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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다정한 목소리의 그녀

조회수 2020. 9. 2. 13: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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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 아나운서 정연주

안녕하세요, TBS 아나운서 정연주입니다. 제가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진 지 올해로 23년째예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해왔음에도 저는 아직 아나운서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답니다. 그만큼 아나운서는 탐구의 영역이 넓은 직업군이에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혹시 아나운서가 되기를 희망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 들께 전하고 싶어요. 아나운서는 어떤 분야든 공부하는 걸 좋아해야 해요. 또 말을 하는 직업군이기에 내가 공부한 것을 다른 사람들 에게 말로 펼치고 전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과 그 능력에 대한 자부 심이 있어야 하죠.
레전드매거진을 통해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어요. 첫번째로는 4년간 동고동락해온 TBS ‘공연에 뜨겁게 미치다’라는 프로그램이 종영을 앞두고 있는데 이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전하며 시즌2를 기약하고 싶었고, 두 번째는 저에게 또 다른 가족이나 다름없는 우리 라라식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나를 성장시킨 라디오


단언컨대 저는 정말 라디오를 사랑해요. 하루 일과 중 가장 집중을 하고, 가장 에너지를 많이 쏟고 그럼에도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바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랍니다. 대학교 4학년 만 22세 무렵 TBS에 입사했어요. 세상 물정 모르던 20대 초반의 어린 저를 성장 시켜 준 것은 대부분 청취자들과의 교감의 시간과 라디오 방송작가 분들이 써주신 주옥같은 말들이었어요. 작가님들이 주신 말거리를 꼭꼭 씹어 100프로 이해한 후 마이크를 통해 내뱉는 하루하루 속에서 저의 인격이 형성되어갔죠. TBS는 예나 지금이나 아나운서와 청취자가 실시간으로 만나는 비중이 큰 편이에요. 1997년 입사 후 1999년 5월 경에 처음으로 라디오 일일 프로그램을 맡았어요. 그때 했던 방송을 지금 들어보면 유치하지만, 매스미디어에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 었답니다.

TBS FM 라디오를 켜라 정연주입니다


그동안 출퇴근 시간대 라디오 방송을 많이 하다가 1년 전에 처음으로 새벽 다섯 시 방송 진행을 맡게 됐어요.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 어요. 잠도 일찍 자야 하고, 기존에 갖고 있던 삶의 균형이 자칫 전부 깨지는 건 아닐까 싶었거든요. 그런데도 앞서 그 시간대를 거쳐간 아나운서들의 만족도가 너무 높은 거예요. 들어와 보니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어요. 새벽 다섯 시가 어떤 시간대냐면요, 밤새 일하신 분들이 노곤해진 몸으로 퇴근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고, 사무실 청소 등 육체노동을 하시는 분들이 출근해 한창 일을 하는 시간이며, 출근 전 혹은 등교 전 신문배달, 우유배달, 택배 상하차 등 아르바이트로 투잡을 하는 분들이 깨어있는 시간이에요. 한창 바쁘기도 하고 고달프기도 한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고픈 많은 분들의 다양한 마음이 혼재되어 있는 시간대죠. 가끔 선배님들께서 마이크는 잡으면 잡을수록 무섭다고 말씀하실 때 겸손이 지나치신것 아닌가 했었는데, 요즘에야 그 말의 뜻을 알겠더라고요. 그렇게 두려움과 떨림과 기대가 섞인 마음으로 라라(라디오를 켜라)를 시작했어요.


인생은 기나긴 배움의 여정이라고 하잖아요. 제가 드리는 것보다 청취자 분들께 배울 때가 더 많답니다. 아침 시간대라서 그런지 다들 건강하세요. 오늘 방송 나가고 ‘저의 마음밭에 라라라는 씨앗을 심고 오늘 하루도 에너지 받아갑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이런 걸 받으면 거꾸로 ‘나의 말이 누군가의 씨앗이 되는구나. 그 씨앗을 심고 하루를 살아갈 마음을 다잡는 분들이 계시니까, 내가 더잘해야지’ 라는 생각을 해요. 선순환의 과정이죠. 저희 청취자들끼리 서로 ‘라라식구들’이라고 하는데, 의미 없이 붙인 말은 아니에 요. 저에게 정말 식구나 다름없죠. 가끔은 가족들보다 더 친밀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어, 이거 우리 가족들이 보면 서운해할 텐데..(웃음)

4년간의 대장정, ‘공연에 뜨겁게 미치다’


공뜨미(공연에 뜨겁게 미치다)가 200회에 이르면서 배우분들께도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게 됐어요. 우리와 인터뷰를 하고 나면 단지 소모되는 기분이 아니라, 내 작품에 대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한 듯 자존감이 선다는 거예요. 전 무엇보다도 우리가 실연자 들로부터 인정받게 된 것이 기뻐요.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거죠.


