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페라리 디노의 유산

조회수 2021. 3. 19. 18: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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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디노의 세련되고 독특한 헤리티지

상징적이고 섹시하며 날렵한 느낌의 페라리 디노(Dino)는 온, 오프라인 어디에서 만나든 인상적인 이미지를 남긴다. 2018년 7월 4일, 데뷔 50주년 기념행사에 찾아가 마라넬로의 도로를 여러 대의 디노와 함께 달린 지인의 이야기는 그냥 동화 같았다. 디노는 페라리 최초의 대량생산 V6 엔진 모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그러나 옆 나라 일본에서는 가끔 특유의 6기통 엔진 사운드를 흘리며 지나가는 디노를 만났다. 도로 끝에서 사라져 가는 그 자동차를 보면서 언젠가 그들처럼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스로틀을 열어 볼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꾼 적도 있다. 세련된 라인과 독특한 헤리티지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페라리 디노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페라리의 스핀 오프 브랜드, 디노

디노는 V8 이하의 고출력 엔진을 가진 페라리 스핀오프 브랜드라, 페라리의 상징인 도약하는 말 로고를 붙이고 있는 모델은 거의 없다. 그것은 엔초 페라리의 신념이 낳은 결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지론은 페라리 엠블럼을 단 모든 차는 크고 강력한 V12 엔진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페라리의 첫 일반 도로용 차 166 인테르(166 Inter)도 V12 엔진과 페라리 로고와 함께 탄생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페라리 최초의 일반 도로용 승용차, 166 인테르 투링 베르리네타

그전에 일반에 판매된 125 S와 166 MM은 경주차의 엔진 등을 개선해 일반 연료를 쓸 수 있게 만든 모델로, 생산한 수도 적어 일반 도로용으로 기획, 설계된 모델이 아니라고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페라리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1950년도 전후 안정적인 레이싱 운영을 위해 일반 판매용 로드 카를 판매했다. 그러나 강력한 성능을 내는 모델을 생산하는 이탈리아 대표 메이커라는 자긍심의 표현 방식에 V6 엔진 디노의 배지는 권외였다고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디노를 전자 점화 장치인 디노플렉스(Dinoplex)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설명하는 곳이 종종 보인다. 아마도 지난 2018년 삼성 인수설에 휩싸였던 이탈리아 자동차 부품 회사 마니에티 마넬리(Magneti Marelli)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1967년에 마니에티 마넬리가 페라리를 위해 개발하고 1968년 디노의 고회전 V6 엔진 점화를 위해 만들어진 장치명이 디노플렉스였기에 가능한 설이 아닐까 한다.

출처: ebay
디노 206에 처음 쓰인 디노플렉스

이 장치가 디노 206 이후 20여 년 동안 페라리와 피아트 그리고 람보르기니 쿤타치 등 여러 모델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비슷한 어감에서 나온 도시 전설이 아닐까 한다. 진실은 디노라는 단어가 엔초 페라리의 외동아들인 알프레도 페라리의 세례명(Christian name)을 따랐다는 사실이다.

알프레도 페라리(이하 알프레도)는 아버지 엔초와 다른 구상을 하고 있었다. V6와 V8 엔진을 얹은 경주차로만 이루어진 팀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그런 생각을 끈질기게 피력하며 엔초의 허락을 구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엔초는 마침내 아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타협점을 찾기로 했다. 페라리보다 저렴한 모델을 판매하는 서브 브랜드를 디노로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엔초는 페라리의 종마 엠블럼을 디노에 달지 않는 조건을 제시했고 알프레도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페라리의 명성을 해치지 않고 이미지를 확장한다는 '일거양득' 마케팅이었다.

출처: superformance
디노 스크립트 배지

디노의 탄생과 진화

디노 배지를 처음 단 차는 디노 156 F2다. 하지만 많은 이의 기억에 남는 차는 750 몬자(Monza)가 아니었을까 한다. 알프레도가 카로체리아 스칼리에티와 함께 디자인해 1954년 투어리스트 트로피(Tourist Trophy) 우승을 비롯해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알프레도는 우수한 성능의 경주차만 제작하지는 않았다. 포뮬러 대회에 대응하기 위한 V6 1.5L 엔진 개발에도 손을 댔다. 

