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적인 스타일 연주의 재즈 드러머가 되기까지

조회수 2021. 3. 18. 17: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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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드러머 오종대 교수_인터뷰 ② 」


재지(Jazzy)

재즈의 분위기를 표현할 때 흔히 쓰인다.

가장 재즈다운 재즈, 흥겹고 행복감이 넘치는 재즈를 말한다.


Q.

현재 국내 최고의 재즈 드러머로 활동하고 계시지만 그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 궁금하네요. 처음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A.

어렸을 때 포크 음악을 좋아해서 통기타를 쳤어요. 그래서 주로 들었던 음악도 시인과 촌장, 어떤 날 같은 포크 음악이 많았고, 락밴드 들국화도 좋아했죠. 그러다 중3 때 처음 밴드를 만들고 모두의 공식처럼 공석인 베이스를 정하기 위한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바로 제가 당첨됐죠. 사실은 베이스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물론 드럼도 좋아하지만, 지금도 베이스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아요. 대학교는 오로지 밴드 ‘옥슨’에 들어가기 위한 일념으로 건국대학교에 입학했어요. 베이스로 지원을 했지만 저보다 잘 치는 친구가 있어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드럼이었죠. 어떤 악기를 고집하기보다 밴드를 통해 음악을 완성하는 그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가장 늦게 시작해서 현재까지 드러머로 활동 중이네요.

Q.

드러머로 처음 활동하신 당시 옥슨 밴드 활동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A.

밴드 옥슨 활동은 저한텐 큰 즐거움이었어요. 중·고등학교 밴드와는 다르게 늘 연주할 수 있는 합주실을 가지고 있고,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행복이었죠. 옥슨에 합류한 뒤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냈어요. 수업을 안 듣다 보니 학점도 거의 바닥이었죠. 밴드 경험이 충분히 있었지만, 드럼 연주는 처음이다 보니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합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부족함을 많이 느꼈고,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내겠다는 일념으로 연습을 엄청 열심히 했어요. 1990년 9월 처음 스틱을 잡아 타이어에 대고 스트로크를 연습하여 1991년 10월쯤에 KBS 대학가요축제에서 옥슨이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제법 열심히 했었죠. 수상 후 음원을 위해 녹음실에 갔을 때 엔지니어 선생님께서 계속 드러머로 활동하기를 제안하셨고 더욱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 후로는 다른 악기보다 드럼에 더 집중을 하게 되었죠.

Q.

프로 뮤지션에 대한 꿈은 그 이후에 생기신 건가요?

A.

사실 뮤지션에 대한 꿈은 고등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대상을 수상하며 더욱 구체화되었던거죠. 엔지니어 선생님께서 프로 드러머 제안과 함께 당시 송골매로 활동을 하셨고 현재도 레전드 드러머로 불리는 이건태 선생님을 소개해주셨어요. 선생님의 무대를 따라다니며 지켜본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프로 뮤지션이 되어야겠다 용기를 얻게 된 것 같아요. 이미 최고의 위치에 계셨음에도 항상 미리 가서 세팅하시고 수없이 연습하시는 걸 보고 배우며 막연하게만 느꼈던 프로 뮤지션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았죠. 그 이후 음악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건국대를 그만두고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했어요.


Q.

그렇게 드러머로서 활동하시다가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을 두고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셨어요. 미국의 재즈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던가요?

A.

아무래도 재즈라는 음악은 미국, 특히 뉴욕을 중심으로 발전된 음악이기 때문에 유럽의 재즈는 미국의 메인스트림과는 조금 결이 달랐어요. 이미 유럽의 뮤지션들은 재즈에 자기네 개성을 더하는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단정 지어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의 음악이 좀 더 흑인 뮤지션 중심의 에너지 넘치고 그루비한 연주였다면, 유럽에서는 특유의 클래시컬한 음악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화성이나 사운드가 대단히 지적이며 정교한 모습이었어요. 재즈를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유러피안 재즈라 불리는 스타일로 구사하고 있었죠. 때마침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뉴욕에서 연주하는 많은 미국 뮤지션들도 유럽의 음악에 대단히 호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덩달아 본토의 재즈 시장이 조금씩 주춤함과 동시에 유럽 각지에서 페스티벌들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미국 뮤지션들의 주 활동마저 유럽 투어가 되었죠. 유럽 뮤지션들에게 음악은 경쟁이 아닌 축제였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음악에 집중하는 에티튜드가 저에게도 좋은 영향을 많이 미쳤던 것 같아요. 좀 더 다양하게 보는 관점을 길렀고, 장점을 캐치할 수 있는 선견을 얻었죠.


