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엔지니어들 - 한스 메츠거 (2)

조회수 2021. 2. 15. 0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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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917 경주차에서 고성능 911의 정점까지

포르쉐 917, 유럽과 북미 경주를 제패하다

1970년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우승한 포르쉐 917 K

917은 설립 이후 줄곧 포르쉐 경영을 맡았던 페리 포르쉐(Ferry Porsche), 오랫동안 포르쉐의 기술 책임자였던 한스 토말라(Hans Tomala)를 밀어내고 새로 그 자리에 앉은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ëch)의 전폭적 지지로 탄생한 경주차였다. 르망 24시간을 비롯한 스포츠카 경주에 출전해 당대 모터스포츠의 강자로 군림하던 페라리를 압도하는 것이 917의 개발 목표였다.

규정과 성능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새 엔진은 당연히 메츠거의 설계를 바탕으로 했다. 그는 두 개의 수평 6기통 엔진을 연결한 개념의 공랭식 수평 12기통 4.5L 엔진을 만들었다. 밸브계는 기어로 구동하는 DOHC 방식이었고, 엔진 위에는 밸브계처럼 기어로 작동하는 대형 냉각 팬이 올라갔다. 이 엔진은 포르쉐가 만든 첫 12기통 엔진이었고, 당시까지 포르쉐 차에 올라간 엔진 중 가장 배기량이 컸다.

포르쉐 917 K의 엔진

엔진은 물론 섀시와 차체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으로 경량화해 만든 917은 최고출력이 520마력에 이르렀다.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차체까지 합세해 무서운 속도를 낸 917은 초반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꾸준한 개선 끝에 1970년과 1971년에는 르망과 세계 스포츠카 선수권(WSC)을 석권했다.

이어 대서양 건너 북미 대륙에서 치러진 캔암(CanAm) 시리즈 경주 출전을 위해 한층 더 강력한 성능을 내기 위해 터보차저 기술을 결합했다. 배기량도 더욱 커져, 1973년에는 배기량 5.4L의 엔진에 두 개의 터보차저를 결합해 무려 1,100마력의 최고출력을 얻었다. 이처럼 강력한 엔진 덕분에 1973년 시즌 캔암 시리즈도 포르쉐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경주차에서 양산차로, 다시 경주차로 이어진 기술

포르쉐 처음으로 터보 엔진을 얹은 승용 모델인 911 터보(930)

캔암 시리즈를 위해 개발한 917의 터보 엔진 경험은 양산차로, 다시 경주차로 이어졌다. 전자가 1974년에 첫선을 보인 930 911 터보였다. 시속 100km 정지 가속 5초대, 최고속도 시속 250km의 성능을 낸 930은 911 터보에 포르쉐의 최상급 시판 모델로서의 상징성을 뚜렷하게 부여했다. 터보 엔진을 승용차에 얹은 것은 1973년에 2002 터보를 내놓은 BMW가 좀 더 빨랐지만, 2002 터보와 달리 911 터보는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930의 엔진은 934, 935와 같은 911바탕의 GT 경주차는 물론 936, 956, 962 등 프로토타입 스포츠카 경주차들에도 올라갔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이들 경주차는 여러 내구 경주를 휩쓸었다. 특히 르망 24시간 경주에서는 1981년부터 1987년까지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지금까지 포르쉐가 르망 경주에서 거둔 19번의 우승 가운데 16번이 메츠거 엔진이 올라간 경주차에 의한 것이었다.

포뮬러 1 경주차에 쓰인 TAG V6 1.5L 터보 엔진과 함께 한 한스 메츠거

한편 메츠거는 회고를 통해 가장 애착이 가는 엔진으로 1980년대 포뮬러 원(F1) 맥라렌 팀에 공급한 V6 1.5L 터보를 꼽았다. 섀시 제작자인 맥라렌과 후원사인 TAG의 까다로운 요구에 맞춰 만든 이 엔진은 당대 최고의 F1 경주차용 엔진들보다 뛰어난 신뢰성이 돋보였다. 그 덕분에 1984년과 1985년에는 맥라렌이 컨스트럭터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고, 1984년에는 니키 라우다, 1985년과 1986년에는 알랭 프로스트에게 잇따라 드라이버 챔피언 컵을 안겨주었다.

메츠거를 스카우트하려는 업체들도 있었지만, 그는 1993년에 은퇴할 때까지 포르쉐를 떠나지 않았다. 은퇴한 뒤에도 포르쉐와 관련한 행사와 모터쇼 등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포르쉐 엔진에 45년 넘게 이어진 메츠거 설계

은퇴 이후에도 그의 유산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1998년에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911 GT1 경주차를 달리게 만든 것도 그의 엔진이었다. 962 그룹 C 경주차에 쓰인 수랭식 6기통을 개선하고 발전시킨 이 엔진은 당시 경쟁했던 차들에 올라간 것들만큼 뛰어난 성능을 내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그해 르망에서 911 GT1은 종합우승과 2위를 모두 차지했다. 성능, 효율과 어우러진 높은 신뢰성 덕분이었다.

메츠거 엔진이 올라간 마지막 모델인 911(997) GT3 RS 4.0

양산차의 메츠거 엔진은 911의 공랭식 엔진 시대가 끝나면서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996과 997세대로 접어든 뒤에도 GT2, GT3 등 고성능 모델들에는 911 GT1용 엔진을 개선하고 일반 도로 주행에 어울리도록 조율을 거듭해 가며 꾸준히 쓰였다. 메츠거 엔진이 올라간 마지막 양산차는 2011년에 나온 997 GT3 RS 4.0이었다. 911에 메츠거의 기본 엔진 설계와 철학이 45년 넘도록 이어진 셈이다.

2019년, 포르쉐는 그의 90번째 생일을 기념해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포르쉐 박물관에서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열기도 했다. 물론 2019년은 포르쉐에 르망 우승의 기쁨을 맛보게 한 917이 첫선을 보인지 50주년이 되는 해기도 했다. 포르쉐는 파티로 브랜드 역사의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만든 주역들에 경의를 표시한 셈이다. 그리고 2020년 6월 10일. 91번째 생일을 몇 달 앞두고 '모든 포르쉐 터보 엔진의 아버지' 메츠거는 영원히 눈을 감았다.

글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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