출처: Flickr
1954 페라리 몬자 스파이더

그의 비전은 성공적이었지만 그의 경력과 빛나던 삶의 꽃은 금세 시들어 버렸다. 25살이 되던 1956년 듀시엔형 근이영양증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엔초는 너무나 사랑하던 외동아들을 기리기 위해 아들의 세례명과 디자인 팀의 이름을 따 경주차를 개발하고 일반용 스포츠카를 제작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디노의 엠블럼 디자인 또한 알프레도가 생전 직접 쓴 알파벳 로고를 그대로 썼다. 또한 특수하게 제작된 뱅크각 65º 고회전 V6 엔진은 디노를 상징하는 동력원이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디노의 상징 중 하나인 65º 고회전 V6 엔진

이렇게 작은 엔진은 기존 페라리보다 저렴한 스포츠카를 내놓으려 노력한 증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디노 브랜드의 모델이 출시되자마자 더 많은 소비자가 페라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960년대 경주차에 미드십 엔진 배치는 일반적이었지만 일반 차에 적용하는 것은 대담하다고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엔초는 일반 운전자는 미드십 엔진을 컨트롤하기 어렵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시장은 변하고 있었다. 당시 미드십의 선두주자였던 람보르기니 미우라가 높은 관심과 인기에 편승하며 판매량까지 늘어나는 것을 목도하며, 엔초는 페라리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람보르기니 미우라

그는 사업 전환의 중심에 V6 엔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기존 페라리의 고출력 엔진보다 부품 수가 적어 관리와 수리가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훈련되지 않은 일반 운전자도 컨트롤이 쉬워 운전의 재미를 증폭시킨다는 메리트에 엔초는 주목했다. 물론 경주 출전에 필요한 운영 자금을 벌어들이기 위해 잘 팔리는 차가 필요했다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미드십 레이아웃을 택한 디노 206은 1967년에 피닌파리나가 프로토타입 모델을 2대 제작되며 대중화의 신호탄을 올렸다. 이후 시판용 모델은 모데나의 카로체리아 스칼리에티(Carrozzeria Scaglietti)가 제작했다. 1968년 봄부터 일반 판매를 시작으로 그 해 99대가 판매되었고 이듬해인 1969년에는 51대가 생산됐다. 이 모델은 대량 생산할 계획으로 제작되었지만 모든 생산 라인이 수작업이었는지 그렇게 많이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고객의 만족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만족스러운 파워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디노 206 GT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선이 디자인에 녹아든 디노 206 GT는 약 900kg의 중량과 약 180마력 엔진의 조합으로 시원한 가속력과 풍부한 힘을 냈다. 레드라인 8,000rpm의 듀얼 오버헤드 캠축 V6 엔진이 만들어내는 여유로움까지 느낄 수 있는 진정한 GT였다. 튜브형 강철 프레임을 감싼 알루미늄 차체 구조는 피닌파리나의 공기역학적 구조로 디자인된 보디라인으로 주행까지 아름답게 만들기 충분했다.

1969년부터 페라리는 V6 2.4L 엔진을 얹은 디노 246 GT를 시판했다. 한 가지 주목할만한 변화는 알루미늄 대신 차체에 강철을 사용한 것이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디노 246 GT

192마력의 출력과 여러 가지 개선이 이루어진 246 GT는 1974년까지 2,295대의 쿠페가 제작되었다. 많은 판매량 덕분에 디노 246 GT는 페라리 최초의 대량 생산 차량으로 기록되었다. 페라리는 오픈 에어링을 즐기는 고객을 위한 특별한 모델도 준비했다. 탈착식 루프를 단 디노 246 GTS로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총 1,274대가 판매되었다.

출처: Flickr
탈착식 루프를 단 디노 246 GTS

이후 베르토네가 디자인한 쐐기형 스타일의 디노 308 GT4도 생산되었다. 그러나 기존 디노 모델과는 스타일이 현저하게 달랐다. 심지어 V6가 아닌 V8 엔진을 얹은 페라리 최초의 모델이자 도약하는 말 로고를 단 첫 디노였다. 

살짝 벗어난 내용이지만, 디노의 작명법 또한 보통의 페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6 GT, 246 GT, 246 GTS 등의 디노 브랜드의 대표 모델을 보면, 숫자 중 첫 두 자리는 L 단위 엔진 배기량이고 마지막 숫자는 실린더 수를 나타낸다. 1972년에 제작된 디노 246 GTS를 예로 설명하면 배기량 2.4L인 6기통 엔진 모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2018 밀리 밀리아 이벤트 레이스에 참가한 디노 246 GT와 GTS

멈추지 않은 페라리 부자의 역사

디노 브랜드를 만들기 전, 엔초와 그의 아들 알프레도는 수많은 논의를 했을 것이다. 어떠한 논쟁에서도 엔초는 아비의 너그러움을 갖고 상냥한 목소리로 자식과 함께 있는 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한없이 다정했을 것이다. 강력한 엔진을 얹은 승부에만 신경 쓴 포뮬러 경주차의 강한 이미지를 엔초는 자식에게 보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출처: piqsels
디노 레터링 배지

왜냐면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디노의 기술 발전과 최고의 디자인을 추구하려던 노력의 흔적이 이곳저곳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알프레도 또한 죽어서도 아비의 사업을 도왔다. 디노가 자동차 경주와 시장에서 모두 좋은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어떤 이별이든 가슴 아프겠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엔초와 알프레도 부자는 디노라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탈리아 스타일링이란 슬픔도 우아한 예술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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