Q.

네덜란드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을 만나면서 한국인으로서 어떤 재즈를 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해답은 어떻게 내리셨나요?

A.

처음에는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여러 고민을 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잘하는 것은 뭘까. 한국의 민요나 가요를 해볼까. 한국의 국악기를 접목해보는 것은 어떨까. 결국 제가 내린 해답은 한국 재즈, 유럽 재즈, 일본 재즈로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한국에 있지만 진짜 뉴욕 스몰스 같은 재즈 클럽에서 할 법한 연주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뉴욕에 있지만 아프리카나 인도에서 연주할 것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음악에 있어서 국적, 인종, 지역적, 문화적인 구분이 구시대의 카테고리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또 그런 것에서 빨리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좀 더 자기 본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요. 정리하자면 한국 사람으로서 미국 중심의 음악인 재즈를 어떻게 한국적인 재즈로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명제에 대해서 더 이상 우리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현시대는 제가 어렸을 때처럼 재즈의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지 않고 세계적으로 오픈이 되어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재즈를 접하는 환경은 다르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 그걸 표현할 나만의 언어는 무엇인가 하는 거죠.



인티그레이션(Integration)

개인플레이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가 정돈된 연주를 했을 때 ‘인티그레이티드 퍼포먼스(통합된 연주)’라 한다. 재즈는 개인의 음악인 동시에 집단의 음악이다. 그것이 재즈의 이상이다.



Q.

트리오 웍스나 디에보를 비롯하여 다양한 재즈 밴드에 소속되어 계세요. 이렇게 많은 팀을 결성하시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A.

저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부분인데, 우선 관심 있고 좋아하는 음악들이 많지만 싫증도 잘 내는 성향이라 같은 곡을 반복하는 것을 힘들어해요. 악기 연주자로서 활동한 이래로 다양한 음악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좋아하는 음악도 더욱 다양해지면서 점점 욕심이 생겼죠. 예를 들어 트리오를 하다 보면 관악기 소리를 더한 신나는 밴드로 연주하고 싶기도 하고, 기타와 오르간이 협연되는 블루스처럼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색다른 음악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밴드에서 소화하려면 문제가 생겨요. 처음에는 한 밴드 안에서 다양한 음악을 시도도 해봤고, 또 이미 여러 가지를 소화하는 밴드를 경험하기도 해 봤지만 그럴 때마다 결국 마찰이 생기더라고요. 모든 멤버가 매번 새로운 취향에 공감할 수는 없으니까요. 자연스레 원하는 음악을 다양하게 실현하기 위해선 여러 밴드를 결성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됐어요. 한 밴드에서의 아쉬움을 다른 밴드에서 풀어내 불필요한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된 현재로서는 저의 성향이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음악인으로서 갖고 계시는 꿈과, 인간 오종대의 꿈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음악가로서의 꿈은 그냥 지금처럼 계속 연주하며 곡을 만들고,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고, 팀을 통해서 활동을 계속해나가는 거예요. 이제 나이를 먹으니까 아파서 연주를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인간 오종대의 꿈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건강히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게 꿈이에요. 어떻게 보면 소박하지만 대단히 욕심 많은 꿈이죠. 행복이나 성취감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는 아닌 것 같아요. 순간적인 거죠. 실패했을 때 낙담하거나 좌절감도 마찬가지예요.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지만 이 일을 계속한다고 해서 행복하기만 할까요? 힘들고 괴로울 때도 많고, 나 자신에 대한 한계 때문에 슬럼프에 빠져 좌절도 같이 느끼겠죠. 이 모든 감정이 함께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내 삶을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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