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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교통이 바뀌던 그날, 다겐 H

조회수 2020. 9. 16. 17: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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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통행 방식의 차이가 만든 스웨덴의 교통 혼란과 극복 과정

1967년 9월 3일 새벽 5시. 스웨덴 전역의 모든 차가 멈췄다. 이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동차와 자전거 그리고 오토바이 등은 조심스럽게 도로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모든 차는 이날부터 좌측이 아니라 우측 통행을 시작했다. 이날이 바로 자동차 교통 역사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인 '우측통행으로 전환하는 날(Högertrafikomläggningen)'의 풍경이었다. 줄여서 '다겐 H(Dagen H)'라고도 부르는 이날을 영어권에서는 H 데이(H DAY)라고도 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다겐 H가 시행되기 전인 1950년대 초에 우측통행 제안이 스웨덴 국회에 제출되었을 때, 대부분의 스웨덴 국민들은 항의했다. 이로 인해 1955년에 국민 투표가 있었고 유권자 83%가 반대표를 던졌다. 그럼에도 스웨덴 정부는 노르웨이와 핀란드 그리고 덴마크 등 주변 국가처럼 오른쪽 도로를 달릴 수 있도록 여론과 의회를 설득했다. 

좌측통행과 우측통행 채택에 관한 여러 설

출처: Pixabay

기원전부터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왼쪽으로 걷거나 마차를 이동했다고 전해진다. 중세시대 기병들은 왼손으로 말의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 검과 창을 쉽게 휘두르기 위해 적군 좌측으로 달려 나갔다. 이런 사실로 인해 전쟁이 빈번하던 시대에 쉽게 무기를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좌측통행을 했다는 설이 생겨난 듯하다.

출처: Britannica

하지만 서부 개척 시대에 사정이 달라졌다. 서부 이주자가 사용한 큰 포장마차나 대형 화물 마차를 끄는 마부는 오른손으로 말의 고삐를 잡고 조종을 했으며 왼손으로 브레이크를 사용하기 위해 왼쪽에 앉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먼 거리의 오른쪽에서 상대방 차가 마주 오는 것보다 왼쪽으로 오는 것이 마부에게는 안정적인 주행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미국은 서부 개척 시대부터 우측통행이 일반화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 어떤 학자는 1756년 런던 브리지를 건설하면서부터 보수적으로 좌측통행을 고집하던 영국에 대한 반기로 우측통행을 선택한 나라도 있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와 미국의 인접 국가가 국경을 지나갈 때 통행방향이 같아야 이동이 쉽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같은 방향으로 교통 정책을 택했다는 설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스웨덴도 비슷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포함하여 스웨덴 국경에 근접한 이웃 국가들은 모두 오른쪽으로 운전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 안전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다겐 H 전의 스웨덴은 좌측통행이었고 운전석이 좌측에 있었다. 대부분의 차를 미국에서 수입해오는 실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주 오는 차의 운전자를 확인할 수 없는 즉 대면 통행을 할 수 없는 교통 구조였다. 그로 인해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다겐 H의 실행 과정

1963년 우측통행 제도가 의회에 겨우 통과되었다. 국민의 83%가 반대하는 우측통행 제도를 지속적인 캠페인을 통해 이해를 시킨 것이었다. 특히 스웨덴 정부는 노르웨이와 핀란드 등 국경에 접한 이웃 국가들이 우측통행을 하고 있다는 점과 스웨덴에서 대면 통행이 어려운 현실로 인해 교통사고가 빈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민을 설득했다. 그런 노력 끝에 1967년 9월 3일에 우측통행으로 대전환을 하게 된 것이었다.

출처: Wikiwand

스웨덴 정부는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통행 방향의 대규모 전환을 위한 비용도 지출해야만 했다. 신호등과 표지판을 바꾸고, 교차로를 재설계하고, 차선을 다시 칠하고, 버스 출입문을 반대편으로 다는 개조를 해야 했고, 버스 정류장 또한 이전해야 했다. 이러한 교통 수정은 대부분 다겐 H 직전에 완료되었다. 전국에 걸쳐 약 360,000개의 도로 표지판과 신호등 그리고 차선이 하루에 대부분 교체될 준비를 한 것이었다. 

출처: Wikimedia

스웨덴 정부는 대중이 이런 교통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대규모 홍보 캠페인을 시행했다. 그 중 하나가 전환 날짜와 방향을 표시하는 의미를 담은 H 형상을 크게 만들어 전달하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이었다. 이 로고는 우유 팩에서 속옷 등 여러 상품에 프린트해 빈번하게 노출되었다. 이런 H 로고 캠페인 말고도 스웨덴 정부는 인기 TV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다겐 H를 언급해 달라고 부탁했고 라디오, 신문 그리고 대형 스크린 광고로 국민에게 우측통행으로 변경되는 날짜와 그에 대한 정보를 4년여 동안 계속해서 알렸다. 

출처: DriveMag

마지막으로 대규모 통행 전환을 앞둔 몇 시간 동안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군중들은 역사적 도로 풍경을 보기 위해 도로 주변에 모였고 불꽃놀이와 가수들의 노래가 골목 사이로 퍼져나갔다. 대부분의 자동차는 도로 주변에 주차되어 새벽 5시가 될 때 일제히 경적을 울려댔다. 1967년 9월 3일 새벽 5시 검은 플라스틱과 천 그리고 스티커로 가려져 있던 표지판과 신호등 등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렇게 그날은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었다.

출처: Sweden.se

스웨덴에서 300여 년간 이어진 좌측통행 전통이 바뀌는 데는 단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다겐 H 다음날인 1967년 9월 4일, 스웨덴에서 매주 월요일에 130∼196건이 발행하던 교통사고가 125건으로 줄었다. 심지어 사망사고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것은 스웨덴 정부의 지속적인 캠페인으로 이뤄낸 쾌거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교통 정책 변화가 주는 파장은?

최근 글로벌 시대에 맞게 대륙과 연결되지 않는 곳에서도 차량 통행 방향이 바뀐 사례가 있다. 바로 사모아 제도의 일이다. 사면이 바다로 이뤄져 인접 국가와의 국경 통행이 전혀 없는 이 나라는 그동안 미국령 동사모아와 마찬가지로 우측차선 주행제도를 유지해 왔다. 좌측통행으로 변경하는 문제로 수개월의 논쟁이 이어진 끝에, 2009년 9월 7일 오전 6시를 기점으로 사모아 제도의 모든 도로가 좌측통행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사모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호주, 뉴질랜드 국가가 좌측통행을 하고 있고 사모아 출신들이 그 나라에 많이 이민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대륙간 이동도 중요하지만, 협력국 상황도 무시 못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교통 정책을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수립되고 시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국 140개 지자체 일반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50km로, 이면도로는 시속 30km로 하는 안전속도 5030 정책과 9월 1일부터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의 명칭이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로 바뀐 것이 좋은 예다. 

출처: 경기도청

여러 정보를 얻다 보니 간과한 점도 있겠지만 ‘시행 3개월 전에 승인된 정책인데 시행까지 캠페인 기간이 너무 짧지 않나?'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 칼럼에 소개한 다겐 H의 캠페인 기간은 약 4년이었다. 요즘 변경된 교통 정책 시행의 숙려 기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더 많은 국민이 알고 행동에 옮기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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