1.4 엔진을 얹은 프리마 이코노미도 8월에 선보였다.

포니2 CX


현대 포니2 CX (84년 5월) 현대는 82년 초 선보인 포니2의 수출형 모델인 CX를 내수용으로 내놓았다. 당시 캐나다 법규인 2.5마일 범퍼를 달아 앞뒤로 범퍼가 툭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85년형 대우 로얄 시리즈 (84년 하반기) 85년형 로얄 시리즈는 와이드 범퍼를 채용해 안전성을 높이고 겉모습을 다듬어 공기저항계수(Cd)를 0.477에서 0.362로 끌어내렸다. 차체의 재질도 아연도금 표면처리 강판으로 바꾸어 부식방지에 힘썼다. 

80년대 나들이를 나선 어느 가족의 정겨운 모습


84년 9월, 국내에서는 어떤 일이?


밑밥이 정말 거창했다. 1984년 9월 대한민국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국내 최초로 자동차 전문매체가 탄생했고 그 결과물인 월간 <자동차생활> 9월호가 세상에 처음 나왔다. 지금은 자동차가 아주 일반적이고 매체들 또한 수없이 많지만 당시 상황에서 자동차 전문매체가 나온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84년 당시에는 국산차 총 등록대수가 100만 대가 안 되었고 자가용은 돈이 있는 사람들이나 타는 사치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모터라이제이션(마이카 시대)이 일어나기 전에 나온 자동차 잡지는 생소하기만 했다.

월간 자동차생활 창간호(1984년 9월호)


그러나 그 때는 태풍 전의 고요함이었다. 창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자동차 산업은 일취월장하면서 순식간에 국가 산업의 대들보가 되었다. 기아가 곧 승용차 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후 기아와 대우가 각각 포드와 GM 차를 OEM으로 수출하면서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이 순식간에 늘어나기 직전이었다. 현대 역시 전륜구동 소형차(포니 엑셀)를 개발하며 미국 진출을 저울질하고 있던 시기였다. 1984년에는 별다른 큰일이 없었으나 국내 자동차 산업은 중요한 변혁기를 앞두고 있었다. 소비 시장 역시 80년대 중반 이후 일어난 마이카 붐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별 부록

자동차생활 84년 9월호(창간호)

창간호 목차
오토캠핑은 80년대에도 유행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물론 수트도 굉장히 굉장히 중요하고... / 시대를 풍미했던 대우 컬러TV
현대 포니2와 스텔라
대우 맵시나와 로얄살롱
기아 봉고와 거화 코란도
인삼껌 좀 씹어봤다면 당신은 아재
80년대 자동차와 패션의 고품격 만남
모델의 위풍당당한 자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근데 자꾸 헤어스타일에 눈길이 가는 건 왜일까?
먹어는 봤나, 삼양 포장마차 즉석 우동... 먹는 분들도 파릇파릇하네요
배창호 감독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찍은 후 인터뷰에 응한 안성기와 그의 따끈따끈한 새 애마 스텔라
84년 여름도 무척 더웠다
다양한 자동차 액세서리들. 저기 보이는 건 카폰이 아니라 카폰 모양의 시가라이타다
조주청 화백의 연재만화 '사발통 복덕방'. 살짝 '19금'스러운 내용이 은근 많았다
400만원대 포니2, 600만원대 스텔라, 그리고 100~200만원이면 살 수 있었던 중고 포니1와 브리사


※ 80년대 자동차생활 과월호는 아래의 E-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carlife.net/bbs/board.php?bo_table=cp_4_1_1&page=15


글 자동차생활 편집부 사진 자동생활

자동차생활 (CAR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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