공뜨미를 처음 시작한 건 2016년 4월이었어 요. 본래 공연을 좋아했던 저는 출연 제의를 받자마자 흥미를 느꼈죠. 과거나 지금이나 영화, 드라마 등 매체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대부분의 연극배우나 뮤지컬 배우들의 이름도 잘 모르잖아요. 배우들은 정말 열심히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내며 매회 자기 자신을 갈아 넣는데, 이들을, 그리고 이들이 서는 무대를 조명하는 매체가 너무 없었어요. 그러니 우리가 이를 기획해보자며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바로 공뜨미죠. 최근 까지 200회 이상 방송을 내보내며 케이블로 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시청률을 확보하기도 하는 등 꾸준히 성장해 왔어요. 출연진인 원종원 교수, 배순탁 작가, 개그맨 김승혜 씨와 로맨틱 펀치의 보컬 배인혁 씨, 그리고 저.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다섯 명이 공연계의 어벤저스가 되어보자며 한데 뭉쳐 정말 열심히 해왔죠. 그런데, 저희 공뜨미가 203회를 끝 으로 잠시 쉬어가게 되었어요. 시즌 2를 기약하며 웃으며 헤어지긴 했지만 사실은 마음이 많이 시리기도 해요. 여전히 문화예술을 효율성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 유감스럽죠. 여전히 ‘정치,사회,경제, 문화’라는 도식화된 단어의 순서에서도 느껴 지듯 ‘문화’를 다룬다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견고한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문화의 힘이 가져올 정신적인 풍요로움과 이것이 만들 어줄 수 있는 이로운 세상으로의 변화를 여전히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아무래도 이런 생각을 깊게 하게 된 것이 소중한 작품들을 통해 몸소 깨닫게 된 게 많아 서인 것 같아요. 공연에 뜨겁게 미쳐 지내오 면서 가능해진 거죠. 저뿐만 아니라 저희 공뜨미 제작진들 모두 같은 마음이고요. 저희가 미약하나마 이런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서도, 프로그램을잘 만들기 위해서도, 그리고 프로그램을 하면 서도, 다들 공연에 뜨겁게 미쳐있었던 4년이 었네요. 아무쪼록 다시금 공뜨미가 시즌2로 돌아와 시청자들과 훌륭한 공연 예술 사이에서 믿음직한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었 으면 좋겠어요.

내가 만난 배우들


한 분 한 분이 너무 아름다운 분들이죠. 지면을 통해 무대 위에서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2016년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제가 직접 대학로로 찾아가 배우들을 인터뷰하는 포맷은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는데, 흔쾌히 좋다고 했어요. 몇몇 분께서 20년 차아나운서가 가진 무게감에 비해 너무 가벼운 일이 아니냐고 염려도 해주셨지만, 저는 그일을 하게 된 게 너무 좋았어요. 어떤 역할이든 저의 가치는 저 스스로 높여 나가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매체에서 많이 알려진 분들은 구글링 등 포털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찾을 수 있지만, 이제 막 무대에 섰거나 무대에 서만 볼 수 있는 배우분들과 인터뷰를 하려면 우선 그들의 공연을 꼭 봐야 하죠. 그래서 공연을 먼저 보고, 배우와 인터뷰하고, 인터 뷰를 한 뒤 뭔가 미진한 게 있으면 또 공연을 보곤 했어요. 가끔 스케줄이 맞지 않아 동 작품에서 내가 인터뷰할 배우 대신 다른 캐스 팅의 공연을 볼 때도 있었죠. 어쨌든 한 사람을 인터뷰하기 위해서 그의 공연을 최소 한번, 많게는 세 번씩 봤어요. 이 생활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까 프로그램 이름처럼 제가 정말로 공연에 미쳐가는 거예요. 보면 볼수록 안보이던 게 보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속수 무책으로 공연과 배우들에게 빠져드는 것 같았죠. 처음에는 공연을 보며 즐거웠던 경험과 더불어 프로그램을 잘 해내고자 하는 욕심이 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보다 더욱 많은 것을 보았고, 얻는 게 많았어요. 예를 들면 인터뷰를 하면서 무대에 오르는 배우 들과 저 사이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죠. 저의 큰 장점이자 단점이 순간 몰입이 너무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배우분들이야말로 상황에 바로 몰입하는 몰입의 달인이잖아요.


그래서인지 저와 코드가 잘 맞는 부분이 굉장히 많은 거예요.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배우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좋았어요.

공연의 진입장벽에 대해


솔직히 공연은 티켓 값이 만만치 않다 보니 진입장벽이 높아요. 제가 라디오를 하니까 초반에는 공연 티켓을 청취자분들께 선물로 드리는 이벤트를 종종 했었는데요. 의외로 다녀 오신 분들께 이런 메시지를 받아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연을 봤는데, 너무 좋았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라는 말이 당황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 현실을 직시할 수도 있었어요.

실은 저희 라디오에서도 제가 방송에서 뮤지컬 이야기하는 걸 꺼려해요. 공연의 진입장벽이 높아 청취자와 저 사이의 끈끈한 유대관계에 위화감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고민인거죠.

그런데 저는 한 곡의 음악으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해본 분들이라면 이에 대한 확장판이 뮤지컬이나 콘서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가끔 3분짜리 노래 듣고 그 곡이 너무 좋아 잠시나 마, 혹은 하루 온종일 마음이 풍요로워질 때가 있잖아요? 단순히 시간에 비례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에 대한 연장으로 세 시간짜리 공연을 보고 오면 한 달이고 넉 달이고 버틸 수 있는 행복을 든든히 충전하고 온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레전드매거진 구독자들에게


우리 사회는 작은 영웅들이 지탱하고 있어요. 요즘 코로나 바이러 스로 세상이 떠들썩한데, 그럼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한 분 한 분이 모두 영웅이겠죠. 영웅들이 이렇게나 많으니,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린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공연계도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지나오고 있을 텐데, 이런 시기에 일상생활에서 많이 위축되어 있을 분들이 공연을 통해 힘을 보태기 위해서라도 잘 버텨내셔서 더 큰 도약을 꿈꿀 수 있기를 기원해요.

출처: 레전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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